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칼럼] 의(義)를 위해 핍박받는 것, 천국 백성의 증거

입력 : 2018.11.09 15:35

의(義)를 위해 핍박받는 천국민

이경섭
▲이경섭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산상수훈 속 팔복 마지막 부분인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의 복’입니다. 논의를 진전시키려면, 먼저 핍박을 불러일으키는 의(義)가 무엇인지부터 규명돼야 합니다.

광의적(廣義的)으로는 ‘율법적 의’나 ‘사회적 공도(公道)’도 포함될 수 있지만, 협의적(狹義的)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롬 3:21-22)’로 한정됩니다.

성경의 모든 의는 대개 ‘믿음의 의’를 지향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마 6:33)”고 했을 때의 그 의(義)도 율법적 공의가 아닌, 말 그대로 ‘하나님 나라의 의’ 곧 ‘믿음의 의’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믿음의 의’로 통치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성경이 율법을 말할 때조차도 그것은 율법 자체보다 죄인을 ‘믿음의 의’에로 인도하려는 율법의 몽학 선생 역할을 의미했습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갈 3:24)”,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 1:45)”.

기독교가 최초의 순교자를 말할 때, 헤롯의 불륜을 책망하다 목배임을 당 한 세례 요한(마 14:3-11)보다 ‘복음의 의’를 전파하다가 죽은 스데반을 앞세우는 것은, 기독교가 ‘믿음의 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의를 위한 핍박(마 5:10)’을 ‘그리스도를 인한 핍박(마 5:11)’과 동일시 한 본문의 구조 역시, ‘의(義)’가 ‘믿음의 의(義)’임을 확증받게 합니다.

‘의(義)’를 ‘믿음의 의(義)’로 단정지우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보다 구속사(救贖事)적 측면에서입니다. 곧 ‘믿음의 의’라야 그리스도가 단번에 이룬 속죄의 완전성과 율법의 종결성을 담보해 주고(롬 10:4), 구속사(救贖事)의 정점인 그리스도의 피를 가치롭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의를 위하면 왜 핍박이 오는가?

복음의 의를 위하면 왜 핍박이 오는가? 이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의로 인한 핍박’이 ‘믿음의 의로 인한 핍박이라는 사실이 먼저 공고히 돼야 합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율법적 의(사회적 공도)를 행하는 자’에게는 핍박보다는 오히려 칭송이 따르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특히 공도와 윤리가 땅에 떨어진 작금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연일 강도, 폭행, 살인 등이 뉴스의 머릿기사로 등장하는 이 시대에, 선인의 의행(義行)은 찬사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합니다. 살신성인(殺身成仁)한, 소위 의사자(義死者)들은 국가나 사회가 기념비를 세워주고 그 의와 덕행을 길이 칭송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의’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을 향해 박수쳐주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전도자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악행과 순교를 당하지만 공중파의 뉴스거리가 되질 못합니다. 찬송 가사 그대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스러져 갈 뿐입니다.

수년 전 A국에서 단기 선교 중 인질로 잡히고 한 명이 죽기까지 했지만, 정부와 국민들로부터 칭송은커녕 국제적 망신거리를 만든 꼴통들이라고 비난만 받았습니다. 만일 자선단체들이 구제나 의료봉사를 하다가 그랬다면 국가는 대대적으로 칭송하는 보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의’를 쫓는 자들이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 비단 어제 오늘 만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도 유념돼야 합니다. ‘믿음의 의’의 원천인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세상에서 그런 대접을 받았습니다.

빛이신 그는(요 3:19-20) 어둠의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배후에는 마귀가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은(銀) 30에 판 유다의 배반 역시 사단의 사주(使嗾)때문이었습니다(요 13:26-27).

서머나, 버가모 교회의 순교자들 역시 ‘믿음’을 대적하는 사단의 공격에 의해 생겨났습니다(계 2:10, 13).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을 향해 저희 아비 마귀 짓거리를 한다고 했습니다(요 8:37-44).

자기 의를 우상화하는 인간의 교만 역시 본능적으로 ‘믿음의 의’를 대적합니다. 예수님 당시 ‘자기 의’를 떠받들던 율법주의자들, 그리고 오늘날 성화를 칭의의 조건으로 삼는 ‘이신행칭의자(以信行稱義)’들에게는 인간의 의를 무(無)로 돌리고,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가르침이 견딜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믿음의 의’의 전파자들을 핍박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핍박은 단순한 핍박을 넘어, ‘거짓된 모함’과 엮어진 핍박(마 5:11)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음의 주(主)’로 받드는 것을 그를 정치적 메시야로 옹립해 로마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획책이라는 모함으로부터, 그들이 ‘믿음의 의’를 강조하는 것은 율법을 폐하여(롬 3:31) 조상들이 전해준 여호와 신앙을 폐기하려 한다는 모함으로까지 다양했습니다.

이러한 모함들이 결국 예수를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으로 십자가에 매달았고(요 19:21), 사도들이 전파한 ‘믿음의 의’는 ‘나사렛 괴수 이단’의 가르침으로 정죄됐습니다(행 24:5).

이로 보건대, 종교개혁시대에 ‘이신칭의’를 가르친 루터(Martin Luther)가 ‘율법폐기주의자(antinomianist)’라는 음해를 받고, 오늘날 ‘복음의 의’를 전파하는 자들이, ‘값싼 은혜를 전파한다’, ‘사람들을 끌어 모으려고 쉬운 구원을 가르친다’는 모함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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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xels
◈의(義)를 위해 핍박받는 것은 천국민 됨의 증거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는 ‘복음의 의를 위해 핍박을 받아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러 사례들을 통해 누차 언급됐듯이, 하나님 자녀 됨 이나(갈 3:26), 영생이나(요 3:16) 천국 입성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됩니다(마 16:19, 행 26:18). 그 말씀의 진의는 ‘믿음의 의’를 위해 헌신하고 핍박받는 것을 통해, 그들이 ‘천국 백성’임을 확증한다는 뜻입니다.

‘율법의 의’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악행과 심지어 순교를 당하면서까지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을 전파하는 사람들은 누가 보더라도 ‘세상의 사람들(worldly people)’이 아닙니다.

‘천국은 의를 위해 핍박 받는 자의 것’이라는 말씀의 또 다른 의미는 전도자들이 ‘믿음의 의’를 전파할 때 천국이 경험된다는 뜻입니다. 즉 ‘믿음의 의’가 전파되는 전도 현장에는 핍박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임재도 경험된다(마 12:28)는 뜻입니다.

이는 전도자가 ‘믿음의 의’를 전파할 때 자신이 세상의 이방인으로 느껴지는 것과 함께 맞물린 경험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경험이 전도자들로 하여금 핍박을 이기게 하고, 평생 복음 전도에 투신할 수 있게 합니다.

스데반 집사가 순교의 위험 앞에서도 환신에 차 복음의 의를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전도 시 열린 천국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함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행 7:55-56)”.

영국의 청교도 전도자 ‘존 번연(John Bunyan, 1628-1688)’이 ‘복음의 의’를 말할 때 마다 하늘로부터의 이상한 힘이 자신을 북돋는 것을 느꼈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의 의’를 전파하다가 핍박을 받은 자가 받는 상급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 5:11-12)”.

핍박받는 전도자에 대한 ‘하늘의 큰 상(great reward in heaven)’ 약속은 예수님이 그들의 전도 헌신을 크게 여기신다는 뜻과 함께, 복음 전파를 장려하시려는 그의 의도도 간파됩니다.

다음의 상급 약속에도 예수님의 그런 의도가 나타납니다.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

금생(今生)과 내생(來生)의 복을 약속하시면서까지 기어코 우리에게서 복음에의 헌신을 이끌어내려는 예수님의 충정이 담겨 있는 내용입니다. 이래도 전도 안하실래요?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대표, byterian@hanmail.net)
저·역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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