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이승훈 “동포 위해 한 일 있다면, 하나님이 시키신 것”

입력 : 2018.12.07 16:33

[소설 꽃불 영혼(41)] 동상 제막식

남강 이승훈
▲남강 이승훈 선생.
남강이 무교회주의를 받아들이게 된 이면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나라마저 빼앗겨 버린 민족이 내면의 정신과 영혼을 되찾을 생각은 않고 웬 잡다한 허례의식에 그다지도 꽉 얽매여 있느냐는 불만이었다.

남강의 판단에는 한국적인 순박한 향기와 참신한 진리를 그들이 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후 그는 제도권 교회에 나가지 않고 진리를 공부하며 신앙생활을 했다. 그는 함석헌과 함께 오산성경연구회를 만들어 모임을 가졌다.

처음엔 대여섯 명이 모였으나 차츰 늘어나 30여 명을 넘어섰다. 이 때문에 결국 1930년 2월 선천에서 열린 조선 예수교 장로회 평북노회에서 ‘시무치 않는 죄’로 면직되었다.

남강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교회는 조선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는 것보다 도리어 해 되는 일을 함이 많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 어떤 것보다도 민족을 최우선에 둔 사람의 길이었다.

남강의 한평생은 오로지 나라를 빼앗긴 민족을 위한 삶이었고 항일 애국의 길이었다. 오산학교를 중심으로 민족교육 운동에 앞장서 온 남강의 존재는 일제 총독부엔 눈엣가시와도 같았다.

어느 해 봄,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오산 교정에 남강 선생의 동상을 건립하자는 말이 나왔다. 살아 있는 사람의 동상을 세운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남강은 고심 끝에 한숨을 쉬며 “자네들이 알아서 하게나” 하고 짧게 말했다. 어쩌면 일본의 탄압과 오산고보의 혼란을 지켜보면서 심기일전의 기회로 삼으려 했는지도 몰랐다.

그 자신은 물론 모든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개교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염원이 담겨 있을 수도 있었다. 아마 죽은 뒤라도 계속 오산의 교정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일제 총독부의 허가를 받는 일이 문제였다. 민족 지도자 남강의 동상 건립에 총독부는 난색을 보였다. 여러 경로로 애쓴 끝에, 교육자의 동상을 자기가 만든 학교 교정에 세운다는 명목으로 어렵게 승낙을 받아냈다.
“동상이라…. 허허…. 하지만 폼을 잡은 채 엄숙하게 버티고 서 있고 싶지는 않네. 지금은 할 일이 너무 많거든. 허허….”

남강의 의견대로 동상은 그냥 서 있는 모습이 아니라 오른 주먹을 불끈 쥐고 한 발을 내디뎌 앞으로 걷는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자기의 동상까지도 나라를 구하려는 일념으로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제막식 날, 일본 경찰과 헌병대는 혹시나 반일적인 집회가 되지 않을까 싶었는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학생들이 남강의 사진이 실린 그림엽서를 만들어 팔고 있었는데, 그 중엔 3·1 만세운동 때 불탄 오산학교와 조만식 교장의 모습도 담겨 있었다.

경찰은 즉각 그림엽서를 압수했다. 또 <동아일보> 사장이 축사를 하는 도중 내용을 트집잡아 경찰서장이 나서서 중단시키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남강이 연단에 올라 소감을 밝혔다.

“나같이 별로 한 일도 없는 사람을 위해 이렇게 동상을 세워 주니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 글도 변변히 못 읽고 여러 가지 고생을 했는데, 오늘 이 같은 영광을 받게 되니 너무 과분한 일입니다.

내가 민족이나 사회를 위해 조금이나마 한 일이 있다면 그건 백성 된 도리에서 당연한 것이며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우리 동포를 위해 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내게 시킨 것입니다.”

남강의 목소리는 감격에 젖어 있었고, 연설을 듣는 이들의 가슴은 감동으로 차올랐다. 하지만 그것이 남강의 마지막 연설이 되리라는 것을 그 순간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오산 학생들의 노래가 메아리쳤다.

세상을 맑힐 샘물 한 줄기 다섯 뫼 흘러나네
이 물을 마시려 모인 우리, 사랑의 참 바로 얽혔도다
아침 저녁에 생각함은 언제나 몸 세고 배움 이뤄
배달의 모랫벌 지어 끝없는 역사를 빛내 볼까

김영권 남강 이승훈
▲김영권 작가(점묘화).
남들은 봄새배 단꿈 꿀 제, 새론 종소리에 잠을 깨어
세상이 모두 흐렸거늘 나 홀로 맑으려 애쓰도다
아아, 다섯 뫼 다섯 뫼야, 내 너를 잊을 날 없으리라
어딜 가나 너 위해 하고 너 시킨 일 위해 몸 바치마

김영권 작가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작가와 비평>지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成功狂人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어린이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 <지푸라기 인간>과 청소년 소설 <보리울의 달>, <퀴리부인: 사랑스러운 천재>가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보통 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

*이 작품은 한국고등신학연구원(KIATS)의 새로운 자료 발굴과 연구 성과에 도움 받았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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