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무엇을' 창조하셨을까?(8)

입력 : 2018.11.21 11:46

허정윤 박사의 창조론 다시 쓰기

허정윤
▲허정윤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5. 창세기의 모순적 서술과 현대적 해석(4)- 제4일의 궁창(라키아)과 광명들(1)

모세는 넷째 날에 하나님이 '광명(들)이 있으라'고 명령하시는 소리를 들었다. 창 1:14절 וַיֹּאמֶר אֱלֹהִים יְהִי מְאֹרֹת בִּרְקִיעַ הַשָּׁמַיִם לְהַבְדִּיל בֵּין הַיֹּום וּבֵין הַלָּיְלָה וְהָיוּ לְאֹתֹת וּלְמֹועֲדִים וּלְיָמִים וְשָׁנִים׃ [바요메르 엘로힘 예히 메오르트 베레키아 하샤마임 레하베딜 벤 하욤 우벤 하라엘라 베하유 레오토트 우레모아딤 우레야멤 베샤님]. 모세는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먼저 큰 광명이 보였다가 서쪽으로 사라지면서, 저녁이 되었다. 초승달과 별들이 보였다. 여기서 '메오르트'는 복수이므로 광명들이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그 광명들은 해와 달과 별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있으라'는 명령어에 그 광명들의 처소를 '하늘의 궁창에(베레키아 하샤마임)' 정하신 일, 그 광명들이 주야를 나뉘게 하는 일, 그리고 그 광명들이 운행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고 서술했다. 이런 서술들은 하나님의 창조 명령어에 모세가 덧붙여 놓은 설명문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모세가 환상에서 보았던 광경은 그가 현실에서 늘 보았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모세의 서술은 그가 이미 그 광명들이 '라키아'에서 날자와 사시와 연한을 이루고, 징조를 나타낸다고 인식하고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베레키아 하샤마임'을 제대로 이해하자면, 모세가 둘째 날에 서술한 '라키아'부터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모세의 서술에 의하면 둘째 날에 '라키아'는 물속에서 위의 물과 아래의 물을 나누고 있다가 위의 물을 담은 채 그대로 위로 들어 올려진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모세는 물속에 있었던 '라키아'가 위의 물을 모두 담을 수 있을 정도로 하늘만큼 넓게 펼쳐진 판으로 되어 있었고, 그 바깥 둘레에는 올라갈 때 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측벽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모세는 하늘 위로 올라간 그 '라키아'를 땅 끝에 있는 높은 산들이 떠받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모세에게 하늘은 그 '라키아'와 땅 사이에 생긴 공간이다. 모세의 서술에 의하면 '라키아 하샤마임'은 땅의 하늘을 덮고 있는 지붕이며, 동시에 하늘의 물을 담고 있는 바닥이다. 모세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만물들을 모두 '라키아'의 아래에 두었다고 생각했다. 모세의 서술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둘째 날에 모세가 서술한 '라키아'를 이미 알고 있는 고대 히브리인들이 이 구절을 읽으면, '라키아' 밑에 있는 하늘(샤마임)에서 별들은 '라키아'에 매달려 있고, 동쪽에서 떴다가 서쪽으로 지는 해와 달은 정해진 길을 따라 운행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서술은 모세의 시대에 이미 월력과 점성술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자료적 가치는 있다.

이미 앞에서 설명했듯이, 모세의 서술에 의하여 형성된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은 세월이 가면서 점점 더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모세는 야곱의 입을 빌려 땅 밑에 음부(שאלה: 쉐올라)가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창 37:35). 그리고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모든 '하늘의 하늘'(신 10:14)을 분명하게 서술함으로써 '라키아' 밑의 '라키아 하샤마임', '라키아' 위의 물(마임)을 포함하여 3개의 하늘들이 구성되었다. 가장 큰 변모는 평평하게 펼쳐졌던 '라키아 샤마임'이 욥기(22:14)에서 '후그 샤마임'(וחוג שמים : 天球)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로 현재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을 그린 그림(참고 자료 제시)에서는 '라키아'를 반구형(半球形)으로 그리고 있다. 이사야 40:22에서는 '후그 하아레츠'(חוג הארץ : 지구)로 쓰였으나, 한글성경은 이것들을 다 같이 궁창으로 번역했다.

중국어 성경 주석에 있는 고대 히브리인들의 세계관 그림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 그림(이 그림은 필자의 다른 칼럼에서 이미 소개되었던 것이다.)
현대인들 중에 '참고자료'(위) 그림과 같이 모세가 서술한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을 '문자 그대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이 이 그림을 설명하는 서술을 '문자 '그대로'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떤 목적을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말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이 구절과 관련하여 현대우주론을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미 현대우주론의 기본 개념은 거의 일반적 상식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창세기를 읽으면서 모순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을 올바르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은 '광명들이  있으라'는 명령어뿐이었다. 모세는 환상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모세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해와 달과 별들에 관해 생각했다. 하나님은 넷째 날의 나머지 시간을 지구에 살아갈 사람들의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광명체들의 운행을 아주 정밀하게 미세조정(fine tuning)하는데 사용하셨다. 모세가 그의 소견대로 서술한 이 구절들은 '토라'(가르침)를 통해 '참고 자료' 그림과 같은 모습으로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이 되었다.

신약성경에는 모세의 우주관이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신약성경에 몇 가지 추가된 서술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에 의해 구원받을 자와 구원받지 못할 자의 처소를 하늘과 땅에서 구조적으로 구분하는 것들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할 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먼저 하늘에 관련해서 말씀했다(마 4:17). 바울은 환상에 이끌려 '세째 하늘'(고후 12:2)에 갔던 경험을 서술하고 있다. 또한 예수께서는 자기의 복음을 믿지 않는 자는 지옥의 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지옥은 여호수아가 유다지파에 배분한 '힌놈의 골짜기'(수 15:8: 게 힌놈, גי הנם)를 뜻한다. 이곳은 예루살렘 성전의 산 남쪽에 있으며,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도 불린다. 이곳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들을 섬겼던 아하스 왕 시대에 자녀들을 불태우고 이방신에게 제물을 바쳤던 곳이다(대하 28:3). 예수님은 이곳의 이름으로 지옥을 가르치셨다. '형제를 미련한 놈이라고 부르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갈 것이라'(마 5:22)고 말씀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타올랐던 '힌놈의 골짜기'(גיהנם)를 한글성경은 지옥으로, 그리스어로는 '게엔나'(γεεννα)로, 영어로는 hell이라고 번역했다. 예수의 말씀에 의하여 땅 위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가 지옥이 되었다. 그리고 땅 밑에는 '쉐올라'(음부) 외에 무저갱이 따로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누가복음 8:31 등에 나오는 무저갱은 그리스어 '아뷔쏘스'(αβυσσος)이다. 히브리어 신약성경을 보면 무저갱은 창세기 1:2절에 나오는 '테홈'(깊음, 깊은 물)을 말한다. 귀신들은 예수에게 이 말을 사용하면서 그곳으로 보내지 말고 돼지 속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무저갱으로 들어가는 것이 두려워 도망 다니고 있던 그 귀신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돼지 속으로 들어갔다. 돼지들은 그 귀신들과 함께 호수 물속으로 뛰어들어 죽었는데, 결국 그 귀신들은 무저갱으로 보내졌을 것이다.

한편 이사야서(65:17, 66:22)에서는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다시 창조하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이사야는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여호와의 택한 종들이 살게 될 것이고, 이전 것(모세의 하늘과 땅)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하나님의 날이 임하면 뜨거운 불에 타서 (모세의) 하늘은 풀어지고 물질은 녹아서 (모세의) 땅의 모든 일이 드러나리니, 예수가 택한 의인들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벧후 3:13). 특히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자세히 서술(계 21:1 이하)하면서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올 것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새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이 만물을 새롭게 하여 예배를 드릴 성전도 필요 없다. 새 예루살렘에는 하나님과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 아버지와 아들이 되어 함께 거주하기 때문이다. 요한에 의하면 새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므로 해와 달의 비침조차 쓸 데 없다(계 21:23). 이사야와 사도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했던 하늘과 땅은 바로 모세의 서술에 나타난 것이다. 이들의 예언대로라면 모세의 하늘과 땅은 버려져야 하는 것이다.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을 읽어보면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될 모순적 서술이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게 된다. 더욱이 번역본 성경에는 번역의 오류까지 더해져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성경을 읽을 때 저자의 시대적 상황과 배경, 판본의 종류, 그리고 문맥의 흐름을 면밀하게 파악하면서 비유는 비유대로, 사실은 사실대로 해석하는 것이 현대적 관점에서 올바른 해석법이다. 그리고 원어성경에서도 명백하게 사실과 다른 서술이고 비유로도 해석할 수 없다면, 그런 부분들은 인간 저자의 모순적 서술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성경에서 모순적 서술은 대개 창세기에 서술된 모세의 우주관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사야와 베드로, 그리고 요한에 의해 모세의 하늘과 땅은 결국 버려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될 것이라는 사실이 예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부 신학자나 목회자들이 모세의 하늘과 땅을 '문자 그대로'의 해석에 따라 믿지 않으면, 진실한 기독교인이 아닌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는 외국에서 현대 과학을 공부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모세의 우주관이 맞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서 모세의 하늘과 땅을 지키려고 하는 것인가?

현대 기독교인들은 창세기를 부분적으로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서 전체적으로는 사실과 모순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배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는 창세기의 모순적 서술로 인하여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만다.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는 것이 진리의 길이다. 창세기를 바탕으로 하는 기독교 창조론에는 무엇보다 사실을 중시하는 현대적 해석이 필요하다. 기독교가 진리의 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창조 명령에는 모순이 없지만, 모세의 서술 부분에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을 경우 모순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현대인들의 시대정신은 사실이 아닌 거짓말을 용납하지 않는다. 기독교가 현대의 정신사적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사실과 모순되는 주장을 계속한다면, 머지않아 기독교는 현대인들로부터 배척되는 종교가 될 것이다. 제4일의 서술에 대해 '문자 그대로'의 해석을 따른다면, 기독교를 생존의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는 모순이 두 가지가 나타난다. 그것들은 '라키아(궁창)'와 '욤'에 관련된 서술이다. (계속)

허정윤(Ph. D. 역사신학, 케리그마신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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