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윙키즈
▲한국전쟁기 거제도 포로수용소 내 댄스단의 일화를 다룬 영화, <스윙키즈>.
이번 박욱주 박사님의 지난 주에 이어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아이돌 엑소(EXO)의 ‘연기돌’ 디오 도경수(로기수), 박혜수(양판래), 오정세(강병삼), 김민호(샤오팡), 자레드 그라임스(잭슨), 로스 케틀(소장) 등이 출연한 영화 <스윙키즈>를 살펴봅니다.

이 영화는 <과속스캔들>, <써니>, <타짜: 신의 손> 등을 연출한 강형철 감독의 6번째 작품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19일 개봉한 이 영화는 6·25 한국전쟁 당시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결성된 ‘댄스단’ 프로젝트를 주요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삶의 불안과 음악: 스윙재즈, 죽음과 절망에 저항하기

영화 <스윙키즈(Swing Kids)>는 통상 스윙재즈라 하면 떠올리는 춤의 장르들, 대표적으로 지터벅(Jitterbug, 한국에서는 일본식 발음인 ‘지루박’으로 불리곤 했다), 린디합(Lindy hop), 섁(Shag), 이스트 코스트 스윙(East Coast swing), 발보아(Balboa) 등이 아닌 탭댄스(tap dance)를 주요 소재로 삼는다.

탭댄스는 1930년대 스윙댄스의 지류 가운데 하나인 린디합으로부터 탄생하기는 했으나, 초창기를 제외하고는 스윙재즈보다 다른 음악들과 어우러진 시간들이 많아, 엄밀히 말해서 스윙댄스의 하부 장르에 속하지는 않는다.

뮤지컬 <로기수>의 김신후 작가나 <스윙키즈>의 강형철 감독이 이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스윙재즈’와 ‘탭댄스’, 이 둘은 작품 속에서 다분히 의도적으로 연합된 듯하다.

그렇다면 <로기수>와 <스윙키즈>의 작가들이 굳이 장르 지정의 오류를 감수하면서까지 전달하려 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두 대중문화 장르인 스윙과 탭댄스의 역사적 기원 및 배경을 간략하게나마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선 스윙부터 시작해 보자.

스윙음악은 재즈의 지류 중 하나다. 전에 <라라랜드> 편에서 간략하게 소개한 바 있듯, 재즈는 뉴올리언즈의 향락적이고 자유분방한 유흥 음악과 미국 남부 흑인들의 기독교적 인생관을 담은 흑인 영가가 결합돼 탄생한 음악이다.

즉 재즈는 향락에 대한 환상적 열망과 삶의 노고에 대한 현실적 소회(所懷)라는 두 가지 상충되는 요소를 하나로 융합해낸 음악으로서, 태생적으로 긴장과 갈등, 역동성을 그 특징으로 삼는다.

재즈는 19세기 말엽 탄생해 1910년대를 기점으로 미국 대중음악계를 흔들어놓기 시작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재즈 뮤지션들은 주로 흑인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1920년대 재즈가 미국 북부로 번져나가면서, 특히 시카고나 뉴욕 등지에 확산돼 인기를 끌면서부터 걸출한 백인 뮤지션들(대표적으로 스윙재즈 대표주자 베니 굿맨)도 재즈 작곡과 연주에 가담하기 시작한다.

스윙재즈는 바로 이 시기, 1920년대 말과 1930년대 초반 재즈의 흑백 전환기에 탄생했고, 이후 약 10여년간 스윙 시대(swing era, 1935-1946)라 불리는 전성기를 맞이한다.

스윙키즈
▲스윙 시대 당시 유행했던 스윙재즈 밴드. 브라스(금관악기) 중심의 빅밴드를 특징으로 삼았다.
이 시기 미국의 정치적-사회적 정황은 스윙재즈가 주요 대도시를 비롯해 미국 전역에서 크게 흥행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1930년대는 대공황을 겪던 시기였고, 1940년대 초반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겪던 시기였다. 즉 미국 전역에 경제적 고난과 빈곤,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전쟁과 죽음의 상흔이 넘쳐흐르던 시기라 할 수 있다.

당시 출판계 및 미디어 업계에서는 영웅들의 초현실적 힘에 의한 삶의 고난 해소를 그려낸 슈퍼히어로 코믹스가 큰 인기를 얻었다. 이는 삶의 불안 해소를 향한 열망이 사회 전반에 충만하게 약동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스윙재즈 역시 비슷한 동기로 미국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극단적으로 빠르고 흥겹고 모순적인 리듬과 춤을 통해 우울하고 두려운 현실을 초현실적으로 극복해 보려는 가련하고도 처절한 열망이 스윙재즈라는 음악적 형태로 대변되고 있었던 것이다.

◈삶의 고난과 춤: 탭댄스, 아프리카식 제의전통의 현대적 진화

재즈와 마찬가지로, 탭댄스의 주된 기원 역시 미국 남부 흑인 문화로부터 찾을 수 있다. 역사적 정황 증거에 따르면, 탭댄스의 최초 기원은 17-19세기 당시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송된 남부 흑인노예들의 춤으로부터 확인된다.

이들 노예들은 원래 고향이었던 서아프리카에서 보고 즐겼던 춤, 부족 제의 및 축제 당시 추던 춤의 가락과 율동을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간단한 타악기(주로 목재와 동물가죽으로 만든 북)에 맞춰 발구름을 하던 춤동작을 일반적으로 공유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탭댄스의 먼 조상격으로 지목되고 있다.

타악기 박자에 맞춰 발을 구르던 동작은 1920-1930년대 흑인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한 린디합의 한 특징이 된다. 아직 구두에 쇠징을 박은 탭댄스용 구두가 등장한 것은 아니나, 린디합의 기본 동작들 대부분은 훗날 탭댄스의 기초동작으로 계승된다.

<스윙키즈>의 댄스 장면 가운데 구두의 태핑 소리를 제외한 상당수의 동작들, 특히 다리와 팔의 동작은 바로 린디합에서 유래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스윙키즈
▲탭댄스의 직접적 기원이 된 스윙댄스 하부장르 린디합.
린디합 댄서들 가운데 일부는 스윙댄스의 한 세부장르에 속했던 심샘(Shim Sham)이라는 라인댄스(일렬로 늘어서거나 특정한 대열을 갖춰 추는 춤)를 특화시켰다. 일렬로 늘어선 대열, 동작을 정확하게 일원화한 군무(群舞), 여기에 발구르는 소리를 강조하기 위한 특수 구두가 합쳐져 본격적으로 탭댄스라는 장르가 등장했다.

1930년대 등장한 초창기 탭댄스는 그 기원이 스윙댄스인 린디합에 있었던 만큼 스윙재즈에 동작을 맞춘 춤으로 발전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스윙의 시대가 저물면서 재즈 외에 다른 대중음악 장르와 함께 발전하는 길을 걷게 된다.

탭댄스는 재즈의 주된 기원 가운데 하나인 흑인영가 만큼이나, 미국 남부 흑인들의 삶의 애환을 반영한다. 그들은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강제 이송되어 비참한 노예의 삶을 살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 태어난 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며 간단한 타악기 박자에 맞춰 아프리카식 춤사위를 펼쳤던 것으로 보인다.

백인들의 눈에는 정형화되지 않은, 원시적이고 미개한 것으로 비춰졌던 그들의 발구르기 동작이 훗날 미국 대중문화의 당당한 일원으로 서리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이런 역사적 기원 때문에 위대한 탭댄서들 대부분은 흑인들이다. 영화 <백야>에 등장하는, 소련으로 망명했다 다시 미국으로 탈출하는 탭댄서 그린우드(그레고리 하인즈 분) 역 또한 흑인 배우가 맡고 있다. 이는 탭댄스가 북아메리카 흑인들의 애달픈 노예화 역사를 출생의 배경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탭댄스란 아프리카의 부족제의 전통이 20세기 초 미국 대중문화의 한 주류였던 재즈와 만나 고도화된 기술을 과시하는 춤으로 진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탭댄스는 그 이면에 담긴 근본동기, 즉 정형화된 종교적 몸동작을 통한 황홀경(ecstasy) 경험과 초월을 향한 열망을 상당부분 훼손하지 않은 채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음악과 춤, 그리고 전쟁: <스윙키즈> 속의 초월

앞서 간략히 살펴본 바, 스윙재즈와 탭댄스의 역사적 배경을 유념한다면, 이제 뮤지컬 <로기수>, 그리고 영화 <스윙키즈>가 이 둘을 융합한 이유를 유추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남북한 전쟁이라는 비극, 이념으로 인해 누군가 죽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형제의 비극, 팀원으로 맺어져 겨우 마음을 터놓은 사이가 되었지만 결국 그 친밀감을 포기해야 하는 비극, 이런 비극적 상황이 빚어내는 긴장, 불안, 슬픔을 음악과 춤사위를 통해 초월하려는 의도가 작품에 확연하게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스윙키즈
▲<스윙키즈> 속 탭댄스 장면.
뮤지컬이든 영화든 결말은 분명한 새드엔딩이다. 영화는 그 비극적 결말이 남겨줄 여운을 중화시키면서도 길게 연장시키기 위해, 댄스팀의 결성과 그들이 음악, 춤으로 하나되는 과정, 그리고 그 결실로서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그리고 이렇게 강조되는 장면마다 등장하는 것이 복고풍의 음악, 그리고 탭댄스다.

영화의 안타고니스트(Antagonist, 적대자)는 중반까지는 로기수(도경수 분)의 형 로기진(김동건 분)이 담당하고 있는데, 후반부에서는 이 역할이 공산 전체주의 이념 그 자체로 이전된다.

로기수, 로기진 형제 모두가 결국 비인간성의 극을 달리던 공산주의 이념의 희생양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영화의 주제는 고된 일상의 초월을 향한 자유의 열망과 이를 억압하는 유물론적 반종교주의 간의 대결로 확인된다.

공산주의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종교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공산주의는 인간의 종교성, 즉 부조리하고 불안한 인간 현실로부터 자유와 초월을 열망하는, 그래서 초자연적 존재인 신에게 의존하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심성을 적대시한다.

이런 태도는 마르크스의 종교규정, 즉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선언에서 명백하게 확인된다. 마르크스주의의 눈으로 본 종교는 인민, 프롤레타리아 계층을 억압하는 자본주의 현실을 돌아보지 못하도록 하는 기만적 신념체계에 불과하다.

<스윙키즈>에 묘사되고 있는 로기수, 로기진 형제의 갈등과 비극은 이처럼 종교적 자유와 열망을 강압적으로 억압하려 하는 공산주의 사상 본연의 태도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이 영화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유의미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영화 속 로기수의 스윙재즈와 탭댄스에 대한 열망은 그를 둘러싼 포로생활이라는, 전쟁이라는 비극적 참상을 초월해 보려 하는 몸짓으로서 상당한 수준의 종교적 동기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로기진으로 대표되는, 그리고 끝내 두 형제에게 비극을 선사하는 공산주의 이념은 이런 초월의 열망을 아예 싹부터 잘라내려는 억압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스윙키즈
▲<스윙키즈>는 공산 전체주의 이념이 인간의 원초적 초월욕망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그 반종교적 성격을 드러내는 영화로 볼 수 있다.
<스윙키즈>가 묘사하는 공산 전체주의 이념의 폭력성과 독단성은 단지 영화 속에만 갇혀 있는 것이거나, 이미 지나간 시대의 유물이 아니다.

우리와 바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공산주의 북한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독교 박해국가다. 역시 이웃인 중국의 공산당은 국가 공인을 받지 않은 교회의 활동을 금지하며, 기독교 문화의 전파를 국가 차원에서 방지한다.

최근 중국이 성탄절과 관련된 모든 활동과 행사를 금지시킨 처사는 공산주의가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 그리고 그와 결부된 모든 종교적 행위를 얼마나 경계하고 증오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위협적인 두 공산주의 국가를 바로 옆에 두고 있는 입장에서, 그리고 이 두 국가의 명백한 기독교 박해 상황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스윙키즈>와 같은 영화는 현실 인식에 도움을 준다.

혹자는 이 영화의 안타고니스트를 남북한 이념갈등의 상황 그 자체로 지목하기도 한다. 크게 잘못된 견해는 아니지만, 그 이념갈등 상황을 전쟁이라는 비극,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만든 주체가 누구인지, 또한 인간의 원초적 초월열망을 억압하는 폭력의 주체가 누구인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스윙키즈> 속의 비극, 오늘날 우리 민족이 겪고 있는 현실의 비극, 그리고 북한과 중국의 기독교인들이 마주하고 있는 공포스러운 비극을 초래한 주범이 누구인지 따져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