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오요한
욥기 21장 강해

요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높은 자들을 심판하시나니 누가 능히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겠느냐(22절)”.

오늘 말씀은 소발의 두 번째 변론에 대한 욥의 대답입니다. 소발은 욥이 악인이므로 벌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소발은 욥이 고난 받는 것을 보고, 욥의 죄를 거짓으로 만들어내어 공격하였습니다. 욥은 이런 소발에게 악인이 잘 되는 현실의 여러 경우를 소개합니다.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 현실적인 진리를 말합니다.

욥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를 깨달으면서 인간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합니다. 우리는 나의 지식으로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겸손해야 합니다.

1. 하나님 앞에서 근심하는 욥

1-6절에 보면 욥은 친구들에게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욥에게 위로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욥은 진리의 확신을 가졌으니, 겸손하면서도 담대하게 발언합니다. 욥은 하나님이 의로운 자신에게 고난을 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마음이 조급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욥은 자기의 당한 고난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근심(원망)하였습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의로운 자기를 죄인 벌하시듯 무서운 환난으로 괴롭히시는가 근심합니다. 그 근심 때문에 그는 견디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는 고난의 이유를 알지 못하여 답답해 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이 지금 욥의 모습을 보면 놀라고 입을 가릴 정도입니다.

욥은 자녀와 종과 재산을 잃고 병이 날 때를 기억만 해도 어안이 벙벙합니다. 그가 과거에 당한 비참한 일들을 돌아볼 때에 가슴이 먹먹하고 소름이 끼칠 지경입니다. 불안과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습니다.

욥이 자기의 당한 고난을 실제로 보여주면서, 그 친구들의 이론이 틀린 것을 지적합니다. 욥은 모든 고난은 반드시 죄의 결과라고 하는 그 친구들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욥는 친구들더러 침묵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 악인의 번성에 대한 고찰

7-10절에 보면 욥이 현실적으로 악인이 생존하고 장수하며 세력이 강해지는 것을 알라고 합니다. 그들의 후손은 잘만 살고 있습니다.

욥은 친구들의 논리대로 할 경우 현실의 풀리지 않는 난제를 제시합니다. 악인들은 그들의 자손의 잘 되는 것을 보면서 행복하게 지냅니다. 악인도 하나님의 경륜에 의하여 많은 자녀들을 거느립니다.

악인이 이 세상에서 오래 살며 세력을 잡는 일이 있음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악인들의 집은 평안하고 하나님은 즉시 그들에게 매를 대지 않습니다. 물론 악인들이 벌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악인이 세상에서 끝까지 형통한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응이 이 세상 중심이 아니고 내세 중심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번성하다 지옥에 가면 이 세상의 번성이 저주입니다.

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다 천국에 가면 이 세상에서 고난이 축복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설명해도 하나님의 그 섭리를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3. 잘 되는 악인의 후손들에 대한 고찰


11-15절에 보면 악인들의 자녀들이 양 떼 같이 많습니다. 악인들은 그 자녀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쾌락을 누리며 즐기라고 말합니다.

악인은 쾌락주의에 빠집니다. 악인들의 자녀들은 춤추며 잘만 살아갑니다. 그들은 행복하게 살다가 고통도 없이 죽음을 당합니다. 악인들은 하나님께 우리를 떠나달라고 합니다.

그들은 주의 도리를 알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전능자를 섬기지 않고 기도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악인은 하나님의 긍휼에 의하여 형통하면서도 그 형통함이 자기의 손에 달린 줄 오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말을 합니다. 악인은 하나님을 섬길 필요도 없고 그에게 기도할 필요도 없다고 합니다.

악인의 잘못은 자기의 번영 역시 하나님의 은혜인 줄 모르는 것입니다. 그들은 짐승과 같은 무지에 있는 자입니다.

그들은 돼지가 도토리나무 아래서 그 떨어진 도토리를 많이 주어 먹고도 그 나무를 알아보지 못하고 가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4. 악인이 망하지 않는 다양한 사례들


16-18절에 보면 익인들은 자기들의 성공이 자기들 힘으로 이룬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욥은 그들의 생각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욥은 이런 악인들을 싫어합니다. 욥은 악인들과 다른 인생관을 갖고 있습니다. 욥은 악인들과 달리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복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가져가신 분도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에게 재앙을 현재 많이 내리지 않습니다. “몇 번이나 있었느냐”란 말이 중요합니다. 회개치 않은 악인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벌을 받는 일에 대해 욥은 알고 있습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간 통치 원리는 인간의 육신뿐 아니라 그의 영혼, 그리고 현세뿐 아니라 내세와도 관련을 가집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죄인을 다스리심에 있어 공의로우시면서도 일정한 법에 예속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다양성을 지녔고 또한 자유로우십니다. 그러므로 회개치 않는 죄인들이라 해서 그들이 모두 다 이 세상에서 꼭 같은 모양으로 곤고케 되거나 멸망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 중 어떤 자는 현세에서 육신도 망하고, 어떤 자는 현세에서는 호화롭게 살다 내세에 가서 비참해집니다. 악인이 이 세상에서 패망하는 경우가 있지만, 모든 악인이 다 그렇게 되진 않는다는 것이 욥의 변론입니다.

5. 악인을 지금 당장 벌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19-21절에 보면 친구들은 “하나님이 아버지의 죄를 그 자식들에게 갚으신다”고 말하지만, 욥은 그런 말 말라고 합니다.

죄 지은 그 사람이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야만 그가 제 죄를 깨닫습니다. 죄인은 제 스스로 망하는 꼴을 제 눈으로 보아야 하며, 전능하신 분께서 내리시는 진노의 잔을 받아 마셔야 한다고 말합니다.

만일 그 악인의 죄값이 악인 자신에게 미치지 않고 그의 자손에게 미치게 된다면, 그 악인은 자기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악인은 그의 사후에 자기 후손에 대하여 무관합니다. 악인들이 죽은 후에 심판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합니다.

자식에게 심판을 내리면, 악인들은 자식의 심판에 관심도 갖지 않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심오하신 처사에 대하여 알아보기를 원합니다. 자신이 다 알지 못하는 지식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합니다.

6. 신비로운 하나님의 주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높은 자들을 심판하시나니 누가 능히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겠느냐? 어떤 사람은 죽도록 기운이 충실하여 안전하며 평안하고 그의 그릇에는 젖이 가득하며 그의 골수는 윤택하고 어떤 사람은 마음에 고통을 품고 죽으므로 행복을 맛보지 못하는도다. 이 둘이 매 한 가지로 흙 속에 눕고 그들 위에 구더기가 덮이는구나(22-26절)”.

욥은 악인의 번성을 보면서도 알고 있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은 높은 자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하나님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충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하나님에게는 실수가 없으십니다. 욥은 하나님의 섭리의 일부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하나님의 완전하신 섭리를 믿고 있습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겠느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사람이 모를 것도 많으나 그것은 사람의 무지 때문이고, 하나님의 잘못은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우리가 모르는 오묘함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믿을 만합니다. 과연 하나님의 지식은 무한하고 또 신묘막측합니다.

참으로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도록 충실하여 안전하여 평안하고 그의 그릇에 젖이 가득하며 그의 골수는 윤택합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마음에 고통을 품고 죽으므로 행복을 맛보지 못합니다. 그러다 둘 다 죽어 한가지 흙으로 가고 구더기가 덮습니다.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신묘막측하심을 진술합니다.

욥은 다만 자기의 무지를 고백합니다. 욥은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섭리의 신비를 느끼고 있습니다.

7. 잘 살다 가는 악인들의 사례들


27-34절에 보면 욥은 친구들의 생각을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속셈은 욥을 해하려는 것입니다. 그들은 욥이 죄를 지어서 망했고, 더 망할 것이라고 합니다.

친구들은 세상을 많이 돌아다닌 견문 넓은 사람들과 말을 해 본 일이 없느냐고 합니다. 여행자들은 세상에서 악인들이 모두 다 멸망하는 것이 아니고, 개중에는 그 사는 날 동안 평안히 지나다가 평안히 죽는 자들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회개치 않는 악인이 이 세상에서 평안히 살고 또 평안히 죽기도 합니다. 악인은 죽어도 달게 죽습니다. 그의 무덤에는 무덤지기가 있습니다. 골짜기의 흙덩어리가 그를 부드럽게 덮어주고, 셀 수 없는 사람들이 그의 앞뒤에서 그를 조문하며 따를 것입니다.

생전에 잘 살다가 죽어서도 대우받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친구들은 악인은 벌을 받는다고 합니다. 욥은 악인은 반드시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는다는 변론이 성립될 수 없다고 단언하면서, 그것으로 자기가 설득될 수 없고 따라서 자기에게 문제 해결을 주지 못한다고 합니다.

오요한
▲오요한 목사.
8. 결론: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시는 하나님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벌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물론 그들은 내세에 심판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악인을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세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겸손해야합니다. 욥기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겸손입니다. 아멘.

오요한 목사(천안 UBF, <오요한 목자의 로마서 강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