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천 칼럼] 슬픔을 알고, 슬픔을 품을 수 있는 성도

입력 : 2018.11.11 07:26

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담임).
▲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담임).
삶의 하루가 더해갈수록 삶의 슬픔은 쌓여져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슬픔이 반드시 우리를 해한다거나 삶의 힘을 빼는 것만은 아닙니다. 삶이란 또 한 면, 슬픔을 만나고 품어가고 함께함으로 더 깊은 향기를 발하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만나고 헤어짐, 소유와 상실, 이룸과 무너짐, 건강과 질병, 나와 너의 같음과 다름, 이 모든 것은 다만 삶의 한 요소일 뿐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의 연행합종의 어울림으로 기쁨 되기도 하고, 슬픔 되기도 합니다.

들여다보면 결국 삶은 투명한 물색에 지나지 않습니다. 거기에 마음이 투사되어 각양의 색조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결국 삶의 유려함이나, 삶의 의젓함이란, 슬픔을 그냥 해질녘의 저녁노을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이루어지는 관조입니다.

성도들을 바라볼수록 인생에는 슬픔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루어지지 않아서, 무엇인가가 되지 않아서, 마음먹은 대로 가지 않아서 슬픈 것이 삶이고, 그것이 다만 하루하루 쌓여져 우리의 인생이란 기간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지는 해가 슬프기는 하지만,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때, 삶은 따뜻해집니다. 기쁨이란 결국 슬픔을 아픈 감정에서 따스한 온기로, 그리고 그 슬픔을 통해 이루어지는 결정체가 기쁨이고 깊이고 이해고 관용이고 은혜임을 느낄 때, 다시 다가오는 코끝 찡하니 시려우나 느낌 상쾌한 삶의 새로운 발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삶이란 늘 하하 거리고 웃기만 해서 깊어지고 아름다워지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슬픔이 가슴을 저며도, 눈물이 우리 앞을 가려도, 그중에 스며있는 인생의 발견과, 삶의 깨달음, 그리고 지혜의 터득으로 인한 행복감도 행복입니다.

슬픔을 넘을 수 있다면 우리는 강한 자가 되고, 그 슬픔을 넘어서 이룬 강한 자의 장대함은 또 얼마나 유연하고 아름답겠습니까. 슬픔을 넘어, 강함을 건너, 장대함을 이루고 유연함을 소유한 자의 자유의 기쁨과 행복. 우리는 그것을 누리는 진정한 은총의 자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공중을 나는 새도 깃들일 둥지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는 허무의 슬픔을 극복하시고, 십자가의 슬픔을 사랑의 구원으로 소화해내신 주님을 바라보면, 우리는 슬퍼서 아픈 것이 아니라, 슬퍼도 그 슬픔을 품어 소화해내어 더 강하고 유연한 삶의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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