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편지
우리 부부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경기도 광주 현산 마을에 텃밭을 만들었습니다.

오이, 상추, 열무, 쪽파, 배추, 무를 심고 물도 주고 벌레도 잡고 김도 매다 보면
손주 녀석들 커가는 모습 보듯 때를 잊고 매달릴 때도 있습니다.
간혹 출출해지면 텃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올갱이 해장국 집'을 찾습니다.
본인 집을 식당으로 만들어 종업원도 없이 시골 밥상처럼 손수 올갱이국을 끓입니다.
어느 날, 때 지난 늦은 오후에 그 집 문을 밀고 들어가니
손님은 없고 할머니 한 분이 TV를 보고 계셨습니다.
간혹 들르는 편이라 안면도 있으련만 할머니는 일어나셔서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그제야 주인이저씨는 피식 웃으시면서 TV채널을 손님을 위해 돌립니다.
"평소에는 어머니 보시는 TV채널을 늘 고정해 둡니다.
언젠가는 후회가 될까 봐......"
주인아저씨는 싱겁게 흘리는 말이었지만 나는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홀로 계신 노모의 마음까지도 세심하게 배려하는 주인아저씨 모습은
내게 잃어버린 세월을 찾게 해주었습니다.
수많은 세월이 겹겹이 덮여 와도
부모님의 그림자는 왜 그렇게 지워지지 않을까요?
명절 귀성길이 아무리 붐비고 고달파도
잃어버린 세월을 찾아가는 이들의 발걸음 때문에
언제나 그렇게 고향길은 붐비나 봅니다.

류중현/사랑의 편지 발행인

*교통문화선교협의회가 지난 1988년부터 지하철 역 승강장에 걸었던 '사랑의 편지'(발행인 류중현 목사)는, 현대인들의 문화의식을 함양하고 이를 통한 인간다운 사회 구현을 위해 시작됐다. 본지는 이 '사랑의 편지'(출처: www.loveletters.kr)를 매주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