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
▲유명밴드 퀸(Queen)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전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지난 주에 이어 박욱주 박사님(연세대 겸임교수)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공항에서 수하물 노동자로 일하며 음악의 꿈을 키우던 이민자 출신의 ‘파록버사라’가 보컬을 구하던 로컬 밴드에 들어가면서 ‘프레디 머큐리’라는 이름으로 밴드 ‘퀸’을 이끌게 되는 이야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와 함께합니다.

아웃사이더 남성이 전설의 록밴드가 되는 과정을 담은 이 영화는 11월 30일 기준 540만여명의 관객이 관람했습니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 라미 말렉(프레디 머큐리), 루시 보인턴(메리 오스틴), 귈림 리(브라이언 메이), 벤 하디(로저 테일러), 조셉 마젤로(존 디콘) 등이 출연했습니다. -편집자 주

◈보헤미아니즘(Bohemianism): 문화예술사(史) 속 보헤미아와 아방가르드(Avant-garde)

프레디 머큐리의 전기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이미 그 제목만으로 주인공의 삶을 어떻게 그려낼 것인지 암시한다. ‘보헤미안’이라는 수식어는 그의 파격적인 삶의 방식을 대변하기에 적격인 용어다.

통상 이 용어는 전통과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과 그로부터 유래되는 미적 감각을 연상시킨다. 과거 유럽 중부에 위치한 소규모 공국 지명이었던 보헤미아가 자유로운 예술혼이라는 미학적 의미에 맞닿게 된 데는 어떤 역사적 기원이 존재하고 있을까?

가장 먼 역사적 기원은 이 용어가 15세기 무렵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집시들(Gipsies)’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면서부터 확인된다.

집시들은 인도 북서부 지역에 기원을 둔 소수민족으로서, 유랑하는 삶의 방식을 영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중세기 내내 인도 북서부와 페르시아, 그 외 중동 지역에 분포해 있던 집시들은 13-14세기경 투르크 세력의 유럽 침략을 기점으로 동유럽 지역에 다수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에 들어온 집시들 중 다수는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떠돌이 생활을 계속하며 일용직이나 점술 등으로 연명하는 경우가 많아 성실한 노동의 가치를 중시하던 유럽의 정착 농경민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아왔다. 이들 집시들이 처음 유럽에 들어올 때 가장 많이 경유한 곳이 보헤미아, 즉 오늘날의 체코였다.

서유럽 사람들, 특히 프랑스인들은 이들 이방 유랑민족이 대부분 보헤미아를 거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이들을 보헤미안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용어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집시들의 생각없어 보이는 허술한 삶의 방식을 지칭하는 데까지 의미가 확장된다. 여기에는 당연하게도 멸시와 조롱의 시선이 다분하게 얽혀 있었다.

보헤미안 랩소디
▲보헤미아 지역과 집시 여성들.
이런 상황은 1850년대를 지나면서 급변한다. 영국의 저명한 예술사 연구자 리사 티크너(Lisa Tickner)는 ‘보헤미아니즘과 문화예술 분야(Bohemianism and Cultural Field)’라는 제목의 연구논문에서 이 전환기적 상황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티크너의 조사에 의하면, 184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보헤미안이라 하면 주로 범죄를 일삼는 하층민, 혹은 대도시에서 불안불안한 삶을 살던 최하층 빈민들을 의미했다.

집시들이 소소한 범죄를 저지르며 불안정한 하층민의 삶을 살아가던 것을 보고, 그와 비슷한 삶을 영위하는 이들 모두를 보헤미안이라 지칭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1851년에 프랑스 문필가 앙리 뮈르제(Henri Murger)는 ‘보헤미안의 삶의 장면들(Scènes de la vie de Bohème)’이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프랑스 대도시 하층민과 빈곤한 예술가 및 철학자들, 그리고 그들이 사랑하는 여인들의 불안정하면서도 자유분방한 삶의 방식을 세밀하게 묘사한 이 작품은 당시 유럽 전역의 최신 유행을 주도하던 프랑스 문화예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때가 보헤미안이라는 용어에 자유분방한 예술가의 이미지가 처음으로 덧입혀지던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이 용어의 의미 진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850년대까지만 해도 가난하지만 혁명적이고 낭만적인 예술가들의 삶의 방식을 의미하던 보헤미안이란 용어는, 1880-1890년대로 넘어가면서 당시 막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던 초창기 아방가르드 예술가들(반 고흐, 폴 고갱, 폴 세잔 등)의 혁신적 예술혼과 삶의 정신을 의미하는 데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풍조가 당시 프랑스 문화예술을 선망하던 유럽 각 지역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가 뮈르제의 소설 ‘보헤미안의 삶의 장면들’을 기초로 ‘라 보엠(La Bohème, 1896)’을 작곡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부유한 유럽 부르주아 계층 역시 이런 문화 조류에 편승했다. 원래 보헤미아니즘과 아방가르드 예술은 부르주아들, 산업혁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신흥 자본가 계층의 자본주의 정신과는 상충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부유함을 최신 유행하던 문화예술 조류에 편승하는 것으로 과시하던 대자본가들, 그리고 이들의 삶을 모방하려는 욕구를 가진 신흥 중산층의 요구에 힘입어, 보헤미아니즘은 부유함과 세련됨을 표현하는, 그러면서도 전위적이고 파격적이며 때로는 천박하기까지 한, 모순적 양태들이 서로 뒤섞인 문화예술의 기풍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보헤미안 랩소디
▲19세기말 파리 몽마르트 풍경. 보헤미아니즘의 발원지.
◈랩소디(Rhapsody): 신과 운명에 억눌린 영혼의 넋두리

프레디 머큐리가 작사 작곡한 ‘보헤미안 랩소디’는 19세기 중후반의 보헤미아니즘을 20세기 중후반 영국과 미국이라는 배경 속에 안착시켰다.

가사 내용은 살인죄를 저지른 뒤 사형장에 이끌려 가는 한 젊은 청년이 자신 스스로에게 내뱉는 허무한 독백, 자신의 어머니에게 전하는 애달픈 넋두리, 죽음의 면전에서 예수(가사 중 Galileo는 갈릴리 사람 예수를 지목)께 호소하는 절규, 그리고 그를 죽음으로 이끌어가는 마귀와 나누는 처절한 대화로 채워져 있다. 과연 랩소디(狂詩曲, 광시곡)라는 명칭에 부족하지 않은 가사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원래 랩소디는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기악곡을 의미하는데, 환상과 꿈이라는 측면에서 마귀와 나누는 대화는 분위기상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뮈르제의 소설 ‘보헤미안의 삶의 장면들’에서, 그리고 이 소설에 바탕을 둔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에는 병으로 죽는 여인들은 있어도 살인자가 등장하지는 않으며 종교적 색채 역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반면 20세기로 그 무대를 옮겨 온 ‘보헤미안 랩소디’의 보헤미아니즘 안에는 살인, 사형, 예수, 알라(가사 중 Bismillah는 ‘알라의 이름으로’라는 의미), 바알세붑, 마귀가 등장한다. 이는 프레디 머큐리가 몸소 겪어 온 영국과 미국의 시대적 정황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이 곡이 작사, 작곡되던 1975년 당시 영국과 미국 사회는 심각한 경제적 침체기를 겪고 있었다. 이런 사정은 영국이 특히 더 심했는데, 이른바 ‘영국병(British disease)’으로 불리던 고비용 저효율의 산업 구조가 그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그런 가운데 노조가 휘두르고 있던 막강한 권력이 오히려 국민들을 불안과 고통에 빠지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이겨낸 위대한 영국의 자취가 사라져가던 시절, 마지막 남은 영국 식민지들이 독립해가는 가운데 청년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고민하던 시절, 음울함과 두려움이 무겁게 내리깔린 젊은 세대의 마음을 대변하는 데 보헤미아니즘만큼 적절한 것이 있었을까.

자본주의적 부유함에 대한 미련, 그리고 침체된 사회 자체가 하나의 억압으로 작용하는 갑갑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보헤미안 랩소디는 당시 청춘들의 마음을 단숨에 휘어잡았다. 그룹 퀸이 본격적으로 경제적 빈곤의 처지를 벗어난 것도 바로 이 곡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부터였다.

가사 속 살인행각은 당시 사회를 지배하던 부조리한 정치∙경제적 세태에 대한 분쇄 욕망을 대변하고, 살인 후 받게 되는 사형 처벌과 그 처벌을 통해 청년의 영혼을 강탈해 가려는 마귀는 억압적 사회 질서에 저항하는 자유로운 영혼이 겪어야 할 암흑과 같은 고난을 상징한다.

가사 속 청년은 이 고난을 피하기 위해 예수를 찾지만 비정한 침묵만 돌아올 뿐이고, 알라는 그를 죽음으로 이끌기를 종용하는 데다 바알세붑은 이 청년이 이렇게 타락하기까지 그의 인생을 망가뜨린 마귀를 보내놓았다.

보헤미안 랩소디
▲보헤미안 랩소디” 라이브 정경. 광시곡 분위기를 내기 위한 음울하고 몽환적인 의상과 무대 분위기가 특징.
결국 이 가사는 자유와 일탈을 꿈꾸는 젊은 영혼들에게 국가, 사회, 신, 운명이 모두 가혹하고 잔혹한 대적자 및 압제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폭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로써 프레디 머큐리는 종교와 그다지 큰 관련이 없던 보헤미아니즘을 광시곡이라는 장르를 힘입어 반종교적 사상으로 변모시켜 놓은 것으로 보인다.

반종교(anti-religion)란 기존의 모든 형태의 종교들을 비롯해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원초적인 종교적 심성마저 무가치하고 해로운 것으로 여기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프레디 머큐리의 곡 ‘보헤미안 랩소디’는 근대 유물론이나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니체의 허무주의 가운데서 볼 수 있는 반종교적 태도에 보헤미아니즘이란 외투를 덧입혀 문화예술계 안으로 들여온 곡이라 볼 수 있다.

곡에 담긴 반종교적 정서는 이후 프레디 머큐리의 삶 전체를 통해 재확인된다. 독실한 조로아스터교 신도였던 그의 부모 및 가족들과 달리 프레디 머큐리 자신은 철저하게 통속적인 삶을 살았다.

특히 그의 양성애적 성적 지향은 조로아스터교, 기독교, 이슬람 모두가 엄격히 금지하던 것인데, 머큐리는 그런 종교적 금기에 아랑곳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이번에 개봉된 그의 전기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제목은 바로 이런 반종교적 삶의 행태 속에 엿보이는 파격과 일탈을 드높이기 위해 선택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음악, 그리고 이 음악을 창조해낸 뮤지션들의 삶은 참으로 인간적이고 매혹적이다. 그리고 그들이 선보이는 무대 퍼포먼스는 화려하고 압도적이다.

그렇다 한들 이들이 선보이는 예술혼의 원초적 동기가 반종교적 일탈에 뿌리내리고 있고, 영화는 이를 참된 자유를 향한 투쟁으로 떠받들고 칭송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기독교 신앙인 입장에서는 이 작품이 선보이는 머큐리의 삶의 매력, 그리고 그의 음악의 화려함에 쉬이 공감하기 곤란한 측면이 존재한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가사 속 청년, 즉 프레디 머큐리의 예술가적 정신은 예수를 무정한 신, 간구하는 절규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무능한 신으로 표상하고 있다.

신앙인으로 살아오며 크고 작게 예수 이름으로 간구한 기도의 응답을 체험해온 입장에서,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절망적인 넋두리 속에 박제해 그 실재성을 회의하는 처사에 동조하기란 당연히 불가능하다.

이런 분별력을 갖고 이 영화를 감상한다면 우리 시대가 교회와 신앙인, 그리고 종교 자체에 대해 얼마나 많은 실망감과 반감을 갖고 있는지 재차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시대의 징조를 읽는 대중문화 해석의 한 유용한 방편이라 할 수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
▲“보헤미안 랩소디”에 응축되어 있는 반종교적 정서의 분별은 시대의 징조를 읽는 대중문화 해석의 한 유용한 방편이 될 것이다.

박욱주 박사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