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박진호 목사의 신앙문답]을 매주 1회 연재합니다. 미국 남침례교단 목사인 그는 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를 담임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의 글은 박 목사가 운영하는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그가 직접 쓴 것으로, 본지는 박 목사의 허락을 받아 이를 게재합니다. 아울러 필자의 요청에 따라, 글이 그의 웹페이지에 게시된 날짜를 맨 아래 밝혀둡니다.

기도 성경
▲ⓒPixabay
[질문]

불신자라도 자식을 위해 정성을 다해 비는 엄마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실 수 있다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고귀함을 강조하고 또 부모의 자식 사랑의 지극함을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에 대한 사랑에 비유한다 쳐도 뭔가 잘못된 것 같아서 조금 혼돈스럽습니다.

[답변]

아이가 다른 집의 아버지를 매일 찾아가서 이것 저것 해달라고 요구한다고 해서 들어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 한두 번은 너희 부모가 해주어야 할 일을 왜 우리에게 요구하느냐고 잘 타일러서 돌려보낼 것입니다. 그런데도 매번 그러면 아예 정신박약아로 보고 그 부모에게 찾아가서 아이 치료나 교육을 잘 하라고 충고할 것입니다.

이처럼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당신을 자신의 온전한 주인으로 모시지 않은 불신자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실 리는 없습니다. 인간의 경우는 이웃 아이의 부모들이 다 있지만 하나님의 경우는 여러 신들이 있거나, 사람마다 신이 따로 있을 리 없습니다. 기도하여 응답을 받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자녀가 먼저 되어야만 합니다.

불신자들이 새벽마다 정한수를 떠놓고 목욕재계하고 온갖 치성을 드려서 기도해도 정작 기도를 드리는 대상인 그 신은 존재조차 하지 않습니다. 신이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전혀 모르고 자신과 개인적 인격적인 관계도 형성되지 않은 채 기도합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신들을 통칭하여서 천지신명(天地神名)이라고 부르며 기도합니다.

이는 바울이 아테네에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쓰인 단을 본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행17;23) 여러 신들을 섬기지만 혹시라도 자기들이 모르는 신이 있어서 그 신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봐 염려된다는 뜻입니다. 그런 신들이 있을 리도 없으니 불신자가 하늘과 땅의 모든 신들이여 내 소원을 제발 들어주소서라고 기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웃집 부모를 찾아가는 것도 아니고 이름도 모르는 세상 어른들 모두에게 제 일을 대신 하거나 도와주세요라고 허공에다 고함지르는 꼴입니다.   

열왕기상 18장의 바알 선지자 450명이 하루 종일 기도하고 춤을 추어도 응답이 없었으며 나중에는 칼과 창으로 몸을 자해하며 피를 내어도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자기 몸을 상해 피를 흘리는 것은 인간을 산 채로 바치는 것 다음으로 최고의 치성을 들인 기도입니다. 그러나 바알 신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에 하루 종일 450명이 구구절절 외친 기도는 허공에 사라진 소음이었을 뿐입니다.  

열명의 문둥이 사건(눅17:11-19)에서처럼 예수님이 불신자의 간구에 응해 치유해주셨던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구속을 완성하기 전이라 당신의 메시아되심을 증명해 보여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마리아인 문둥이 한 명을 구원으로 인도하려는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한명의 문둥이에게 주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19절)고 믿음이 치료 즉, 기도 응답의 조건이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오늘날의 신자들도 불신자를 위해서 기도를 해줄 수는 있습니다. 어느 누가 하나님이 구원으로 예정했는지 모르고 그런 기도의 교제를 통해서 주님을 조금이라도 알게 해주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단순히 현실적인 복만 빌어주어선 안 됩니다. 반드시 예수 십자가 구원의 은혜 안에 들게 해달라는 간구를 함께 해야 합니다. 아직 완전히 예수님에 대한 마음이 열리지 않는 불신자라도 겉으로 말로 아뢰지는 않아도 그런 간절한 심정을 갖고서 다른 문제들을 빌어줄 수 있습니다. 또 그러려면 반드시 평소에도 그 영혼의 구원을 위한 기도를 지속적으로 해주어야 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절대로 자녀의 성적, 취직, 결혼, 가정, 출세, 형통 등을 보장해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죄에서 구원해주러 오셨습니다. 또 죄에서 구원 받은 신자도 반드시 자신이 거룩하게 자라고 주님이 맡기신 소명의 성취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신자의 경우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기도는 이차적이고 신자답게 사는 일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 문제를 제거해달라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신자마저 온갖 정성을 다해 복을 빈다해도 다 들어주지 않는데 불신자가 그런다고 들어줄 리는 없습니다.

물론 이웃집 아이가 너무나 위급한 일로 도무지 도와주지 않으면 큰일날 지경이면, 열명의 문둥이 사건에서처럼, 다른 부모라도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랬다고 해서 그 아이와 그 다른 부모는 어떤 개인적 관계도 형성되지 않습니다. 평생 고마워할 수는 있어도 도와준 그 사람을 새로운 부모로 모시거나 계속해서 도와달라고 요청할 수는 결코 없다는 뜻입니다.  

그럴 리가 없지만 만에 하나 하나님이 불신자의 치성 어린 기도에 응답해준다 쳐도 그런 정성어린 행위 자체가 공로가 됩니다. 하나님은 신자가 천일 새벽기도한다고 그  치성에 상응 혹은 비례해서 응답해주지 않습니다. 아무리 큰 문제라도 전적으로 순전한 기도라면 잠시 한 번만 기도해도 응답해주십니다. 반면에 다른 종교는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다는 모든 종교는 행위구원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신자의 기도 중에 응답 안 되는 것도 많습니다. 오직 당신의 뜻에 합당한 기도만 응답해줍니다. 이런 판국에 불신자가 하나님 그분을 모르는데 어떻게 그분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할 수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불신자의 기도는 전부다 자녀와 가족의 형통과 출세 같이 현실적 축복에 관한 것입니다. 점을 보러가는 자가 칠성신의 거룩한 뜻을 따라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겠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칠성신도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천지신명 중의 한 신입니다. 불신자는 실존하지 않는 우상에게 자기 위로를 위해서 아니면 사탄과 그 졸개인 귀신들에게 도와달라고 비는 셈입니다.

요컨대 불신자의 기도는 하나님이 부모이고 자기는 그 자녀라는 인식이 전혀 없습니다. 오직 인간보다 더 힘이 세어보이는 존재라면 무엇이든 붙들고 떼를 쓰는 것입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자녀를 사랑하고 수고 희생하겠다는 심정이 이해는 되지만 인간 부모의 자식 사랑에는 자신의 정욕 고집 감정 죄성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그런  값싼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예수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성품 속성 사역 등으로 그분의 그리스도 되심을 인정할 뿐 아니라 자신의 진정하고 유일한 구주로 모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에 비로소 하나님과 신자는 부모와 자식의 사랑의 관계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기르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3,24)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구해야만 응답하십니다. 십자가에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절대적 사랑의 바탕에서만 그렇습니다.

박진호
▲박진호 목사
기도란 그래서 예수님의 생명과 맞바꾼 은혜에 감사하여 그분이 가신 길을 평생토록 따라가려고 주님의 거룩한 보호와 인도를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고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일을 잘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 사람이 갖지 못하는 엄청난 특권이요 은혜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기도의 내용을 보십시오.(마6:9-13) 거기에는 불신자가 행하는 기도의 내용은 하나도 없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만 현실적 문제에 관한 것이지만 출세와 형통과 안락을 구하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기본적 삶을 구하고 그것에 넘치는 복은 이웃과 나누기 위한 기도입니다.

결론적으로 다시 강조하지만 불신자의 기도에는 주님의 뜻을 실현하기는 커녕 자신이 죄에서 거룩해지려는 뜻도 전혀 없습니다. 오직 기복주의적 신념에 따라 실존하지 않는 우상게게 자기 위로를 구하거나 사탄과 그 졸개들에게 도와달라는 기도일 뿐입니다.

그런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준다고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가르치면 너무나 큰 잘못입니다. 아주 긴급한 경우에 하나님이 당신을 알게 해서 구원으로 인도할 목적으로 예외적으로 들어주는 경우 말고는 없습니다. 이를 분명하게 구분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참고로 저는 불신자와 함께 식사해도 혼자 속으로 묵상으로 기도합니다. 불신자가 정식으로 요청할 때만 사정을 들어보고 합당하게 기도해주면서 꼭 예수 십자가 구원 은혜에 들게 해달라는 간구를 보탭니다. 또 불신자가 하나님에 대해 어느 정도 마음이 열리고 여러 긴급한 사정이 있을 때는 제가 먼저 기도해줘도 되는지 물어보고 마찬가지 방식으로 기도합니다.

201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