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Unsplash/RawPixels
본문은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내는 서신입니다. 냉기가 올라오는 돌감방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낸 바울의 첫 인사는 복음에서 사랑의 친교를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친교는 복음을 위해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을 배경으로 ‘친교적인 만남을 중요하게 여기라!’는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1. 친교적 만남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위한 일에 교제함을 인함이라(5절)”.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첫인사를 하면서 지금까지 교제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헬라어 원문에 친교는 코이노니아로 복음을 촉진하기 위한 사귐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의 친교는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발적인 친교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빌립보 교인들의 친교는 인간의 영혼을 사랑하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으로, 더 적극적인 뜻이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친교적 만남이 왜 중요할까요?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함께 배우면서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사람은 친교적 만남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이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은 지중해의 마요르카 섬에서 비 오는 날 쇼팽이 조르주 상드를 기다리며 작곡했다고 합니다. 쇼팽과 조르주 상드와의 친교적 만남이 그 유명한 ‘빗방울 전주곡’을 세상에 나오게 만든 것입니다.

훗날 쇼팽은 파리 사교계의 여왕이라는 조르주 상드와의 만남을 통해 그의 삶이 많이 달라지는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쇼팽뿐 아니라, 어쩌면 우리의 삶도 친교적 만남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돌아보면 우리의 삶은 친교적인 만남을 통해 이룩한 결과입니다.

2.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라

3절에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말합니다. 친교적 만남에서 언제나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돌이킬 수 없는 후회도 있고, 고마운 마음이나 감사한 마음을 갖게 만들며 잊을 수 없는 기쁨도 있습니다. 친교적 만남에서는 언제나 양면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친교적 만남에서는 좋은 경우와 좋지 않은 경우가 있으며, 유익이 되는 경우와 손해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분이 좋은 때와 나쁜 때도 있습니다. 사랑할 때도, 미워할 때도 있습니다.

극단적 경우이지만, 만나지 말아야할 사람을 만나 집안의 재산을 모두 없애버려 신세를 망친다는 ‘패가망신(敗家亡身)’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단순히 사람 하나를 잘 만나 일생일대의 놀라운 복을 받고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 경우도 있습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친교적인 만남에 대한 중요 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이 상대방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내가 만난 사람이 누구이든 이해하려 노력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상대방에 대해 감사하는 태도는 상대방에게 잘못이 있음에도 모두 덮어버리고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나의 기준을 포기하고, 그 사람의 입장과 기준에 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상대방의 입장과 기준에 서면 이해 안 될 것이 없습니다. 때로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있다면, 아직도 나의 입장과 기준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이는 상대방의 잘못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친교의 즐거움을 계속 누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3. 친교적 만남을 잘 유지하라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4절)”이라는 말씀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친교적 만남의 원리는 상대방에 대해 하나님께 항상 기뻐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친교적 만남이란 단절하기는 쉽지만, 유지하기는 어렵습니다. 균형의 원리가 작용되기 때문인데,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서로에게 균형적으로 유지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성공한 사람들은 친교적 만남을 잘 유지하거나 지속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친교적 만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장점을 많이 보아야 합니다. 친교적 만남을 관계적 원리에서 보면 장점은 관계를 유지하지만, 단점은 관계를 단절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친교적 만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단점보다 장점을 더 많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실수가 아니라면, 상대방이 잘못한 것에 대해 용서해야 합니다.

자주 용서하는 길은, 나도 잘못할 때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이는 친교적 만남에서 유지와 지속이 그렇게도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4. 정리

가는 인생길에서 친교적 만남을 잘 하여 놀라운 복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좋은 만남을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친교적 만남을 중요시하는 사람들 되게 하소서! 상대방을 많이 이해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소서! 어떤 경우에도 친교적인 만남을 지속하려는 사람에게 반드시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