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권혁승 박사(서울신대 구약학 명예교수)의 논문 <이스라엘의 삼대 명절과 안식일 이해>를 매주 1회 연재합니다.

권혁승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4. 신약시대 이후 유월절과 관련된 유대인의 풍습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이후 유대인들은 양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를 상실하였다. 그에 따라서 유월절을 지키는 관습도 크게 바뀌게 되었다. 그들은 성전에서 양을 잡는 의식 대신 오히려 가정에서 유월절 음식을 나누는 것에 유월절 행사의 강조점을 두었다. 그러나 강조점이 바뀐 것일 뿐 내용이 새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유월절과 관련된 명절 풍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누룩 찾기 ('브디카트 하메츠' : the search for leaven)

유월절 명절이 시작되기 전 집안에서 누룩이 포함된 식품들을 찾아 제거하는 일이 중요했다. 이것은 유월절이 시작되기 하루 전날 밤에 이루어지며 그 집의 가장은 촛불을 켜들고 집안을 샅샅이 뒤져 누룩이 포함된 것은 무엇이든지 찾아내 소각시킨다. 오늘날에 와서 이런 누룩 찾기 풍습은 실제적인 의미보다는 상징적인 관습으로 지켜지고 있다.

집의 여주인은 이런 누룩 찾기 풍습을 봄철 대청소 기간으로 삼아 집안 전체를 말끔히 정돈하며 누룩을 제거한다는 구실 하에 이부자리를 비롯하여 각종 그릇까지도 깨끗이 닦는 기회를 삼는다. 이런 청소를 마친 다음 여주인은 누룩이 포함된 빵 한 조각을 남 몰래 숨겨두고 남자 가장은 이것을 찾아 불에 태우는 풍습을 지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유월절의 누룩 찾기는 그 가정의 대청소 기간이 되면서 또한 가족 전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역할도 한다.

(2) 유월절 식탁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유월절은 식탁의 나눔을 통하여 그들의 신앙을 지키며 전수하는 중요한 명절이었다. 유월절의 식탁은 특별한 음식들로 꾸며지게 되는데, 모든 것들이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유월절 식탁의 음식 내용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세 개의 무교병: 특별히 구운 무교병 세 개를 나란히 겹쳐서 놓는다. 이것들은 다른 무교병보다 더 두텁게 구운 것이다. 이 무교병을 히브리어로 '미츠보트'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계명들'이다. 그리고 맨 위에 있는 무교병을 '제사장'이라 부르고, 두 번째의 것은 '레위인,' 마지막 것은 '이스라엘인'이라고 불렀다.
2) 쓴 나물 종류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양고기와 함께 먹도록 명령받은 것이다(출 12:8). 오늘날에는 그 의미를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그들이 애굽 사람들에 의하여 당한 고통을 표현한다(출 1:14).
3) 죽: 이것은 과일, 조미료, 포도주, 그리고 무교병을 섞어서 만든 죽으로서 쓴 나물을 이 죽에 찍어서 먹었다. 히브리어 명칭은 '하로데트' (harodeth)라 하는데 이것은 '진흙'을 의미하는 '하레스' (heres)에서 온 단어로서, 진흙의 색깔과 비슷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상징적인 의미로는 유대인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면서 만들었던 회반죽을 표현한다.
4) 구운 달걀: 이것은 성전 시대에 유월절 제물을 드리면서 더하는 추가적인 요소로 간주하였다. 기독교의 부활절 행사에서도 삶은 달걀을 사용하는 것과 무관치 않은 요소라 할 수 있다.
5) 양의 정강이 부분: 이것은 제물로 잡은 유월절 양을 상징한다.
6) 파슬리: 이것은 고대시대 잔칫상에서 특별하게 곁들인 음식이었다.

이상에서 언급된 음식들은 큰 접시에 담아 유월절 의식을 집행하는 가장의 앞에 놓게 되는데, 이 음식들을 놓는 방법도 정해져 있다. 무교병들은 접시의 중앙에 위치하며 천으로 덮어둔다. 무교병의 상단 오른 쪽에는 양의 정강이 고기가 위치하고, 왼쪽에는 구운 달걀이 놓인다. 그리고 무교병의 하단 오른쪽에는 쓴 나물이 위치하고, 왼쪽에는 죽을 놓는다.

(3) 네 잔의 포도주

유월절 음식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네 잔의 포도주이다. 유월절 행사가 진행되면서 가족들 전체가 포도주를 마시기 때문에 충분한 양의 포도주가 미리 준비되어야 한다. 네 잔의 포도주를 마시는 이유에 관하여는 많은 설명들이 존재한다. 한 설명에 의하면, 네 잔의 포도주는 출애굽기 6:6-7에 나오는 네 가지를 표현하는 것으로 보았다. 즉 "너희를 빼내며", "너희를 건지며", "너희를 구속하며",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등이다. 또 다른 설명에 의하면, 여기에서의 네 잔의 포도주는 주의 날에 관련하여 악인들에게 나타나는 하나님 진노의 잔과 주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축복과 구원의 잔으로 보았다.

유월절의 포도주 잔과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엘리야의 잔'이다. 세 번째 잔과 네 번째 잔 사이에 특별히 따로 준비한 잔에 포도주를 채워야 하는데, 이것은 참가자들을 위한 잔이 아니라 엘리야 선지자를 위한 잔이다. 유대인들은 엘리야를 메시아가 오기 전에 먼저 오게 될 선지자로 이해하였다(말 4:5). 메시아를 대망하는 신앙이 출애굽 구원과 직결되어 있는 유월절 행사에서 엘리야를 등장시키는 풍습을 만들었다. 그들은 매 유월절마다 엘리야가 각 집을 방문하는 것으로 믿었고, 그래서 엘리야를 위한 포도 잔을 준비하는 것이다. 유월절 의식을 시작하기 전에 가장은 엘리야가 들어 올 수 있도록 집의 문을 약간 열어 두는 풍습도 지키고 있다.

(4) 학가다(Haggadah)

유월절이 시작되는 첫날 저녁에 진행되는 모든 행사를 '세데르'(seder)라고 부른다. 이 '세데르'는 음식에 대한 축복을 포함하여 노래들과 질문. 응답 등 14가지 절차로 이루어진다. 이런 절차를 모두 마치는 데에는 약 2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이 세데르 중에서 가장 중심적인 부분이 '학가다'(Haggadah)이다. '학가다'라는 단어는 '이야기해 주다'라는 히브리 동사에서 파생된 것으로, 영어로는 'story' 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것은 "너는 그날에 네 아들에게 뵈어 이르기를 이 예식은 내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을 인함이라"(출 13:8)는 성서적 명령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구절에서 '이르기를'에 해당하는 단어가 히브리어로는 '학가다'와 같은 의미인 동사 '힉기드'(higgid)이다. '학가다'의 내용은 출애굽과 관련된 성서내용을 이야기체로 꾸민 것으로서 역대의 유명한 랍비들의 주석과 설명이 보충적으로 삽입되어 있다.

'학가다'는 오랜 역사를 그 배경으로 갖고 있다. 그 내용 중에 어떤 것들은 제2성전시대까지 그 기원을 소급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일부 내용은 몇 백 년 전에 시작된 것들도 있다. 또한 기원이 제2성전시대까지 소급될 수 있는 것이라 하여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져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기도 했다. 어느 면에서 '학가다''는 오랜 역사를 거쳐 온 유대인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서 한 사람에 의한 작품이 아니라 유대인 전체가 참여하여 작성한 민족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5) 네 가지 질문

유월절 학가다 내용의 중심 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은 네 가지 질문과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들이다. 학가다 자체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명절의 즐거움을 나누는 측면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성서의 내용을 전달하려는 교육적인 의도가 담겨있다. 이런 교육적 측면을 강화하기 위하여 학가다에는 가정의 어린이들로 하여금 네 가지 질문을 하도록 구성이 되어 있고 이에 대한 대답이 주어져 있다. 네 가지 질문의 요지는 "왜 오늘밤은 다른 날 밤들과 다른가?"와 관련된 것으로서 유월절 밤이 다른 날과 다른 모습을 네 가지로 나누어질문하게 된다. 네 가지 질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다른 날 밤에는 누룩 있는 떡과 누룩 없는 떡을 함께 먹었는데, 왜 오늘은 누룩 없는 떡만을 먹어야 하는가?  
(2) 다른 날 밤에는 모든 종류의 채소를 먹었는데, 왜 오늘은 쓴 나물만을 먹어야 하는가?
(3) 다른 날 밤에는 한 번도 채소를 다른 것에 담그지 않았는데, 왜 오늘은 죽에 채소를 담가야 하는가?
(4) 다른 날 밤에는 똑바로 앉기도 하고 비스듬히 눕기도 하였는데, 왜 오늘은 비스듬히 누워 식사를 하는가?

위에서 본 질문들 중에서 본래적인 것은 첫 세 가지 질문이었다. 마지막 네 번째 질문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에 추가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세 번째 질문도 본래는 '다른 날  밤에는 구운 고기도 먹고, 삶은 고기도 먹는데, 왜 오늘은 구운 고기만 먹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었지만 성전 파괴 이후 새로 생긴 상황 때문에 내용이 바뀐 것으로 보고 있다.

이상의 질문들에 대한 답변들이 학가다의 본론 부분을 이루고 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신명기 6:25에 간략한 내용으로 나타나있다. "우리가 옛적에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니...." 유월절 밤이 다른 날 밤과 다른 이유는 여호와께서 종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여 출애굽 구원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학가다는 많은 관련 성경구절이나 관련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