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이승훈
▲남강 이승훈 선생.
2018년, 김영권 작가가 남강 이승훈 선생의 삶을 토대로 쓴 소설 <꽃불 영혼> 연재가 오늘로 마무리됐습니다. 작가님과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주

남강의 장례는 민족지도자들이 의논해 조선교육협회 회관에서 사회장으로 치르기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정주경찰서가 갑자기 총독부의 명령이라며 사회장을 금지하고 나섰다. 자칫 하면 그 장례식이 항일 집회로 비화될 것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정주에서만 장례식을 거행한다는 조건으로 허가를 받았다.

정주는 새벽부터 궂은 비가 내렸지만, 각지에서 모여든 조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일본 경찰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식장에서 조만식은 눈시울을 적시며 말했다.

“남강은 조선을 위해 울고 웃고 조선을 위해 죽었습니다. 남강은 그 죽은 뼈까지 민족에게 바쳤습니다! 그 영혼의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식이 끝난 뒤 남강의 영구는 만장과 조기에 둘러싸인 채 고읍역으로 운구되었다. 기나긴 인파가 그 뒤를 따랐다.

영구가 장지에 도착했을 때는 깜깜한 밤중이었다. 일본 경찰은 불도 밝히지 못하도록 했다. 남강의 마지막 모습을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군중 속에서 “대한독립만세!” 하고 외치는 소리가 터지기도 했다.

조선의 현실은 칠흑같은 어둠만큼이나 착잡하고 답답했다.

저들은 죽은 남강의 유해가 조선인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킬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남강은 죽어서까지도 일제의 감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남강의 유골은 나무 상자에 담겨 오산학교 서쪽 산기슭에 묻혔다. 묘비에 국학자 정인보가 지은 글이 새겨졌다.

초년에 등짐 지고 장사하여 자력으로 재물을 모았고
조국 산하를 회포에 사무쳐 떠도니
하늘이 그 뜻을 살펴 주셨네
종을 칠 새 북채가 있으나 북채로 아니하고 손으로 쳤네
여기에 재물을 모아
학생을 가르치며 몸소 규범을 보이셨네
20년간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외롭게 싸웠지만
뚜렷한 보답이 없었고
명예는 오히려 공이 부끄러워하는 바였네.
백발이 삼삼하니 사람들이 이에 의지하였네
사람들이여 무덤을 말하지 말라
피로를 풀고 여기 편안히 쉬노라….

김영권 남강 이승훈
▲김영권 작가(점묘화).
늦게 핀 진달래가 계절의 마지막 길목에 서서 밤바람을 받아 흔들리며 여윈 꽃잎을 파르르 떨었다. 한창 때의 아름답던 분홍빛을 잃고 어둠에 물든 채 떨어져 내리기도 했다. 그 꽃잎은 문득 잃어버린 조국 산하의 슬픈 눈물인 듯이 보였다. <끝>

김영권 작가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작가와 비평>지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成功狂人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어린이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 <지푸라기 인간>과 청소년 소설 <보리울의 달>, <퀴리부인: 사랑스러운 천재>가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보통 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

*이 작품은 한국고등신학연구원(KIATS)의 새로운 자료 발굴과 연구 성과에 도움 받았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