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같은 공개 회개, 한국교회 전통과 안 맞아”

이대웅 기자 입력 : 2018.11.15 16:41

김명혁-박명수 교수, ‘이성봉 목사의 영성’ 주제 발표

김명혁 박명수 대담 이성봉
▲대담이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이성봉 목사님의 회개와 은혜 사모와 성결과 재림의 영성을 염원하며’라는 주제로 김명혁 목사(한복협 명예회장, 강변교회 원로)와 박명수 교수(서울신대) 간의 대담이 15일 오전 서울 도곡동 강변교회(담임 이수환 목사)에서 개최됐다.

김명혁 목사는 인터넷방송 21tv 주최로 교계 원로들과 매달 다른 주제로 대담을 갖고 있다. 그 동안 허문영 박사(통일선교아카데미 원장),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전병금 목사(강남교회 원로), 손봉호 교수(고신대 석좌), 림인식 목사(노량진교회 원로) 등이 함께했다.

이번 대담에서는 지난 달 한경직 목사에 이어, 성결교회의 대부흥사였던 이성봉 목사(1900-1965)를 추억했다. 앞으로 김명혁 목사는 교계 지도자들과 길선주·이승훈·이기풍·주기철·김치선·박윤선 목사 등 신앙의 선배들의 영성을 계속해서 되새길 예정이다.

◈“진짜 회개와 성결, 다시 오실 주님 사모하는 간절함을”

박명수 교수는 “1907년 대부흥운동은 한국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점이었다. 진정한 회개와 성결한 삶에 대한 추구는 1907년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져 왔다”며 “1907년 대부흥 정신을 이어오신 분이 바로 이성봉 목사님으로, 그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생각하며 평생 청빈한 삶을 사셨다. 그 분의 삶을 통해 철저한 회개와 성결한 삶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어거스틴의 <참회록>이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데, 이성봉 목사님도 어거스틴처럼 철저하게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 은혜를 사모했다”며 “그는 자서전 <말로 못하면 죽음으로> 첫 줄부터 조상들의 죄부터 시작해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드러내고 있다. 인간이 얼마나 죄 가운데서 출발하는지를 생동감 있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1920년대 초 20세 무렵이었던 그는 평양에서 장사하며 방탕하게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다리가 아파 쓰러지면서 철저히 회개하게 된다”며 “이성봉 목사의 회개에는 죄인임에 대한 철저한 자각과 어머니의 산 교육이 있었다. 또 그의 회개는 과거의 죄뿐 아니라 미래의 사명을 향해 있었고, 그로 인한 새로운 삶과 신유 은사로 연결됐다”고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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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수 교수가 이야기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박명수 교수는 “신학교에 진학해서도 회개에 대해 강조했다. 그 시대 한국교회 회개에는 죄에 대한 철저한 각성과 통회, 죄에 대한 자백과 배상이 있었다. 특히 배상의 경우 말로 지은 죄는 말로, 돈으로 지은 죄는 돈으로 철저히 배상했다”며 “이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믿는 사람은 정말 다르다’는 평가를 듣게 했다. 오늘날 회개를 행사하듯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회개를 이벤트처럼 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데, 한국교회 전통과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당시 선교사들이 한국교회를 보고 감동한 것도 이런 모습 때문이었다. 단순히 많이 모이거나 통성기도를 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진짜 믿음을 배워야겠다’고 한 것”이라며 “이성봉 목사님의 부흥회 때 자식들과 함께 자살을 시도하다 혼자 살아남은 한 여성이 공개 회개할 정도로 정말 회개하기 어려운 내용을 꺼내놓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늘날에는 부흥집회를 하면 회개의 역사가 없고, 회개가 없으니 진정한 부흥이 일어나지 않고, 부흥이 없으니 교회에서도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다. 오늘날은 예전 성도들보다 죄가 더 많을텐데 이러한 회개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며 “우리 한국교회가 이성봉 목사님의 전통을 이어받아, 진짜 회개와 성결, 다시 오실 예수님을 사모하는 간절함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성봉 목사님이 열두 번이나 안수기도 해 주신 덕분”

이어 김명혁 목사는 이성봉 목사와의 추억을 회고했다. 그는 “중학생 시절 6·25 전쟁으로 대구에서 피난 생활을 했는데, 이성봉 목사님께서 서너 달에 한 번씩 인도하시는 부흥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면서 큰 은혜를 받았다. 아마 열두 번은 참석했을 것”이라며 “특히 천로역정 이야기는 중학생인 제게 재미와 감동, 은혜가 충만했다. 저는 죄인 중 괴수이지만, 은퇴 후 아직까지 목사로 사역하고 있는 것은 이성봉 목사님께서 열두 번이나 안수기도를 해 주신 덕분”이라고 고백했다.

김 목사는 이성봉 목사 탄신 100주년 기념 강의에서 그의 삶과 신앙을 9가지로 정리한 내용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는 ①은혜 체험적 삶 ②구령과 교회부흥에 헌신한 삶 ③현세를 초월한 깨끗한 청빈의 삶 ④하나님 제일주의 신앙 ⑤예수 중심주의 신앙 ⑥회개와 중생의 복음 신앙 ⑦성결의 복음 신앙 ⑧신유의 복음 신앙 ⑨재림의 복음 신앙 등이다.

그는 “이성봉 목사님은 회개를 통한 중생의 은혜를 강조했다. 특히 새벽기도회는 추상같은 권위로 죄를 책망하는 시간이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자복하며 회개했다. 이는 목사님 자신의 삶이 철저한 회개에 기초했기 때문”이라며 “회개와 중생의 메시지가 사라져가는 오늘에 비춰볼 때, 회개와 중생의 복음을 강조한 이성봉 목사님의 신앙과 메시지는 우리에게 심각한 경종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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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목사가 이야기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김명혁 목사는 “이성봉 목사님은 또 은혜 체험적·사모적 삶을 사셨다. 김익두 목사님의 신앙적 감화를 받았고, 청년 시절 질병과 죽음의 고통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치유의 손길을 체험했다. 부흥 사역 가운데 기사와 이적이 많이 나타났지만, 신비주의를 경계했다”며 “이 목사님은 ‘가슴은 뜨거워야 하지만, 머리까지 뜨거워져선 안 된다’고 항상 말씀하셨다. 그러면서도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혹 사는 법이 있어도, 신자들이 은혜를 떠나서는 사는 법이 없다’고 하셨다. 지식과 기술과 경영과 각종 프로그램과 행사에 치중하는 현대 목회자들의 삶에 비춰볼 때, 은혜 체험과 사모, 성령의 역사에 붙잡혀 한 평생 사역한 이 목사님의 삶과 사역은 심각한 도전을 준다”고 했다.

김 목사는 “이성봉 목사님은 현세를 초월한 성결과 청빈의 삶을 사셨다. 자신이나 세상에 대한 어떠한 애착도 없었고, 부흥회를 인도하실 때마다 받은 사례비를 개인이나 가족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작은 교회들과 어려움에 처한 교회들을 위해 썼다. 결국 사모님과 세 명의 딸들은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었다”며 “어떤 교수는 이성봉 목사님의 ‘허무주의적 정서’를 혹평했지만, 저는 너무 귀중하게 보고 싶다. 사실 기독교는 현세 부정을 통한 내세 긍정적 신앙이기 때문이다. 말로는 순교를 주창하면서도 실제로는 세상과 돈과 명예를 너무 좋아하는 세속주의에 빠져들고 있는 현대 목회자들에게 이 목사님의 현세 초월적 청빈의 삶은 큰 도전이 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성봉 목사님은 다시 오시는 주님을 사모하는 재림 신앙을 강조했다. 이 목사님은 밤에 자다가 옆집 방앗간에서 방아 찢는 소리만 들려도 ‘주님이 오시려는가’ 하고 밖에 나가서 하늘을 쳐다보곤 하셨다고 한다”며 “언젠가 우리에게서 종말과 재림 신앙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현세가 전부인 것처럼 살고 있는데, 몰트만 박사의 지적대로 미래에 대한 분명한 종말 신앙은 적극적이고 책임 있는 현재적 삶을 살게 한다. 이성봉 목사님의 재림 신앙은 현재와 미래에 대해 둔탁해진 우리의 신앙을 일깨우는 청량제”라고 했다.

이어 김철영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사회로 두 사람 간의 대담이 이어졌다.

이성봉
▲이성봉 목사.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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