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 캐슬
▲한국 중상류층 가정의 교육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드라마, ‘SKY 캐슬’.
박욱주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지난 주에 이어 ‘충격 엔딩’을 선보이는 화제의 드라마 jtbc ‘SKY 캐슬’에 대해 풀어냅니다. 이 드라마는 한서진(염정아), 강준상(정준호), 이수임(이태란), 황치영(최원영), 노승혜(윤세아), 차민혁(김병철), 진진희(오나라), 김주영(김서형), 이명주(김정난), 김혜나(김보라) 등 중년과 아역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통렬하게 풍자하면서 입소문만으로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식민화 교육의 잔재: 충성의무와 피해의식에 짓눌린 수동적 교육문화


◈충성심과 교육: 열화(劣化)된 일본식 공민교육

드라마 ‘SKY 캐슬’에 묘사된 한국 교육의 모습, 우리 교육 현실의 민낯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앞서 공자의 원(原) 교육사상이 순전히 출세지향적 공명심에 의해 왜곡되었다는 점을 지적했으니, 이번에는 일본식 공민교육(公民敎育)이 한국 교육에 미친 영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한국의 현 교육 체계는 일제강점기 시대 일본이 유럽, 특히 독일로부터 수입해 온 서구식 근대 교육체계를 이어받아 형성됐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 1871년 폐번치현(廢藩置縣, 기존 번 중심의 지방분권식 행정체계를 폐지하고 현 중심의 중앙집권적 행정체계 설립) 이후 문부성을 중심으로 새로운 교육행정 체계를 세웠다.

당시 일본 문부성 교육정책의 집행 방향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서구 학제, 특히 독일에서 1819년부터 최초 시행된 프러시아식 의무교육 학제를 최대한 모방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기존 번(藩) 체제 하에서 지역별로 분화되어 있던 교육방식과 교육행정을 중앙정부가 일괄 통제하는 것이었다.

교육 내용은 지적으로는 서구식 계몽을, 윤리적으로는 일왕과 일본 중앙정부에 대한 충성심을 도모하는 데 집중돼 있었다. 이를 황국신민화 교육정책(약칭 황민화 교육)이라 부른다.

이는 일본의 중세적이고 불교적인 전통 교육방식과는 거리가 먼, 독일식 근대 전체주의 교육사상을 이식한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메이지 시대에 제정된 일본의 황민화 교육은 1910-20년대를 지나면서 공민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갱신된다. 당시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조선, 대만 등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제국주의 국가로 새롭게 부상하는 중이었다.

이로 인해 일본 본토 내에서는 근대화된 신식교육을 받고 자라난 청장년 세대를 중심으로 기존 교육제도에 대한 갱신 요구가 일어난다. 산업화 시대 중산층에 편입되던 이들 세대는 보다 실용적이고 전문화된 실업보습 교육의 강화, 그리고 입헌국가 중산층으로서 누릴 수 있는 일정 정도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교육을 원했다.

공민 교육은 황민화 정책의 기본 골자는 유지하되, 제국주의 입헌국가에 걸맞는 새로운 공존공영 윤리에 대한 가르침을 추가했다. 기존 황민화 교육만으로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던 일본의 산업화 세태, 그리고 제국주의 열강으로 부상하는 일본 사회의 시대적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에 교육의 주된 목표에 일왕과 정부에 대한 충성과 함께 일본 사회의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지식, 윤리, 그리고 정치경제적 소양을 전수하는 과업을 추가했다.

당시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있던 조선도 이 공민교육을 수용해야 했다. 특히 1919년 3∙1 운동을 기점으로 기존의 강압적 황민화 교육이 잠정 중단되고, 보다 유화적인 문화통치 정책에 발맞춰 공민교육이 조선의 교육체계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일본 중앙정부는 식민지인들에게 본토 일본인들이 받는 교육보다 열등한 교육 내용을 전수함으로써 공민교육 시행에 차별을 두었다. 조선에 들어온 공민교육 교과 내용에는 시민으로서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교육이 빠져 있었고, 실업보습 교육 역시 하급노동자를 길러내려는 목적 하에 초보 수준의 내용만 포함하고 있었다.

SKY 캐슬
▲일제강점기 조선 국민학교의 수업 장면.
동일한 맥락에서 국내에 4년제 정규대학은 경성제국대학(오늘날 서울대의 전신, 물론 서울대 측은 이를 부정하는 입장이다) 하나만 존재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구제대학 혹은 전문학교라 해서 기독교 선교사들이 설립한 3년제 대학들(연희전문학교, 세브란스의전, 숭실전문학교, 이화여자전문학교 등)이 있었다. 이들 학교들은 실질적으로 대학 과정의 지식을 전수하면서 4년제 대학 승격을 꾸준히 요청했으나, 조선총독부는 교육 차별정책을 바탕으로 이들 전문학교들의 승격 요청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처럼 열등한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학업을 통해 출세하는 길은 실질적으로 두세 가지밖에 없었다.

첫째는 경성제국대학을 나온 뒤 조선총독부 관리가 되거나 조선에 진출한 일본기업에 입사하는 것, 둘째는 일본 본토로 유학을 가 조선에서 배우지 못한 고급 지식이나 기술을 배운 뒤 학자가 되거나 일본 기업에 입사하는 것, 셋째는 아예 일본 권역을 떠나 중국, 러시아, 미국 등지로 건너가 교육을 받고 정착하는 것, 이 세 가지 길이 학업을 통해 출세하는 경로의 전부였다.

이처럼 한국의 근대적 교육은 출발점부터 제한된 기회, 열등한 내용, 협소한 진로 등으로 인해 온전한 형태를 갖출 수 없었다. 일본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는 가운데, 초보 지식만 전하는 수동적이고 저열한 교육이 기회의 전부였다.

을사조약(1905년) 이전까지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설립한 학교들이 선진화된 신식교육을 시도했지만 그 시기가 짧았고,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는 기독교 계열 학교들조차 황민화 교육정책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SKY 캐슬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 정문(현 종로구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
◈수동성과 교육: 피해의식과 협소한 진로가 낳은 기형적 교육열

해방 직후 한국 정부는 신탁통치, 남북분단 등 혼란한 정치상황으로 교육 제도를 정비할 만한 여력이 없었고, 결정적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제대로 된 교육정책을 수립할 기회를 상실했다.

1950년대는 전쟁 여파로 인해 자라나는 세대가 학교에 다닐 수만 있어도 감사하게 여길 상황이었다. 그나마 미국과의 경제적, 문화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경공업 중심의 실업교육을 일으킨 것, 그리고 다수의 기독교 계열 학교들이 교육계 발전을 추진했다는 것 정도가 큰 성과였다.

1960년대로 접어들며 한국 전역은 전쟁의 상흔을 어느 정도 떨쳐낸 상황이었고, 이에 따라 정부는 교육정책을 정비해 선진화할 기회를 맞았다. 그러나 이 기회는 1961년 군사 쿠데타로 좌절됐다. 정확히 말해 쿠데타 자체가 문제였다기보다, 이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교육사상이 문제였다.

일제강점기 시절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해 교사로 일하다 만주군 군사학교에 입교해 일본군 장교로 임관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메이지 유신 당시 일본에서 이행된 근대적 교육개혁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그는 한국 근대화의 길이 일본 근대화 과정을 모방하는 데 있다고 확신했고, 이에 일본의 황민화 교육을 답습한 일제강점기 교육정책을 별다른 갱신 없이 계승했다. 달라진 점은 일왕과 일본에 대한 충성이 아닌, 대통령과 한국 정부에 대한 충성심을 강제한다는 것 뿐이었다.

SKY 캐슬
▲1970년대 한국 고등학교 교실의 모습. 일제강점기 당시의 사상과 방식을 그대로 계승한 교육이 시행되었다.
이런 동향은 유신정권 시절을 거쳐 강화되고, 전두환 및 노태우 정권 시기까지 연장되는 가운데, 한국 교육의 근본 기조로 자리매김한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기존 식민화 교육의 잔재가 별다른 개혁 없이 전해져 내려오면서, 수동적 인간을 길러내는 교육, 국가와 정권에 대한 맹목적 충성과 민족제일주의를 부추기는 교육이 한국 근현대 교육의 기조로 자리잡은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일제강점기 시절 얻게 된, 항상 열등한 교육기회만 제공받고 있다는 피해의식까지 가세해 현재의 기형적 교육열을 조장하는 데 일조했다.

이런 한국 근현대교육의 역사적 정황을 유념하고서 다시 ‘SKY 캐슬’의 서사로 돌아와 보자. 드라마 제목이 상징하듯, 한국 교육은 기본적으로 다양성을 존중하기보다 획일화와 제도에의 순종을 강요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국내에서 학업을 통해 출세할 수 있는 길이 오직 경성제국대학 하나밖에 없었던 것처럼, 현재 한국에서 학업으로 출세하기 위해 들어가야 하는 대학의 수는 기껏해야 4-5개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의미하는 SKY라는 용어는 이런 인식을 대표하는 은어다. 이 용어에는 최상위 세 개 대학을 하늘처럼 여기는 인식, 그리고 그 나머지 학교들은 땅바닥을 기는 학교들이라는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SKY 캐슬’의 주요 등장인물 전체는 출세를 위해 제도에의 수동적 순종을 강요하는 한국식 교육제도의 피해자들이다. 그 가운데서도 박수창(유성주 분)-이명주(김정난 분) 부부와 아들인 김영재(송건희 분)는 이미 극적인 파국을 맞이했고, 한서진(염정아)과 그녀의 두 딸은 점차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이들의 불행의 원인은 인생의 최고 모범답안이 최고대학 의대에 입학하는 것 뿐이라고 믿었다는 점이다. 가족애, 올바른 인간성, 겸손과 배려 등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가치와 성품은 최상위 학벌만 얻으면 자연스레 갖추게 될 것처럼 하찮게 취급했다는 것, 그래서 성적 향상과 유지를 위해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희생시켰던 것이 그들이 맞이한 비극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SKY 캐슬
▲ 현재 한국의 청소년 교육은 겉모양은 달라졌지만, 내용이나 목표 면에서는 일제강점기나 군사정권 시절과 비교해 본질적으로 크게 변한 점이 없다.
‘SKY 캐슬’의 서사 가운데 가장 명확한 악역으로 등장하는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 분)은 이러한 외길만을 삶의 정답으로 제시하는 한국 교육정책을 의인화한 존재라고 볼 수 있다.

그녀가 행하는 모든 악행은 시기심으로부터 출발된다. 김주영은 출중한 학벌(작중 최고학벌 수학과 출신으로 소개)에도 불구하고 이혼과 딸의 교통사고로 불행해진 자기 처지에 절망했던 인물이다.

충분히 행복해질 여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학벌과 성적에 집착하는 가정들을 골라, 거의 고의에 가깝게 파국을 맞게 하는 김주영의 행각은, 삶과 인생 자체를 돌보지 않고 학벌과 성적과 더 나은 교육 기회에만 집착하는 가정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한국의 교육 풍조 자체를 상징하는 듯하다.

현재 한국의 청소년과 청년들의 교육을 지배하는 일반 정서는 극단적으로 자기중심적 출세욕과 과시욕이다. 이는 기존 덕치에서 입신양명으로 궁극의 목표가 변질된 유학 교육사상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유입된 충성심과 수동성만을 강요하던 교육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교육 제도가 제시하던 충성의 대상은 처음에는 일왕과 일본 정부였고, 다음으로는 군사정권 지도자들이었으며, 현재는 각자의 사회경제적 입지다.

나의 사회경제적 입지가 곧 나의 가치를 결정짓는 것일까? 현실에서는 그렇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서는 이런 교육 패러다임을 벗어날 만한 대안이 많지 않아 보인다.

오늘날 다원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포스트모던 문화가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하나, 그 영향력이 우리 가치관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들, 특히 교육관과 인생관에는 깊이 침투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그래서일까, 필자의 눈에는 현재 한국의 기형적인 교육 정서를 극복하는 길, 오직 자신의 공고한 사회경제적 입지 확보에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집단주의적 수동성을 극복하는 길은, 현세가 아닌 내세를 바라보는 기독교 교육 사상에서만 발견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계속>

SKY 캐슬
▲‘SKY 캐슬’ 속 한국 교육의 희생양, 박수창(유성주 분)과 김영재(송건희 분).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