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앤 하이드
▲지킬 앤 하이드 포스터.
1. 길을 걷다 뛰어오던 여자아이와 사내가 부딪치고, 사내는 이 아이를 무자비하게 폭행합니다. 결국 사내를 붙잡고 배상청구를 하자, 수표를 내밀며 연락처를 줍니다. 그 연락처를 따라가 보니 지킬이라는 박사를 만나지요. 이것이 지킬과 하이드의 이야기입니다.

2. <지킬 앤 하이드>는 인간의 두가지 본성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합니다. 선함과 악함이 동시에 있으니 이를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악한 일을 저질러도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편했지만, 결국 하이드에 의해 지킬은 잠식당하고 맙니다.

이 이야기는 겉과 속이 다른 19세기 영국 문화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동시에, 우리 내면에서 하이드와 같은 악한 모습을 분리하고 살아가는 것을 발견하게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악한 행동을 얼만큼 자세하고 무자비하게 하고 있는지 발견하지 못합니다.

3. 세상도 문제지만 교회는 더욱 큰 문제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켜야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에서의 모습과 세상에서의 모습이 다릅니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그냥 분리시키고 사는 게 당연하다고 믿습니다. 집사님의 모습이 가정으로 이어져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 따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렇게 살면 우리는 오히려 세상에서의 내 모습, 하이드 같은 모습으로 살면서 교회를 잠식해 갈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결국 분쟁의 소용이에 빠지는 것이지이요

4.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처럼,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상황, 권위에 복종해야되는 상황, 내가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상황이라면 얼마든지 450v의 전기를 타인에게 감전시킬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충격적인 일입니다. 무려 65%의 사람들이 그러했다는 것은 우리도 그 안에 들어갈 확률이 높다는 것이지요.

300v까지만 누른 35%의 사람들 역시 누르기는 눌렀을 뿐더러, 중간에 멈춘 이들을 추적해 보면 그들 중 상당수조차 “내 심장이 걱정되서 멈췄습니다”라고 대답하는 등 이기적인 대답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자신의 악함을 깨달은 65%의 사람 중 상당수가 삶을 수정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참으로 희한하게도 자신의 악함을 깨닫고 인정한 자는 삶을 수정하기가 더 쉽습니다.

5. 사도 바울도 고민이 있었습니다. 자신 안에 악함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롬 7:21-23)”.

선을 행하는 자신, 즉 지킬이 아니라 그 안에 악이, 즉 하이드가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죄의 법이 사로잡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뒤에 무슨 고백이 있냐면, 25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고 고백합니다. 즉 그가 자신의 참된 악함을 깨달을 때, 예수에 대한 감사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6. 지난 주간 교회 내에는 여전히 이슈들로 가득한 듯 합니다. 세습 문제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인데, 또 다시 인천에 있는 한 교회에서 청년부 목사가 청소년들에게 성 문제를 저지른 것입니다. 한두 명도 아니고… 끔찍한 일입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세습을 한 교회들은 한결같이 “우리는 선하고 떳떳하다”, “우리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선함을 강조합니다.

인천 부평구 청년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사랑했을 뿐”과 같은 말을 하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선한 일을 했는지를 상기시키는 것 같습니다.

다들 자신들의 선한 이미지만을 강조하다 보니, 얼마나 악한 짓을 하고 있는지, 그 하이드를 모르고 있습니다. 즉 분리가 아니라 이미 하이드에 잠식돼 버린 것임을 모릅니다.

8. 그런데 이런 모습이 우리 안에도 있지 않습니까? 늘 우리 역시 그리스도인과 세상에서 주어진 역할의 자기 자신을 분리시키고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늘 자신은 옳고, 바르고 선한 사람일 뿐이지요. 우리는 그쯤에서 욥기를 다 시 한번 보기 바랍니다.

유한승
▲유한승 목사.
9. 욥기는 욥과 세 친구들의 말다툼으로 계속 반복되는, 참 지루하고 마음 상하게 하는 내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욥은 선하고 세 친구들은 악하다고만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꼐서 38장에 등장하시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욥을 질책하십니다. “무지하다”, “트집 잡지 마라”, “하나님 탓 그만 해라”.

그 이야기를 들은 욥이 갑자기 변화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회개를 한 욥에게 그제서야 사명을 주십니다. 놀랍게도 욥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은, 욥을 죽일만큼 구박하던 세 친구를 향한 사명입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라는 것입니다. 욥의 사명은 위로자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세 친구들에게는 예배자가 되라고 가르치십니다.

회개는 사명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사명은 ‘관계의 회복’이며 ‘위로자’입니다. 그리고 ‘예배자’입니다.

9. 그렇다면 러브레터를 받으시는 여러분. 참 암울한 시대에, 여러 교회들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많은 성도분들이나 목사님들과 이런 최근 안 좋은 이야기를 나누면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선한 교회들 많아요. 희망이 있습니다”, “그래도 이 땅에 정직한 교회 많아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교회와 교회를 또 분리시키는 것, 즉 하이드와 지킬의 분리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회복해야 할 것이 있다면, 우리야말로!
욥과 같이 결국 회개의 자리에 가서 앉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도 선한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요.

10. 생명샘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교회는 선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랑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끔 AMCM, 나눔씨앗, 포도나무주일, 달꿈예술학교 등의 여러 사역을 보고 칭찬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참 걱정이 됩니다. 그것은 마땅히 행하는 것이지, 자랑할 만한 것이 결코 아니니까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칭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칭찬받는데 익숙해지면, 그것이 곧 교만이요, 괴물이 되게 마련입니다.

11. 최근 여러 곳에서 성도들이 등록하고 새가족이 되었습니다. 그 분들을 비롯하여 지면으로 편지를 받는 모든 분들에게 꼭 이야기해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교회, 선한 교회 아닙니다. 못된 자아를 가진 목사부터, 못난 죄투성이 성도들이 모인 교회입니다. 선한 교회를 찾는다면 다른 교회로 가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함께 회개합시다. 그리고 서로 위로자가 됩시다”.

샬롬. 마지막 인사를 드리며, 서로를 향한 시선 이전에 나부터 무릎꿇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서로에게는 위로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유한승 목사(생명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