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오요한
욥기 17장 강해

요절: 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9절)

엘리바스가 욥의 말꼬리를 잡아 교만하다고 공격한 두 번째 변론 후, 욥의 반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6장에서 욥은 하나님께 소통의 중재자로 그리스도를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17장에서는 하나님께 자신의 무죄에 대해 증거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절망 속에서도 계속 의로운 길을 걸어가고자 다짐합니다.

1. 호흡 장애를 겪는 욥

“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며 나의 날이 다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준비되었구나. 나를 조롱하는 자들이 나와 함께 있으므로 내 눈이 그들의 충동함을 항상 보는구나(1-2절).”

욥은 친구들로부터 위로를 얻은 것이 아니라 심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욥은 기운이 다 빠졌습니다. 기운은 영, 숨, 호흡이라는 뜻입니다. 욥은 심한 병약 증세로 인한 호흡 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그는 극도의 고난 속에서 심령이 지치고 핍절되었습니다.

결국 욥은 더 이상 삶을 영위하기조차 어려운 위기에 직면하였습니다. 욥은 죽음이 임박해 있음을 느낍니다. 그의 주위에는 그를 조롱하는 친구들만 있습니다. 그는 힘이 다 빠지고 무력해졌습니다. 욥의 주위 사람들, 특히 세 친구들의 비난과 책망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충동함을 계속하였습니다. 충동함은 쓰디씀, 괴로움 등의 뜻으로서 욥이 얼마나 괴롭고 씁쓸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께 무죄의 징표를 요구하는 욥

“청하건대 나에게 담보물을 주소서 나의 손을 잡아 줄 자가 누구리이까(3절)?”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무죄함에 담보물이 되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자신의 손을 잡아달라고 합니다. 담보물이란 일반적으로 경제적인 상호 거래를 위한 물질적인 계약 증표를 주는 것을 말합니다. 욥은 하나님께 그의 무죄성을 입증하고 보증할 수 있는 표를 달라고 기도합니다(RSV, Lay down a pledge for me with thyself).

‘손을 잡다’란 어떤 사람이 타인을 위하여 보증을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욥은 하나님께 자신의 무죄에 대해 보증을 서 주시고 구원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고통의 때에 욥은 하나님께 나갔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손을 잡아주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기를 원했습니다.

3.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는 욥

4-7절에 보면 주님은 친구들의 마음을 가리어 진실을 깨닫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스스로의 경험, 전통에 입각하여 욥을 정죄하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욥은 그들이 그러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가리워 깨닫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욥은 주님께 그들을 높이지 말아달라고 기도합니다. 욥은 독설로 욥을 정죄하고 비방하는 친구들을 하나님이 징벌해 주시도록 맡기고 있습니다.

속담에도 보상을 바라고 친구를 비난하는 자는 자식의 눈이 먼다는 말이 있습니다(표준새번역). 사람들은 욥이 친구들을 비난하여 욥의 자식이 그렇게 되었다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욥은 자식들이 망하여 백성의 속담거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식을 잃고, 질병으로 고통하는 욥의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속담거리가 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는 주위 사람들의 모욕과 경멸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아울러 자신의 결백함에 대한 안타까운 호소도 하고 있습니다.

그의 눈은 근심으로 어두워지고 그의 온 몸은 그림자처럼 어두워졌습니다. 그는 극심한 고통과 슬픔으로 인해 눈앞이 캄캄하게 되었습니다. 욥은 그의 온 뼈대가 약하고 야위어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없었습니다. 욥은 마치 십자가 상의 예수님의 모습과 같이 슬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같이 무죄하지만 침뱉음을 당하고 정죄를 당하고 있습니다.

4.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정직한 자는 이로 말미암아 놀라고 죄 없는 자는 경건하지 못한 자 때문에 분을 내나니 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8-9절).”

정직한 친구들은 욥을 보고 놀라고 분을 냅니다. 정직한 자는 욥과 같은 의인이 갑자기 그토록 엄청난 재난과 시련을 당할 때 놀랍니다. 놀라다는 원어는 ‘아찔하다, 마비되다, 소스라치게 놀라다’는 뜻으로, 의외적 사실로 인해 크게 놀라는 것입니다.

죄 없는 자는 경건하지 못한 자 때문에 분을 냅니다. 경건하지 못한 자를 일반적 의미에서의 악인들로 본다면, 죄 없는 자는 경건하지 못한 자에게 분을 내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욥의 친구들은 도리어 정직한 자인 욥에게 노를 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로운 욥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 힘을 얻습니다.

‘그러므로’를 NIV는 그럼에도 불구하고(Nevertheless)로, RSV는 그러나(Yet)로 각각 옮기고 있습니다. 앞의 내용이 의로운 자인 욥이 큰 시련과 고난에 봉착하였다는 사실을 묘사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의미로 번역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욥에게 닥친 상황은 욥에게 심한 회의와 좌절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탈선의 길로 가지 않고 굳은 의지로 끝까지 정도(正道)를 걸어갑니다. 특별히 욥은 손이 깨끗한 자로 힘을 점점 얻고 있습니다. 의로운 자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그의 올바름이 드러나고 그에 따라 더욱 더 강해집니다.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욥 또한 하나님이 의인에게 축복을 베푸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고 있었습니다. 욥은 도저히 소망을 지닐 수 없는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회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손이 깨끗한 자란 죄악과 손을 잡지 않는 의롭고 정결한 자를 가리킵니다. 욥은 자신이 정결함으로 힘을 점점 얻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죄인과 의인의 차이점입니다. 의인은 고난 속에서 점점 힘을 얻어가고 결국은 승리합니다.

욥은 사람들의 비방과 모욕을 견디며 자신의 의로운 길을 걸어갑니다. 그는 끝까지 믿음의 길을 갑니다. 그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통해 힘을 얻습니다. 이전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던 데서, 신뢰하는 모습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5. 친구들의 말에 절망하는 욥

10-12절에 보면 욥은 친구들에게 다시 자신에게 오라고 합니다. 욥은 그들에게서 지혜자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앞에서 엘리바스는 스스로 지혜로운 자라고 한 바 있으나(15:9, 10), 욥은 그들의 지혜가 아전인수(我田引水)격 편견에 불과하다고 공박합니다.

인과응보적인 율법은 참된 지혜가 아닙니다. 욥은 친구들에게 오히려 ‘할테면 해 보라’는 식으로 빈정대고 있습니다. 욥의 날은 지나가고, 욥의 계획은 다 끊어졌습니다. 욥은 엘리바스의 말을 들으면서 절망에 사로잡힌 채 음울한 죽음만 기다리는 심정이 되었다고 토로합니다. 내 계획은 욥이 품었던 소원, 목표, 욕망 등을 통칭합니다. 욥은 친구들의 말을 들으며 이 모든 소원이 끊어졌습니다.

친구들은 욥에게 어둠이 가고 빛이 온다고 하지만, 욥은 전혀 그것을 알 수 없었습니다. 밤이란 욥이 당하는 바 고난과 질병의 고통을 뜻합니다. 낮도 역시 고통과 질병에서 온전히 회복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친구들이 욥에게 죄를 회개하고 돌이킬 경우 욥이 죽기 전에 곧 좋은 상태로 회복되어 행복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하지만, 욥은 그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욥은 친구들의 소망을 받아 들일 수 없어 깊이 절망하였습니다.

6. 친구의 말에 자살 충동을 느끼는 욥

“내가 스올이 내 집이 되기를 희망하여 내 침상을 흑암에 펴놓으매 무덤에게 너는 내 아버지라, 구더기에게 너는 내 어머니, 내 자매라 할지라도 나의 희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희망을 누가 보겠느냐 우리가 흙 속에서 쉴 때에는 희망이 스올의 문으로 내려갈 뿐이니라(13-16절).”

욥은 하나님을 통하여 힘을 얻었지만, 친구들로 인하여 절망하였습니다. 욥의 희망은 스올에 가는 것입니다. 무덤에 가서 구더기에게 뜯기는 것입니다. 그에게 무덤이 아버지요. 구더기가 어머니였습니다. 그는 ‘나의 희망이 어디 있느냐 나의 희망을 누가 보겠느냐’고 반문합니다.

소망은 ‘묶다’에서 유래되었으며 끈, 기대, 소망 등을 뜻합니다. 여기에서 소망이란 현재의 재난과 고통으로부터 놓임을 받고 아울러 그의 결백함을 입증받는 것을 뜻합니다. 그는 그런 소망이 없습니다. 그는 깊은 절망을 하고 있습니다.

절망은 사람을 자살하게 합니다. 사람들이 자살하는 이유는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은 욥에게 자살 충동을 심고 있습니다. 그가 죽으면 모든 희망은 사라집니다.

욥은 죽어 구덩이에 묻히고 음부에 내려갈 때에는 그의 소망도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만다고 합니다. 그러나 욥은 친구의 말에 자살 충동을 느끼지만, 자살하지 않습니다. 욥은 의로운 길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요한
▲오요한 목사.
7. 결론: 절망 중에서 의로운 길을 가는 욥

욥은 친구의 말에 절망하며 죽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욥은 이런 상황에서 두 가지를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무죄에 대해 담보물이 되어주시고 손을 잡아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의의 길을 꾸준히 가고 힘을 더욱 얻고 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자입니다.

욥이 친구들의 말에 절망하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고자 다짐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는 어떤 고통과 절망 중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증인 삼아 살아남아야 하고,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그 길을 가고 힘을 얻어야 합니다. 아멘!

오요한 목사(천안 UBF, <오요한 목자의 로마서 강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