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오요한
욥기 18장 강해

요절: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의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참으로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이러하니라(5절)

수아 사람 빌닷의 두 번째 변론입니다. 그는 첫 번째 변론에서 공의의 하나님이 욥을 징벌했다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더욱 강하게 악인이 받을 심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는 자기 확신이 지나쳐서, 자신의 생각만 옳다는 교만에 빠지고 있습니다. 마치 중학교 영어에서 만점을 맞은 학생이 자신이 영어를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교만에 빠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신자가 경계해야할 것이 지나친 자기 확신에서 오는 교만입니다.

1. 말을 그치기를 바라는 빌닷

1-3절에 보면 빌닷이 두 번째로 말합니다. 빌닷은 첫번째에서 아주 은혜로운 말을 한 자입니다. 네 처음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죄를 회개하면 창대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빌닷은 이제 욥에게 너는 언제 입을 다물 것이냐고 합니다. 빌닷은 직설적이며 과격하게 말합니다. 그는 엘리바스의 두번째 변론에 대해 반박했던 욥을 심하게 꾸짖고 있습니다. 빌닷은 불경건한 자는 조용히 하라고 말합니다. 욥이 제발 좀 이제라도 눈치를 채고 말을 그치면, 자신이 말을 할 수 있겠다고 합니다.

빌닷은 욥에게 어찌하여 우리를 짐승처럼 여기며, 어찌하여 우리를 어리석게 보느냐고 묻습니다. 빌닷의 눈에 비친 욥은 끝까지 회개치 않고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는 자입니다. 도리어 선의의 조언을 하는 친구들을 짐승처럼 경멸하는 자일뿐이었습니다.

빌닷은 욥의 현실적 필요를 세심하게 배려하기보다, 자신의 명성이 실추될까 더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빌닷은 욥과의 논쟁이 이제 감정싸움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우리도 논쟁을 하다보면, 논점을 일탈하여 서로 간에 감정 싸움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2. 울분이 있는 자는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울분을 터뜨리며 자기 자신을 찢는 사람아 너 때문에 땅이 버림을 받겠느냐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겨지겠느냐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의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그의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질 것이요(4-6절)”

빌닷은 욥에게 화가 치밀어, 제 몸을 갈기갈기 찢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욥이 울분을 터뜨린다고 이 땅이 황무지가 되며, 바위가 제자리에서 밀려나느냐고 묻습니다. 땅을 견고히 세우시고 바위를 땅에 고정시키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연 법칙입니다.

빌닷은 자연 법칙이 함부로 바꿀 수 없듯, 죄의 결과로 징계를 받는 것 또한 하나님께서 정하신 도덕적 법칙이므로 욥이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빌닷은 전 우주가 욥에게 맞추기 위해 재구성돼야 하겠느냐고 빈정거립니다. 욥이 아무리 분노해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빌닷은 악인의 최후를 말합니다. 그는 고난을 받는 자는 악인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습니다. 악인은 하나님이 없으므로 빛이 꺼집니다. 그는 어둠 속을 걷는 자와 같습니다. 그는 악인인 욥이 죽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빌닷은 악인이 풍요를 누리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며 이내 멸망당하고 만다고 말합니다.

그는 욥이 악인이므로 현재 심하게 고난을 받아 그 자신과 집이 파산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빌닷는 하나님을 기계적인 하나님으로 이해합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인 하나님으로 보지 못합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은 잠시 욥에게 고난을 주셨지만 그 고난을 거둘 것입니다.

3. 악인은 스스로 망한다

7-11절에 보면 악인의 힘찬 발걸음이 피곤하여 뒤뚱거립니다. 악인은 제 꾀에 제가 걸려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빌닷은 악인의 멸망, 연약함, 쇠약해짐 등을 사람이 걷는 걸음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빌닷은 공의의 하나님께서 사악한 꾀를 품는 자가 도리어 그 악한 일의 도모로 말미암아 파멸에 직면하게끔 만드신다고 말합니다. 악인은 제 발로 그물에 걸리고, 스스로 함정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그의 발뒤꿈치는 덫에 걸리고, 올가미가 그를 단단히 죌 것입니다.

빌닷은 악인인 욥이 갑자기 멸망받았음을 말합니다. 땅에 묻힌 밧줄이 악인을 기다리고 길목에 숨겨진 덫이 악인을 노립니다. 빌닷은 악인이 가는 길 도처에는 멸망케 하는 요소가 도사리고 있어 멸망을 도무지 피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죽음의 공포가 갑자기 악인을 엄습하고 그를 시시각각으로 괴롭히며, 잠시도 그를 놓아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악인이 아닙니다. 욥은 망하지 않고 두 배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4. 악인의 유황불 심판

12-15절에 보면 악인이 그처럼 부자였어도 이제는 굶주려서 기운이 빠지며, 그 주변에 재앙이 늘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의 재난이 그를 삼킬 만큼 굶주림을 보인다고 말합니다. 죽음은 산 것들을 먹어치우는 데 혈안이 된 게걸스러운 자로 비유됩니다. 악인의 파멸이 필연적임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악인의 살갗은 성한 곳 없이 썩어 들어가고, 마침내 죽을 병이 그의 팔다리를 파먹을 것입니다. 악인의 힘은 기근으로 다 빠집니다. 질병이 그 피부를 삼킵니다. 사망의 대왕이 그 지체를 먹을 것입니다. 그가 의지하는 것은 다 사라집니다. 그의 피부가 병에 의해 먹혀집니다.

결국 빌닷은 욥이 악인이므로 욥의 온몸을 뒤덮은 독한 악창이 생겼다고 합니다. 빌닷은 악인은 믿고 살던 집에서 쫓겨나, 죽음의 세계를 통치하는 왕에게로 끌려갈 것이라고 합니다. 악인은 자기 나름대로 갖가지 안전책을 구해 보지만, 결국 죽음 앞에서는 속수무책입니다. 그의 것이라고는 무엇 하나 집에 남아 있지 않으며, 그가 살던 곳에는 유황이 뿌려질 것입니다 그에게 속하지 않은 불이 그의 장막에 붙을 것입니다.

악인의 멸망받은 장막 안에 그에게 속하지 않는 것들, 즉 들짐승이나 야생 식물 등만이 거하게 될 것입니다. 멸망받은 악인의 처소가 다시는 사람이 살지 못하도록 유황으로 황폐화 된다고 말합니다. 그의 집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마지막 유황불 심판을 받습니다.

현재 욥은 질병으로 피부가 삼켜져있습니다. 그런데 욥이 앞으로 사망이 오고 유황불 심판을 받는다고 심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빌닷은 현재 고통하는 자에게 지옥불이라는 더 큰 심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는 욥의 아픈 상처에 재를 뿌리고 있습니다.

5. 악인의 후손이 끊어짐

16-19절에 보면 빌닷은 악인은 밑에서는 그의 뿌리가 마르고, 위에서는 그의 가지가 잘릴 것이라고 합니다. 악을 행한 자의 멸망에 대해 식물의 비유를 들어 욥의 전가족의 멸망을 암시합니다. 가족의 생존 근원이 되는 뿌리로서, 욥 자신뿐 아니라 그 뿌리에서 나온 가지인 그 자손들까지 온전히 멸망당하고 만다고 합니다.

이 땅에서는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고, 어느 거리에서도 그의 이름을 부르는 이가 없을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사라집니다. 여리고나 소돔과 고모라처럼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고대 근동에서 인생 최대의 비극은 후손이 없는 것과 그 이름이 후손들에게 기억되지 못하고 잊혀져 버리는 것, 이 두 가지였습니다.

빌닷은 사람들이 악인을 밝은데서 어두운 곳으로 몰아넣어, 사람 사는 세계에서 쫓아낼 것이라고 합니다. 그의 백성 가운데는, 그의 뒤를 잇는 자손이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악인이 이 세상 밝은 곳에서 죽임을 당하여 음부의 어두운 곳으로 쫓겨가게 됩니다.

고대 근동의 상황이라면, 땅에서 쫓겨나는 저주는 치명적인 심판입니다. 그의 집안에는 남아 있는 이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빛에서 어둠으로 쫓겨갑니다. 그는 후손도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의 자녀들을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6. 불의한 자는 망함

20, 21절에 보면 동쪽 사람들이 악인의 종말을 듣고 놀라듯, 서쪽 사람들도 그의 말로를 듣고 겁에 질릴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의 날은 악인이 심판받는 멸망의 날을 뜻합니다. 서편의 사람들과 동편의 사람들 곧 당대의 모든 사람들이 놀랍니다. 악한 자의 집안은 반드시 이런 일을 당하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사는 곳이 이렇게 된다고 합니다.

빌닷은 욥이 바로 멸망에 처할 수밖에 없는 불의한 자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빌닷은 욥이 악인이므로 망했다고 합니다. 욥이 불의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망했다고 합니다. 망할 뿐 아니라 나중에는 지옥에 들어가고 그 이름이 영원히 끊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빌닷의 말을 들어보면 잠언이나 시편의 말씀을 읽는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는 악인은 망한다는 일반론을 말합니다. 그의 메시지는 죄를 깨닫지 못하고 설치는 악인에게 주면 회개의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악인들이 설치는 것으로 고통받는 자에게 주면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욥에게는 힘이 되지 않습니다. 더욱 고통스럽게 할 뿐입니다. 빌닷이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요한
▲오요한 목사.
7. 결론: 강한 자기 확신에서 오는 교만의 문제

빌닷은 사람의 다양한 경우를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악인이 망한다는 것은 우리 신앙의 근본입니다. 그러나 의인도 이 땅에서는 고난을 받고 하늘나라에서 복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랬고, 아벨도 그랬고, 순교자들이 다 그랬습니다.

우리는 항상 다양한 경우를 겸손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의 교리나 철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잘못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 믿는 자들의 가장 큰 고질병은 자기 확신이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내가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든 아는 줄 생각하면,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항상 자신의 생각이 옳더라도, 어떠한 경우 틀릴 수도 있음을 알고 겸손해야 합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진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과학자는 자기 생각이 부족하다는 것을 압니다. 자신의 생각이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는 겸손합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깨뜨리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자신의 확신이 너무 강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확신을 갖는 것은 좋지만 그 확신은 겸손을 동반해야합니다. 나의 메시지나 나의 생각이 항상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독선적이고 독불장군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항상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인정할 줄 아는 겸손한 자세를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요한 목사(천안 UBF, <오요한 목자의 로마서 강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