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서
▲박광서 목사
과거 반공시대의 포스터 문구인 "무찌르자 공산당, 때려잡자 김일성", 북한 무장공비에 의해 희생되었던 이승복 어린이의 절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50대 이상의 반공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그 시대의 분단의 파편들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1991년 소련과 동구권 공산국가들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공산주의는 지구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상인 것처럼 착각하게 되었다. 어쩌다 공산주의 운운하면 철지나고 한물간 사상을 왜 언급하냐며 조소했다. 과연 공산주의가 철지난 이데올로기일까? 영적인 그리스도인도 동일한 시각을 가져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공산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요한계시록 13장에 등장하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땅에서 올라진 짐승'이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를 추동적 자양분으로 하여 추악한 역사를 지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사탄의 조종을 받은 세상권력과 거짓 종교지도자들이 결탁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는데 그 동력이 이런 사상들인 것이다. 지난 200년간 두 짐승은 '평등'이라는 거짓 이데올로기로 유토피아를 꿈꾸게 했다. 40여 공산국가가 이 헛된 망상에 빠져 1억이 넘는 뼈아픈 희생을 치렀음에도 저들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앞으로도 브레이크가 파열된 열차처럼 이 미혹의 질주는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죽은 것 같았던 공산사상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었을까? 그것은 공산사상이 카멜레온처럼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칼 마르크스가 '경제'적 시각에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혁명이론을 주장하며 역사예언을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자 그 추종자들은 실망하지 않고 프로이트의 '성'(性)을 주목하고 이를 통해 재기를 꿈꾸었는데 대성공이었다.

흔히 '네오마르크시즘'(Neo-Marxism)이라 불리는 움직임이 그것이다. 네오마르크시즘은 서구사회의 성적 타락과 전통적인 가치상실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이에 고무된 저들은 정치적 '성애화'(性愛化)에만 머물지 않고, '문화' 전반으로 확대하여 내·외면을 더욱 강화했다.

그것이 바로 '문화마르크시즘'(Cultural Marxism)으로, 이탈리아의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 프랑스의 구조주의, 그리고 독일 프랑크푸르프학파의 '비판이론' 등이 그 사상적 지류들이다. 문화마르크시즘은 오늘날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그 우산 아래 가두며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공산주의자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평등한 공산사회다. 문제는 공산사회로 가는 길목을 막고 있는 장애물이 있는데 그게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체제'라고 저들은 믿는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체제를 지탱해주고 있는 기둥은 무엇일까? 공산주의자들은 '가족', '국가', 그리고 '기독교'가 이 체제를 받쳐주고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그것들을 파괴할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릴 수 없는 것이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이 '돈'과 '성(性)'인 바, 그것으로 성경적인 결혼관, 가족관, 성정체성, 종교관 등을 전복시키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여기서 '젠더 이데올로기'가 나왔다. 만일 '젠더주류화'(GM)가 보편화될 수만 있다면 세상은 자연적으로 파괴될 것이다. 그토록 싫어하는 가족, 교회, 국가는 말할 것도 없다.

흔히 '68혁명 세대'라 불리는 이들은 '네오마르크시즘의 산물'이었다. 이들은 네오마르크시즘의 영향을 받고 자라난 세대들이라 서구의 기독교 전통적인 가치나 윤리체계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이 오늘의 혼탁한 세상을 만든 주범들이다. 그들이 문화전반에 진출하여 UN과 EU를 장악하면서 전 세계에 자신들의 '문화 마르크시즘'을 전파해왔다.

그로 인해 생긴 지뢰들이 동성애와 급진 페미니즘과 이슬람이요, 오늘날 'PC'(political correctness)라 불리는 좌익의 갑질인 것이다. 이것의 치명적 해악으로 인해 세상은 지금 병들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문화마르크시즘의 씨앗에서 발아한 40대 이하의 '밀레니엄 키즈들'이 만들어낼 '밀레니얼 마르크시즘'(Millennials Marxism)은 앞으로 어떤 모습을 연출해낼까? 저들도 사탄이 심어놓은 유토피아를 꿈꿀 것이다. 필연적으로 황폐와 파괴로 귀결될 유토피아인줄도 모르고 미친 듯이 질주할 것이다.

이런 위기의 시대에 교회가 대처할 수 있을까? 몰락한 서구교회는 우리의 반면교사다. 작금의 세속화된 무력한 모습으로는 필패다. 문화적 전면전을 감당할 수가 없다. 왜 그런가? 적도 모르고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두 짐승의 도구인 '젠더주류화'를 설명할 수 있는 목회자가 얼마나 될까? 그 기원과 구체적인 내용을 신학과 신앙적 차원에서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지도자가 얼마나 될까?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과거 교회성장시대의 구태와 안일함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종말의 깊은 터널에 진입한 시점에 속화된 목회자들이 원하는 좋은 시대는 결코 오지 않는다. 지금은 신앙적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종말적 투쟁을 해야 할 때다.

오늘의 교회는 다음세대와 교회의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문을 닫아야 할 것이고 수치스런 흔적만 남기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영적 전투의 현장에 임하는 것이지 병든 신앙의 현장에 임하는 것이 아니다.

박광서 목사(큰사랑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