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칼럼] 자기 것에 애착하시는 하나님

입력 : 2018.11.30 17:31

자기 소유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

이경섭
▲이경섭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하나님은 자기 소유에 대한 애착(愛着)이 강하십니다. 하나님은 절대 자기 소유를 포기하거나 누구에게 뺏기지 않습니다. 이러한 자기 소유에 대한 그의 애착이 택자 구원의 보장이며, 그들이 구원에서 탈락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택자(擇者)에 대한 그의 소유 애착이 그들에 대한 타의 침범이나 해코지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신다’는 말은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자기 것을 지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8)“는 말씀에서 ‘저를 지키시매(God keeps him)’라는 말은 ‘저를 보호한다’는 뜻도 있지만, ‘자기 것을 지킨다’는 뜻도 있습니다.

구원론에서 택한 백성은 끝끝내 구원받고 만다는 ‘궁극적 구원(Perseverance of the Saints)’은 하나님의 이런 소유 애착에 근거하며, 그의 전능하심은 이 점에서 가장 강력하게 발휘됩니다. 이는 힘이 없으면 결단코 자기 소유를 지켜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 18:14)”고 하신 것은 전능하신 천부(天父)께서는 자신의 소유 중 하나도 잃지 않으며, 만일 잃어지는 자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소유가 아닌 멸망의 자식인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요 17:12).

성경이 “너는 두려워 말라”와 “너는 내 것이다(사 43:1-4)”를 서로 연결지은 것은 ‘하나님의 소유됨에 대한 확신’이 ‘구원의 회의’를 떨쳐낸다 는 뜻입니다.

◈자기 것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

첫째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자신의 소유를 미리 택정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롬 9:11, 13)”고 했습니다. 그는 사랑할 대상과 미워할 대상을 처음부터 구분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서 갑자기 탐낼 만한 어떤 매력을 발견해 충동적으로 우릴 소유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는 순전히 무조건적이고 의지적인 하나님의 작정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리고 택정(擇定)의 기원은 창세전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엡 1:4)”, “하나님이 처음부터(영원 전부터, απαρχην)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살후 2:13)”.

둘째, 하나님의 소유택정 경륜(經綸)은 어떤 것에 의해서도 방해받을 수 없습니다. 택자의 죄가 하나님의 소유 경륜을 방해하는듯 했으나,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을 택자에게 입혀 자신의 소유 경륜을 기어코 성취하셨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한 후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불쌍하여, 그 중 일부에게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히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타락하기 전, 영원 전 부터 하나님은 일부를 자기 소유로 구별하셨고, 그들의 타락 후에는 그의 소유권을 확보하려고 그리스도를 보내 그들을 구속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인 그대로를 소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택자는 구속의 복음으로 부르심을 받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곧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속을 받아 하나님의 소유가 됩니다.

셋째, 하나님은 택자를 당신의 소유로 부르실 때(살후 2:14) 한 사람 한사람 씩 개별적으로 하시지 두루뭉술하게 무더기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창 22:1, 11), 야곱(창 46:2; 48:12), 사무엘(삼상 3:10), 다윗(행 13:22), 베드로(행 10:13; 11:7), 바울(행 22:7; 24:14), 삭개오(눅 19:5) 모두를 개별적으로 지명하여 불러주셨습니다.

양과 목자의 비유에서, 목자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듯이(요 10:3)”, 하나님도 택자를 개별적으로 불러 인도하십니다.

물론 이는 앞에 거명한 사람들처럼, 그가 모든 택자 개개인의 이름을 호명하며 당신의 소유에로 부르신다는 뜻이 아니라, 택자 한 사람 한 사람과 개인적으로 관계하신다는 뜻입니다.

전도자가 불특정 다수에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당신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복음을 들려주면, 성령께서 택자 개개인에게 믿음을 일으키고 구속을 적용시켜 하나님의 소유로 귀속시킵니다.

이런 하나님 소유에로의 개별적인 부르심이 택자에게는 자신이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을 입고 있다는 확신으로 나타납니다. 다음의 ‘아바 아버지’라는 CCM 가사는 하나님이 그의 소유된 택자들과 얼마나 개인적인 친밀함 속에 있는가를 잘 표현했습니다.

‘나를 안으시고 바라보시는 아바 아버지. 나를 도우시고 힘주시는 아버지 주는 내 마음을 고치시고 볼 수 없는 상처 만지시네. 나를 아시고 나를 이해하시네 내 영혼 새롭게 세우시네.’

◈부부애적 소유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은 인간의 주인’이라는 말들을 주제로 올리면, 비판자들은 기독교회는 교인들로부터 맹종과 충성을 이끌어내려고 백성을 군주의 소유물로 여기는 봉건시대의 군주 개념을 그것들에 접목시켰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오늘 목회자들 역시 ‘하나님 주권’ 사상을 악용하여 신도들의 헌신을 이끌어낸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그런 왜곡된 하나님 주권사상에 세뇌당해 그리스도께 충성을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가진 ‘하나님 주권’ 개념은 ‘통치’개념 보다는 ‘사랑’ 개념에 가깝습니다.

물론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들에 대한 소유권과 통치권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하나님과 택자’의 관계는 ‘주인과 종’의 관계 같은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그리스도 소유됨’은 그의 피로 구속받아 그와 한 몸을 이룬 곧, ‘머리와 지체(몸)관계’의 개념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가 너무 커 성도가 스스로 그리스도께 종이 되는, 구약의 “자원하는 종(출 21:5-6)”개념과 유사합니다.

사도 바울도 성도가 그리스도께 종되는 이유를 그가 자신들을 위해 죽어주심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롬 14:7-9)”.

그에게 있어 종은 “사랑으로 종노릇 함(갈 5:13)”을 의미했습니다. ‘성도에 대한 그리스도의 소유권’ 역시 ‘구속(救贖)’과의 연장선상에서 논의돼야 합니다(사 43:1). 그리스도가 피흘려 우리를 구속함으로서 우리를 그의 몸의 일부분으로 여기는 부부애적(夫婦愛的) 소유 개념입니다. 곧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창 2:23)”이라고 하신 말씀같이, 자신의 몸처럼 소중히 여기는 소유 개념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로 예표된 ‘아내에 대한 남편의 주권’ 역시 아내를 제 몸처럼 여기는 ‘사랑’을 의미했습니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엡 5:28-30)”.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이 자신의 존재를 있게 한 갈비뼈(창 2:22-24) 혹은 머리에 대한 복종이듯이(엡 5:22-23), 성도가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소유당하는 것 역시 그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 준 사랑에 감읍하여 즐겨 순종하고 귀속당하는 것입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엡 5:22-24)”.

결론적으로, 기독교의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은 인간의 주인’이라는 개념은 유대교의 ‘창조론적’인 통치 개념이나 봉건사회의 ‘군주’ 개념과는 다른 ‘구속론적(救贖論的)’인 것으로서, 서로가 서로에게 귀속(歸屬)당하고 귀속을 받아들이는 부부의 연합 같은 것입니다.

실제로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고(갈 2:20), 그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그에게 즐겨 자신을 드립니다(롬 14:7-8, 빌 2:17). 다음의 사랑의 세레나데(serenade)는 그리스도와 성도의 ‘소유와 귀속’ 개념을 잘 표현 한 내용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아 2:16).“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대표, byterian@hanmail.net)
저·역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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