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 캐슬
▲한국 중상류층 가정의 교육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드라마, ‘SKY 캐슬’.
박욱주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2주에 걸쳐 화제의 드라마 jtbc ‘SKY 캐슬’에 대해 이야기해 봅니다. 이 드라마는 한서진(염정아), 강준상(정준호), 이수임(이태란), 황치영(최원영), 노승혜(윤세아), 차민혁(김병철), 진진희(오나라), 김주영(김서형), 이명주(김정난), 김혜나(김보라) 등 중년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통렬하게 풍자하면서 입소문만으로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한국 교육과 공자: 유학(儒學)의 교육목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

‘SKY 캐슬’은 한국 중상류층 가정들에 만연한 입시위주 교육문화와 그에 결부된 신분상승의 욕망과 허영을 그린 드라마로, 회차를 거듭할수록 시청률이 높아지는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서사는 다소 과장된 면이 있기는 해도, 한국의 교육현실을 십분 반영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SKY 캐슬’ 속에 묘사된 현실은 기괴하게 뒤틀려 있다. 작품이 현실을 뒤튼 것이 아니라, 우리 교육 현실 자체가 뒤틀려 있다. 모두가 문제라고 말하지만 누구도 바꾸려 하지 않는 한국의 교육 현실, 대체 그 기형성의 기원은 어디에 있는가?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한국의 교육사상에 대한 인문지리적 관찰이 필요하다.

동아시아 3국(韓, 中, 日) 가운데 유독 한국과 중국 사이에는 교육관과 관련해 확연한 유사성이 존재한다. 한국 교육 제도가 일본의 것을 본받아온 것은 사실이나, 이는 한국이 독일식 전체주의 교육을 수입해온 일본에 강점된 식민지 시기를 경험했기 때문이지, 결코 양국의 교육사상이 유사해서는 아니다. 즉 일본으로부터는 교육 제도의 외형을 받아들였을 뿐, 교육의 정신까지 받아들였던 것은 아니다.

일본의 교육관은 원래 도제식으로 전승되는 장인형 직업교육 형태로 구현돼 왔다. 이는 일본인들이 오랜 시간 중세형 사회(무사도와 사무라이가 존중받는 봉건형 폐쇄사회) 체제를 겪으면서, 신분질서의 이동성이 현격히 낮은 사회구조(근대 이전 일본사회의 신분질서는 한국과 중국보다 더 엄격했다)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학문의 주도권은 주로 불교 승려나 일부 관료들의 손 안에 있었고, 그들 사이에서만 전수되어 왔다. 따라서 대다수 일본 백성들에게 교육이란 가업을 잇는 기술을 배우는 직업교육의 형태로 이루어져 왔다.

이런 현실은 메이지 유신과 근대화 시기 충성된 황국신민을 길러내려는 전체주의 공교육 체계가 확립되며 변화를 맞이했지만, 여전히 일본에서는 교육이라 하면 입시를 위한 지식 교육 외에도 일생을 매진해야 할 직업적 기술교육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부각된다.

반면 한국은 고려조에 중국, 특히 당(唐)의 영향을 받아 과거제와 관료제(3성 6부제)를 도입했고, 고려 말에는 송(宋)의 영향으로 성리학을 수용했다. 성리학과 과거제의 조합은 고려와 조선의 교육관을 결정짓는 사건이었다. 성리학을 배우기 위해서는 우선 한자를 알아야 했다. 과거에 응시하려면 유교경전을 익혀야 했다.

SKY 캐슬
▲조선시대 유학 교육의 본거지 역할을 했던 향교(부산 기장향교 전경).
공자가 창도한 유학은 교육의 목표를 군자(君子), 즉 도덕적인 정치 지도자가 되는 것에 두었다. 춘추전국시대 황음무도한 군주들의 탐욕에 각 봉국(封國) 백성들이 끊임없이 고통받는 것을 목격했던 공자는, 당대의 고난에 대한 해법으로 도덕적 완성에 이른 정치지도자의 양성과 옹립을 택했다.

그래서 유학은 기본적으로 학생들이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추구하는 것을 장려했다. 물론 유학의 교육사상이 순전히 출세 자체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었다. 입신양명의 본의는 획득한 권력, 지위, 명성을 활용해 덕치(德治)를 펼치는 데 있었다.

공자보다 한 세대 앞선 시기, 이에 대비되는 교육사상이 존재했는데, 바로 노자(老子)의 불언지교(不言之敎) 사상이다. 가르침을 말로 하지 않고 삶의 깨달음을 통해 전하는 것이 불언지교의 교육 원리다.

이는 교육이 인위적이어서는 안 되며,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리를 따라야 한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으로, 유교의 교육사상과 그 목적이 완전히 다르다. 유학이 군주로서, 관료로서, 지도자로서 권력과 지위를 얻기 위한 교육을 지향했다면, 도가는 인위적 정치 체제로부터 탈출해 자연만물의 이치에 순응해 살아가는 구도자를 길러내기 위한 교육을 지향했다.

한국은 고려 말부터 조선조 내내 무려 50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학, 특히 성리학의 교육사상과 교육제도를 추종했다. 그로 인해 우리 민족에 각인된 교육관은 다음과 같이 간단히 정리될 수 있다.

교육의 기초는 한자를 ‘암기하는 것’이었다. 천자문이 대표적이다. 그 다음으로는 고생하며 암기한 한자 지식을 활용해 유학의 성현들(공자, 맹자, 주자 등)이 남긴 도덕적 가르침을 ‘익히고, 해석하고, 체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과거시험에 응시해 배운 바를 활용하여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안을 ‘써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를 통해 높은 권위를 획득하고 존경을 받는 ‘정치적 지위를 얻어야’ 한다.

지극히 출세지향적이고 현세중심적인 이런 교육관은 사람들의 신분상승 욕구와 권력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고 만족시키기에 적합했다. 그런데 공자가 수신제가를 위한 교육원리를 주창했던 본래의 의도는 궁극적으로 도덕적 통치가 펼쳐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유자재로운 출처진퇴(出處進退)의 자세를 강조했다. 군주가 덕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관직에 나아가 그의 정치를 떠받들고, 군주가 부덕하면 출세하지 말고 재야에 묻혀 수신하며 후학을 기르는 일에 전념하라는 것이 출처진퇴의 가르침이다.

SKY 캐슬
▲공자(왼쪽)와 주자(오른쪽). 한국 교육사상의 근본정신을 정립한 인물들이다.
◈한국 교육과 출세: 뒤틀린 교육 목표, 인간됨에 관한 소양 배제

그러나 후대 사람들은 공자가 제시한 교육사상의 궁극적 목표인 덕치 자체보다 그 과정적 목표인 입신양명에 몰두했다.

공자는 인간의 심성에 대해 다소 낙관적인 전망을 갖고 있었는데 이 점이 문제였던 듯하다. 결국 유학 덕분에 한국에서 교육이란 권력, 부, 명성을 누리기 위한 수단이라는 사고가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유학의 영향이 비교적 덜했던 일본에서는 교육 목표가 삶의 본분을 지키며 사는 것에 지정돼 있었다.

한국의 교육방식 역시 유학에 지배되어 있었다. 일단 ‘암기하고, 확정된 텍스트를 독해해 익히고, 이를 시험장에서 써내는 것’, 그래서 합격자가 약속된 ‘지위를 얻는 것’이 한국과 중국의 대표적인 교육방식이었다.

‘SKY 캐슬’은 유학적 사고에 지배된 한국 교육의 현실적인 양태, 그것도 뒤틀린 양태를 가감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드라마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한서진(염정아 분)이 자신의 딸 강예서(김혜윤 분)를 교육시키기 위해 들이는 정성과 거기에 반영된 욕심은, 왜곡된 입신양명 사상의 전형 중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청소년 학부모들이 자녀교육 시 보이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딸을 한국 최고대학 의대에 보내야 한다는 강박증, 이를 통해 자신의 비루했던 과거 신분을 완벽하게 세탁하고, 집안에서의 지위 역시 공고히 하겠다는 한서진의 욕심과 집착은, 그런 어머니 밑에서 동일한 신분상승의 욕망을 갖고 시험성적 고수에 매진하는 강예서의 자존심과 맞물려 막강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자녀가 무슨 대학, 무슨 학과를 가는지가 인생의 가치를 결정하는 이런 기괴한 사고방식은 조선시대 교육관의 현대적 변형태라 할 수 있다.

SKY 캐슬
▲‘SKY 캐슬’의 한서진(염정아 분)과 강예서(김혜윤 분). 교육을 통한 출세에 강박적 집착을 보이는 인물들로, 오늘날 한국 교육사상의 병폐를 표상한다.
한국 교육사상과 교육제도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전근대 사회에서나 통용될 법한 골동품 같은 사고구조에 그대로 매인 채 포스트모던 시대에 대응하는 인재를 길러내려 하는 것이 문제다.

그것도 원래 그 교육사상이 주창된 목적에서 한참 벗어난, 본말이 전도된 교육관을 갖고 자녀들을 양육하려 한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문제를 제기하지만 누가 앞장서 이를 실질적으로 개혁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한국의 비틀린 유학적, 유교적 교육관의 생명력이 바로 세속적 공명심(功名心)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은 공교육 부문에서 기독교나 불교 등 여타 종교의 교육원리 적용이 대단히 어려운 국가들 가운데 하나다.

그 중에서도 한국은 전체 인구 가운데 상당한 비율의 종교인구를 갖고 있는데도 그렇다. 이는 교육사상과 제도가 철저히 유교적 사고에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심성 가운데 많은 부분이 여전히 전근대적이고 유교적이지만, 서구 기독교 문화와 현대 포스트모던 문화의 유입 덕에 상당부분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교육에 대해서만큼은 예외다. 교육관 만큼은 유학적 교육사상이라는 가면을 쓴 천박한 과시욕과 허영 때문에 세월이 흘러도 변하는 것이 없다.

그간 한국의 교육제도는 시험의 모습과 시험과목 구성만 변해왔을 뿐, 근본적인 교육목적과 방식, 그리고 동기는 개혁된 바가 없다.

그리고 이 개혁되지 않는 교육관은 그 목표를 순전히 세속적 출세에 둔다.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도덕적 성품, 인내심, 양심, 배려심 등 인성에 대한 교육은 실질적으로 한국교육의 목표로부터 완전하게 배제되어 있다.

애초 국가도, 학부모도, 그리고 그 결과 학생들도 대부분 사람다운 사람됨을 가르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사실 학부모와 학생들은 이런 현실 때문에 어렴풋한 괴로움을 느낀다. 입시에 실패하면 진정으로 비참한 상황을 맞이하지만, 막상 입시에 성공한다 한들 그들의 삶이 온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지지 않은 이상, 모든 사람은 올바르고 보람된 배려와 협력의 삶을 살고 싶어할 것이다.

그런데 현 한국의 교육사상과 제도는 이런 온전한 삶에 대해 아무런 지침도, 방향도 제시해주지 않는다. 이는 애초 인간의 근원적 죄성을 알지 못한 공자 사상의 당연한 결말이다.

SKY 캐슬
▲인간됨을 위한 교육이 배제된 교육은 소기의 목표를 달성해도 온전한 삶에 기여하지 못한다.
기독교 교육은 그 과정부터 종착점까지 다음과 같은 단계적 목표를 갖고 있다. 우선 글을 익히고 인간과 세계의 섭리를 알아간다. 하나님의 계시인 성서를 배우고 익힌다. 성서를 통해 죄를 깨닫고 회심에 이르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회심한 마음을 유지하도록 성결한 신앙생활의 도리를 가르치고 실천하게 한다. 이는 세속화된, 질적으로 저하된 유학의 교육관이 범접할 수 없는 고결한 목표다.

기독교 교육은 그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행한 이에게 도덕적 삶, 공동체적 하나됨의 삶, 성결해진 마음을 선사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사람의 힘으로 해결받을 수 없는 죄성의 문제를 신앙으로 해결받도록 인도하기 때문이다.

즉 기독교 교육은 교육행위 가운데 의로움과 죄악의 가치판단을 적극적으로 관여시킨다. 세속적인 과시욕과 허영, 그리고 이를 충족시키려는 교육행위는 그 자체가 의롭지 못한 것으로 판단되기에 끊임없이 경계하고 지양해야 할 바로 여겨진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사상에는 이런 판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출세하는 것 자체가 지고선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SKY 캐슬’은 바로 이 점을 지목해 비판한다. 부도덕을 정당화하는 교육관에 지배된 우리의 현실을 폭로한다. 그리고 이는 이 드라마가 누리고 있는 커다란 인기의 주된 원동력이다.

교육의 참 목적이 입시와 출세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든 이가 분명히 알고 있기에, 한국의 기괴한 교육현실을 폭로하는 장면마다 공감을 얻고 그에 따르는 카타르시스를 향유하는 것이다.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