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오요한
욥기 24장 강해

요절: 모태가 그를 잊어버리고 구더기가 그를 달게 먹을 것이라. 그는 다시 기억되지 않을 것이니 불의가 나무처럼 꺾이리라(20절)


욥기 24장은 23장에 이어 엘리바스의 변론에 대한 욥의 대답이 계속됩니다. 이전에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아시나니 순금같이 연단한다고 했습니다.

욥은 계속해서 엘리바스에 대해 변론합니다. 욥은 자신은 고난을 통해 연단받지만, 악인들은 어떻게 되는가를 묵상하다 그들이 결국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1. 성도는 심판의 때를 알지 못한다

1절에 보면 욥은 전능하신 분께서는 심판하실 때를 정하여 두지 않으셨다고 말합니다. 그를 섬기는 사람들이 어찌하여 악인을 정당하게 판단하시는 날을 정하지 않으셨냐고 묻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정의롭게 심판할 날을 알지 못하여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욥은 악인에게 곧장 심판이 임하지 않는 사실로 인해 두 가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첫째는 악인들이 더욱 기세등등하게 활보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공의를 믿고 신실하게 생활하는 자들이 낙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편파적이고 비일관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 악인들의 번영


2-8절에 보면, 악인들은 죄를 짓지만 심판이 곧바로 임하지 않습니다. 이제 욥은 악인이 오히려 번영하고 있는 사실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땅의 경계표를 옮겨서 자기 땅을 넓힙니다. 악인은 다른 사람의 양떼를 빼앗아 자기 양처럼 기릅니다. 그들은 연약한 고아와 과부의 나귀나 소를 빼앗아 볼모로 잡습니다. 악인은 아주 적은 부채를 이유로 과부의 전 재산을 강제로 압류하였습니다.

가난한 자들의 가지고 있는 권리를 빼앗으니 세상에서 학대받는 자가 숨어 삽니다. 악인은 빈궁한 자들을 자기들이 다니던 길로부터 밀어내어 방황하도록 만듭니다.

학대받는 자들은 거친 광야의 들나귀 같아서 나가서 뼈빠지게 일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 빈들에서 곡식을 거두고 남은 것을 주워 먹으며 살아갑니다.

약자들은 밭에서 소가 먹는 꼴을 베어 먹고 살아갑니다. 가난한 자들이 허기를 견디지 못해 도둑질을 하게 되는 상황에까지 이릅니다. 약자들은 의복이 없어 벗은 몸으로 밤을 춥게 지내야 합니다.

산중에서 소나기를 만나도 우산이 없어 옷이 젖습니다. 그들은 집도 없고 소나기를 피할 곳은 바위 밑밖에 없습니다.

의인은 이렇게 고통을 당해도, 하나님은 의인을 지켜주시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세상의 현실만 보면 하나님이 공의롭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악인은 떵떵거리며 잘 살고 의인은 고통합니다.

3. 악인의 횡포들


9-12절에 보면 욥은 계속 악인의 횡포와 약자의 고통을 고발합니다. 어떤 악인은 가난한 자가 빚을 갚지 않는다고 자녀를 어머니 품에서 빼앗습니다. 무자비한 채권자들이 아비 없는 아이를 그 어미가 빚을 갚을 시간도 주지 않고 담보물로 빼앗아 갔습니다. 잠잘 때 덮고 자는 옷을 볼모잡기도 합니다.

압제자들은 억압적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일을 시켰지만, 그에 필요한 어떠한 대가나 보호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약자는 곡식 이삭을 나르는 노동을 하면서도 그 곡식을 먹지 못하여 배를 곯습니다.

압제자들의 매우 철저하고 혹독한 감독 아래 비천한 자들이 학대를 당하고 있습니다. 성 중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신음하며 상한 자가 부르짖으나 하나님이 그들의 참상을 보지 아니합니다.

사람들은 압제자의 횡포로 인해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자가 신음하며 부르짖어 외치고 있습니다. 사악한 자들이 도덕 질서나 하나님의 법을 조롱하고 비웃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런데도 징벌을 당하지 않은 채 이 땅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결국 욥은 이 땅에 폭력과 억압이 계속되고 정의가 짓밟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잠잠하시다는 것을 항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4. 밤을 좋아하는 악인들


13-17절에 보면 악인 가운데는 광명을 배반하고 어둠을 좋아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빛을 반역하고 어두움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십계명의 제 6-8계명을 어기는 살인자들(14절), 간음자들(15절), 밤도둑들(16절)입니다. 악인들은 빛을 싫어하는 자들뿐 아니라 빛의 원수들을 말합니다.

악인들은 자기들의 사악한 범죄 행위가 드러나지 않도록 어두움 가운데 계락과 음모를 꾸밀 뿐, 그것이 발각될 우려가 있는 밝은 곳은 어디든지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악인들은 밝을 때에 일어나 가난한 자를 죽이고, 밤에는 도둑 같이 되어 남의 재산을 훔칩니다. 악인은 인적이 드물고 주위가 캄캄한 때를 골라,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일찍부터 일하는 궁핍한 자들을 습격하여 약탈하고 죽입니다.

죄를 짓는 자는 밤을 좋아하고 낮을 싫어합니다. 간음하는 자, 남의 집에 들어가 밤에 도둑질하는 자는 아침을 싫어합니다.

간음하는 자의 눈은 저물기를 바랍니다. 그는 얼굴을 가면으로 가려서 보이지 않게 하고 있습니다. 도적들이 낮에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자기 집의 문을 잠그고 몰래 숨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잠드는 깊은 밤에 낮처럼 활동합니다.

지금까지 욥은 하나님이 악한 자들을 심판하지 않으신다고 말했습니다. 의인은 고난을 받고 악인은 번성하는 것을 보며 욥은 고민합니다. 그는 불의한 하나님에 대하여 원망합니다. 그러나 욥은 말을 하다가 하나의 깨달음을 얻습니다.

5. 악인이 받을 저주


“그들은 물 위에 빨리 흘러가고 그들의 소유는 세상에서 저주를 받나니 그들이 다시는 포도원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라. 가뭄과 더위가 눈 녹은 물을 곧 빼앗나니 스올이 범죄자에게도 그와 같이 하느니라. 모태가 그를 잊어버리고 구더기가 그를 달게 먹을 것이라. 그는 다시 기억되지 않을 것이니 불의가 나무처럼 꺾이리라(18-20절).”

이제부터 욥은 악인들이 받을 심판을 말합니다. 악인은 물 위에 떠내려 갑니다. 그들의 소유는 세상에서 저주를 받습니다. 그들은 포도원은 저주 받아서 다시 포도원 길로 다니지 못합니다.

가뭄과 더위가 눈 녹은 물을 빼앗듯이 범죄자도 죽음을 당합니다. 뜨거운 태양이 눈을 녹이고 물을 증발시키듯, 음부(陰府)가 악인을 재빨리 채갑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악인을 낳은 어머니도 그를 잊어버리고 구더기가 그를 달게 받아 먹을 것입니다. 본문의 어머니와 구더기가 서로 대조를 이루어 악인의 비참한 결말을 강조합니다.

악인은 맹목적이라 할 정도로 강렬한 어머니의 사랑으로부터조차 버림을 받으며, 그를 가까이하고 달려들 자는 구더기밖에 없습니다. 지옥에는 구더기가 들끓습니다.

악인들은 지옥의 형벌을 당합니다. 그들은 다시 기억되지 않고, 불의도 잘린 나무처럼 꺾어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날을 중심으로 악인을 보아야 합니다.

6. 악인의 심판을 확신하는 욥


21-25절에 보면 사악한 자의 생전 저지른 죄악의 실상이 밝히 증거되고 있습니다. 욥이 불의한 현실을 명백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를 박대합니다. 과부를 선대하지 않습니다. 자식을 낳지 못하는 불쌍한 여인들을 학대하거나 약탈하고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않는 사악한 자는 반드시 형벌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물론 욥의 눈에 목격된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의인들이 고난을 받고 악인들은 흥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욥 자신도 이런 체험을 하였습니다.

욥은 이런 현실을 보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며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공의가 반드시 실현될 것을 믿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악인을 심판하실 것을 바라봅니다. 그들은 잘려 모아진 곡식 이삭처럼 잘리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높아져도 한순간에 없어집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악인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욥은 악인의 멸망을 기대하는 강한 기대감으로 자신의 변론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욥의 말처럼 악인이 현세에서 심판을 받지 않는다할지라도 욥의 말을 거짓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내세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진정한 심판은 예수님의 재림시에 완성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당장 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먼 역사적인 안목으로 보면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심판하지 않으면 내세에서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날 심판하십니다. 의인은 마지막 날 반드시 상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의의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 정의의 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런 정의가 승리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잠시 불의가 이기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여 정의가 이긴다는 확실한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재림하시는 날 완전한 정의를 세우실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하고 죄악을 짓는 자는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할 것입니다.

오요한
▲오요한 목사.
7. 결론: 끝까지 믿음으로 사는 삶


의인이 고난 받는 것은 사실입니다. 악인이 잘 살다 죽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잘 사는 자는 신앙 생활 잘하고, 못사는 자는 신앙 생활 못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먼 역사적인 안목에서 영원한 세계에서 보면 반드시 의인이 잘 되고 악인이 망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욥도 나중에 두 배의 축복을 받습니다. 성경에 영원히 기록되어 존경을 받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상이 있습니다. 악인에 대한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상 주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정의가 실현되는 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지만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 끝까지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산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에 고통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옥의 심판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가난하게 살아도 마음에 평안이 있습니다. 죽은 후에는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야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고 병이 났을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기뻐하고 뛰놀아야 합니다. 아멘!

아멘! 오요한 목사(천안 UBF, <오요한 목자의 로마서 강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