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질병관리본부
▲미국 질병예방관리본부(CDC) 성병 카테고리 메인 화면. 미국 질본은 게이와 양성애자 등 남성과 남성 사이의 성관계로 인한 성병 가능성이 높다고 공지하고 있다(아래 맨 왼쪽). ⓒCDC 홈페이지 캡쳐

한국 질병관리본부(KCDC, 이하 한국 질본)가 미국 질병관리본부(CDC, 이하 미국 질본)와 비교했을 때, HIV 감염과 매독 등 성병의 구체적인 감염 경로와 남성 동성애 사이의 관계에 대해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질본은 올 가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미국의 성병 환자 수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31%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2017년 남성 동성애자와 양성애자 등 남성과 성관계를 가진 남성(이하 MSM; Men who have sex with men)에서 HIV 감염 보고 사례가 제일 높았다고 지적했다.

2017
▲Primary and Secondary Syphilis — Reported Cases by Sex, Sexual Behavior, and HIV Status, United States, 2017. ⓒCDC

또 미국 질본 홈페이지는 한국 질본의 그것과 달리 ‘성병(Sexually Transmitted Diseases, STDs)’ 카테고리를 따로 제공하고 있는데, 메인화면에서 ‘남성과 성관계를 가진 남성은 성병의 비율이 높다(Men who have sex with men have higher rates of STDs)’고 공지하고 있다.

이밖에도 미국 질본은 MSM이 클라미디아(chlamydia)나 임질감염(gonorrhea), HPV 같은 성병에 취약하고 "에이즈를 일으키는 신규 HIV 감염자의 절반 이상이 MSM에서 발생한다"(more than half of all new HIV infections occur among MSM)고 설명하고 있다.

에이즈
▲감염병포털에서 제공하는 HIV/AIDS 정보. ⓒ한국 질본 감염병포털 홈페이지 캡쳐

그러나 한국 질본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이와 사뭇 다른 분위기다. 한국 질본은 ‘성병’에 대한 카테고리를 따로 두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성병 환자의 수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3년 1만 640명이었던 성병 환자의 수는 2017년 2만 5,139명(2017년 감염병 감시연보)으로 4년 사이에 두배 이상 증가했다.

또 국내 HIV/AIDS 신규 감염자 수가 2013년부터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1000여명 이상을 기록했다. 현재 한국 질본이 공개한 ‘HIV/AIDS 신고현황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HIV/AIDS 감염자 수는 12,320명이다. 지난해 신규 HIV/AIDS 감염자 수(외국인 제외)는 남자가 959명, 여자가 50명으로 남녀 성비는 19.2대 1이었다.

때문에 의학계에서는 HIV 감염 경로에 대해 ‘남성 동성애자’ 사이에서의 성관계를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질본은 이를 파악함에 있어 단지 ‘본인 응답’, 즉 감염자들이 스스로 밝힌 것에만 의존하고 있다. 감염자들이 거짓으로 응답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거기에 한국 질본은 HIV 감염경로에 대해 “이성간 또는 동성간에 관계 없이 항문성교, 질 성교, 구강성교 등의 성행위를 통해서 감염될 수 있다”고 설명해 MSM, 즉 남성과 성관계를 가진 남성에게서 나타나는 높은 감염률을 경고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감염경로의 특징에 대해 “유럽, 미국 등지에서 남성 동성간 성접촉에 의한 경우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는 덧붙이고 있다.

한편 한국 질본은 최근 ‘HIV 감염인 의료차별 예방 가이드라인(안)’을 발표해 지난 11월 6일까지 의견을 수렴했다. 그러나 이 가이드라인(안)이 HIV 감염 경로 파악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HIV 감염인 의료차별 예방 가이드라인(안)’ 폐기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한국 질본에 “HIV 감염인 진료에서 감염 경로를 파악하기 위한 구체적인 질의와 사실 확인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을 통해서 문진 과정에서 언급될 수 있는 동성애와 같은 표현들에 대해서도 차별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의료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지함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라며 “진단에 어려움을 주게 되어 결국 환자가 제대로 치료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 당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