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이승훈
▲남강 이승훈 선생.
어느 날 남강은 인천으로 강연을 하러 갔다. 시간이 좀 남아 홀로 부둣가를 이리저리 헤매었다.

바닷물이 철썩철썩 항구의 방파제를 두드렸다. 호젓한 해변에서 보는 바다와 달리, 그 파도는 일본의 압제에 짓눌린 듯 맥동이 없고 구슬픈 모습이었다. 어서 빨리 거세게 파도칠 수 있는 한바다를 찾아 달라고 호소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남강은 한숨을 쉬며 걷다가 허름한 차림새의 지게꾼을 발견했다.

“이보게, 혹시 자네 동길이 아닌가? 여기서 만나는군!”

지게꾼은 어리둥절해 했다. 어떤 신사가 자기 어깨를 툭 치며 반갑게 웃고 있지 않은가.

“누구시우?”

“날세.”

그제야 그 허름한 친구는 알아본 듯했다.

“응? 장사꾼하던 승훈이?”

“그래, 평안도 장사꾼 승훈이….”

“허허, 아주 멋쟁이가 됐구먼요.”

“여보게 친구, 왜 갑자기 말을 높이나?”

“조선의 유명한 분이신데….”

“원, 참! 우린 옛 동무야. 그렇게 하면 어색하지. 그러지 말구 옛날처럼 우리 그냥 막말하자구. 하하하.”

얼마 후 인천 시내 사방을 뒤지고 다니던 기자가 겨우 이승훈이 어느 선술집에서 막노동꾼과 막걸리를 마시는 것을 발견하고 조용히 다가서서 말했다.

“선생님, 강연 시간이 다 됐습니다. 어서 가 보셔야죠.”

그러자 남강은 양복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보았다.

“으응,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그러고는 옛 친구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그의 소탈한 성격을 보여주는 에피소드였다.

1920년대엔 일본에서 맹위를 떨치던 사회주의 서적이 국내에도 소개되어 청년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일부 상류층만 잘 먹고 잘 사는 불공평한 사회보다 모든 국민이 저마다 열심히 일하며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사회는 인류의 이상향이었다.

대다수의 조선인이 빈곤에 시달리는 소작농이나 노동자였기에, 가난한 민중의 해방을 내세우는 사회주의에 끌려들었다.

또한 참다운 사회주의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해야 하므로 독립운동의 한 방편으로 사회주의를 수용하는 이들도 많았다. 특히 유행에 민감한 청년 학생들 사이에 사회주의는 열병처럼 번졌다.

오산학교 학생들도 사회주의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지 않았다. 어느 날 사회주의 그룹을 이끄는 학생들이 남강을 찾아왔다.

그들은 조선의 현실과 일본의 정세를 설명하고 조선 독립을 위해서는 국제 공산당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산주의는 전세계 모든 나라와 민중의 평등과 자유를 지향합니다. 편협한 민족주의는 사라져야 합니다!“

“음.”

남강은 신음을 흘리더니 말했다.

“일본은 옛날부터 조선을 도와 독립을 지켜 준다고 했었지. 그런데 조선은 일본에 먹혀 버렸어. 이제 독립은 우리 힘으로 이뤄야지 남의 도움을 받을 것이 못 된다네. 일본 공산당이 우리를 도와준다는 건 좋은 일이야. 그런데… 저들이 우리를 돕는 길은 저들의 정부를 거꾸러뜨리는 일인데. 과연 그럴 수가 있을까?

음, 공산당이 하는 일은, 내가 알기론 남을 돕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자기들의 세력을 펴는 데 있어. 또 우리가 남과 함께 일을 하려면 저들과 맞설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네. 섣불리 저들과 손을 잡으려다가 또 하나의 일진회가 될까 두렵네.

아, 미국과 일본, 소련과 중국이 세계평화를 운위하면서도 속으로는 자기네 나라의 이익을 챙기고 있는데 우리는 이 무슨 꼴인가!”

김영권 남강 이승훈
▲김영권 작가(점묘화).
남강은 장탄식을 했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의 할 일은 민족의 역량을 기르는 일이지 남과 연결하여 남의 힘을 불러들이는 일이 아니다…. 나는 씨앗이 땅속에 들어가 무거운 흙을 들치고 올라올 때, 자기 힘으로 들치지 남의 힘으로 올라오는 것을 본 일이 없다.”

김영권 작가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작가와 비평>지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成功狂人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어린이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 <지푸라기 인간>과 청소년 소설 <보리울의 달>, <퀴리부인: 사랑스러운 천재>가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보통 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

*이 작품은 한국고등신학연구원(KIATS)의 새로운 자료 발굴과 연구 성과에 도움 받았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