욥 오요한
욥기 26장 강해

요절: 보라 이런 것들은 그의 행사의 단편일 뿐이요 우리가 그에게서 들은 것도 속삭이는 소리일 뿐이니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헤아리랴(14절)

빌닷의 세 번째 변론 후에 욥의 반론입니다. 이제 욥은 엘리후의 발언이 있기 전까지 매우 긴 연설을 합니다(26-31장).

욥은 먼저 빌닷의 발언이 적절치 못하다는 사실을 풍자적으로 비꼬고 있습니다. 이어 빌닷이 제기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위대하심을 오히려 승화시켜 설명합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깨닫고 겸손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도움이 안 되는 카운슬링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힘 없는 자를 참 잘도 도와 주는구나 기력 없는 팔을 참 잘도 구원하여 주는구나 지혜 없는 자를 참 잘도 가르치는구나 큰 지식을 참 잘도 자랑하는구나 네가 누구를 향하여 말하느냐 누구의 정신이 네게서 나왔느냐(1-4절)”.

욥이 빌닷에게 대답합니다. 욥은 빌닷의 유창한 연설이 무력한 상황에 있는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빌닷은 욥에게 지혜나 지식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욥은 자신의 지혜 없음을 인정했는데도, 빌닷이 욥에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도록 도와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빌닷은, 욥이 고민하고 있는 악인의 흥함과 의인의 고통이라는 난제에 대해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욥은 참된 지혜는 진실과 유익, 그리고 설득력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항변합니다.

욥은 빌닷이 누구를 향하여 말하며 누구의 정신으로 말하느냐고 묻습니다. 욥은 과연 빌닷이 하나님을 향하여 말하는 것이냐고 묻습니다. 아무런 감동도 유익도 주지 않는 빌닷의 연설은 속빈 강정에 불과할 뿐입니다.

욥은 빌닷에게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것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아니라는 말입니다. ‘너에게 그렇게 말하도록 영감을 준 것은 누구냐?’고 묻습니다. 너의 말이 신령하냐고 묻습니다.

욥은 빌닷의 말이 매우 빈약할 뿐 아니라 그 말 속에 담겨진 사상도 이미 엘리바스가 말한 것을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신적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면 이처럼 무익할 수도 없으며, 허공에 뜨는 말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욥에게 필요한 것은 전능자 하나님의 변호와 위로였습니다. 그러면서 욥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2. 죽은 자도 떨게 하시는 하나님

“죽은 자의 영들이 물 밑에서 떨며 물에서 사는 것들도 그러하도다 하나님 앞에서는 스올도 벗은 몸으로 드러나며 멸망도 가림이 없음이라 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 그는 보름달을 가리시고 자기의 구름을 그 위에 펴시며 수면에 경계를 그으시니 빛과 어둠이 함께 끝나는 곳이니라(5-10절)”.

욥은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높으신 분인가를 말합니다. 빌닷은 하나님의 능력과 통치에 대해, 하늘과 관련된 사실만 언급하였습니다. 반면 욥은 하늘과 땅, 그리고 땅밑과 음부에까지 확대시키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신 주권을 찬양합니다.

음부 세계에 거주하는 영혼들이 바다의 파도처럼, 땅의 지진처럼, 해산하는 여인처럼,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 몸부림치며, 공포 속에서 떨면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고 그의 위엄스러운 통치가 음부에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죽은 자들의 영도 떱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지옥이나 멸망도 남김없이 다 드러납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음부의 세계까지도 하나님 앞에서는 발가벗은 것처럼 드러납니다. 생명이 파멸되는 무저갱과 그곳에 거주하는 존재들까지 하나님의 지식과 주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욥은 빌닷보다도 하나님의 크심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구를 허공에 매달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휘장같이 하늘을 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능력으로 텅빈 우주 공간에 하늘을 휘장같이 드리우셨습니다.

이처럼 우주 공간에 땅 곧 지구를 매단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창조와 그 능력의 위대성을 암시해 줍니다. 지구가 아무런 도움도 없이 그 무게를 지탱하며 허공에 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욥은 지동설을 알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서 하늘에 두셨습니다. 구름에 있는 물이 평상시는 찢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구름은 어느 순간에 비가 되어 내립니다.

하나님은 두꺼운 구름 속에 물을 저장하여 보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수가 나지 않도록 물을 구름 속에 붙잡아 두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땅 위의 기상학적 조건이나 법칙까지도 정하시고 관리하십니다. 아무리 많은 양의 비를 가진 구름이라도 하나님의 명령 없이는 쏟아지지 않습니다.

지구와 해의 거리, 지구와 달의 거리, 지구의 크기, 해의 크기, 달의 크기, 지구가 23.5도 기울어진 것, 바다에만 물이 모여 있게 하신 것 모두가 신비롭습니다. 구름이 비가 되어 내리는 것도 신비롭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일을 만드신 창조주가 되십니다. 욥은 크신 창조주를 알고 있었습니다. 욥은 친구들이 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기를 원하십니다.

욥은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해 말합니다. 하나님은 보름달 밑에 구름을 펴십니다. 하나님은 구름으로 하나님의 보좌를 차단하여 보이지 않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보좌와 영광스러운 광채를 구름을 펼치심으로써 땅에 사는 인간들의 눈으로부터 감추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날과 역사하시는 뜻을 가리우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과 궁극적인 신비를 쉽게 알 수 없으며 접근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감추심은 인간의 지식과 판단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며, 오직 그분의 계시를 통해서만 부분적으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미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땅의 일정 부분을 낮게 하시고 일정 부분을 높게 하셔서, 바다를 만드시고 육지를 만드셨습니다. 지구를 둥글게 하시고 자전을 하게 하셔서, 낮과 밤의 경계가 있는 곳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낮과 밤의 끝이 오는 시간적 한계와 빛과 어두움이 접촉되는 공간적 한계를 만드셨습니다.

3. 날렵한 뱀을 무찌르시는 하나님

“그가 꾸짖으신즉 하늘 기둥이 흔들리며 놀라느니라 그는 능력으로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며 지혜로 라합을 깨뜨리시며 그의 입김으로 하늘을 맑게 하시고 손으로 날렵한 뱀을 무찌르시나니 보라 이런 것들은 그의 행사의 단편일 뿐이요 우리가 그에게서 들은 것도 속삭이는 소리일 뿐이니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헤아리랴(11-14절)”.

하나님이 꾸짖으면 하늘 기둥이 흔들리며 놀랍니다. 산들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하여 진동합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번개를 치고 천둥을 치십니다. 하늘에 허리캐인을 불게 하시고, 태양과 달과 별을 주관하십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 하늘과 별이 떨어진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능력으로 바다를 잔잔하게도 하시고, 파도가 일어나게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다를 요동시켜 놀라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다를 지배하시고 통치하시는 권능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지혜로 라합(폭풍우)을 깨뜨리십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날렵한 뱀을 무찌르십니다. 하나님의 입김으로 하늘을 맑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비구름과 폭풍우로 인해 흐렸던 하늘을 청명하게 빛나도록 하십니다. 그의 손으로 날렵한 뱀을 무찌릅니다. 하나님은 주의 위엄 앞에서 도망치는 뱀을 그의 권능의 손으로 찔러 죽이십니다. 하나님은 바다를 지배하는 용을 찌르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의 대적인 뱀의 세력들을 단번에 제거시키십니다.

그러나 욥은 이런 모든 것도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한 단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과 능력을 서술한 앞의 내용들은, 단지 하나님의 처음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욥은 만일 하나님의 권능이 천둥소리처럼 크게 모두 울린다면 누가 그것을 이해하고 헤아릴 수 있겠는가! 하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들은 것도 속삭이는 소리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우리는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인간은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와 그 능력의 본질을 다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세미한 속삭임으로 듣고 아주 적은 부분만을 이해할 뿐입니다. 만약 욥의 친구들이 그들 지식의 한계를 인식했다면 욥에 대한 오해를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욥은 이처럼 신이 아닌 보잘 것 없는 인간으로서의 친구들을 하나님의 지식과 능력의 완전함에 대조하면서, 그들의 모순을 반박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크고 놀라우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다 알 수 없습니다.

오요한
▲오요한 목사.
4. 결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라

지금 욥이 왜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까? 빌닷에게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빌닷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을 벌레 같은 존재입니다.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인간은 구더기 벌레 같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이론이나 하나의 신학으로 인간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불가지론의 입장을 펴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것도 알 수 없으니 알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겸손하게 더 알려 하라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사람에 대해 이해하고 사랑하고 배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하나의 방법만을 고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좀 더 유연해야 합니다. 한 사람을 도울 때 어떻게 도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찾고 구해야합니다.

하나의 기준으로 성도들을 다 도울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결과물이 없을지라도, 우리는 좀더 자유하고 유연성을 가져야 합니다. 먼 안목을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를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아는 지식을 고정화하고 관념화하여 그 틀에 모든 것을 집어넣으려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우리는 좀 더 겸손한 자세로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아멘!

오요한 목사(천안 UBF, <오요한 목자의 로마서 강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