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영 목사
▲류준영 목사 ⓒ미주 기독일보
오늘날 교회에 많은 지도자들이 한국교회와 이민교회가 위기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지만, 많은 이들이 한국교회가 위기에 처한 것은 삶이 따르지 않는 기독교인들의 모습, 사회에 드러나는 교회의 영향력 감소를 꼽고 있다.

최근 류준영 목사는 <한국초대교회 공공신학>을 펴내고, 한국교회의 위기의 원인은 공적 영역의 책임감 회피와 상실에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교회의 문제는 사회적인 공적 책임 수행에는 소홀하면서, 이기심과 개교회 중심적인 존재 방식에만 익숙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저서에서 한국 교회를 가리켜 '말씀은 넘쳐나지만,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적은 것이 문제'라고 했다. 따라서 말씀과 함께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신앙의 모습으로 한 체질적 개선을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요구 받고 있다고 말한다. 또 초기 한국 기독교 선교사의 공적 영성과 이에 영향을 받은 한국 초대교회를 통해 지금의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있다.

류 목사는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M.Div.) 과정을 마친 후 공공신학을 연구해 박사학위(D.Min.)를 받았다. 그는 토랜스제일장로교회 전도사와 부목사, 그리고 성신장로교회(현 새찬양교회)에서 설교목사, 글렌데일한인장로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있었다. 지금은 미국장로교(PCUSA) 소속으로 공적신학실천센터를 설립해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저자 류준영 목사와 나눈 이야기.

-책을 저술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전도사, 부목사 사역을 하면서 번아웃(Burnout, 과로)을 경험했다. 10년 전, 다시 학교에 가 지친 마음으로 공부하면서 공공신학을 접하게 되었다. 지난 2년 동안 집중해서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공공신학을 만나면서 하나님께서 다시 소명의 자리로 회복시켜준 것을 경험했다. 그때 충현선교교회 민종기 목사님이 풀러신학대 실천신학 논문 지도교수로 있었다. 그분이 나의 논문 지도를 하면서 내용이 너무 좋다고 추천을 해주어서 책으로 내게 되었다. 또 조의완 교수님이 부심이었는데 내용이 좋다는 의견을 주셔서 한국에 홍성사와 CLC 출판사에 논문 파일을 보냈다. 그 다음날 밤에 바로 CLC에서 출판을 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하나님의 은혜이고, 이 책을 통해 공공신학 실천센터 사역이 탄력을 받고 불쏘시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공신학이라는 말이 일반 성도들이 들었을 때 생소하다. 무슨 의미인가.

신학 자체가 공공신학이고, 교회 자체도 공적인 교회 모습을 띤다. 교회는 사교회가 아니라 공교회인 것이, 우리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한다. 창세기에서 야곱의 12지파를 통해서 공적인 스토리로 시작한다. 출애굽 사건도 공적인 이스라엘 이야기이고, 다윗과 이스라엘 모든 이야기가 그렇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도 사적인 나라가 아니라 공적인 하나님 나라이다. 한국이나 북한이나 아프리카 누구에게나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바울이 이야기하는 바울 신학의 핵심도 공교회이다.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사교회 개념으로 설명이 안된다. 그리스도의 몸인 공교회로서 사명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교회가 사유화/사사화 되었다. 개교회의 당회장과 당회가 각각 알아서 의사 결정을 하고, 공적인 책임 보다는 개교회적으로 교회 안에서 경영이 되다 보니까 교회가 만신창이가 된 것 같다. 개인주의가 오늘날 현대사회에 고통을 안겨주지만, 개교회주의도 기독교에서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개교회주의를 넘어서 이웃과 이웃교회에 사랑을 실천하면서, 이 땅에 모든 교회가 공적인 하나님 나라를 목적으로 작동해나갈 때 세속화 시대에서 교회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책임을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때야 비로소 교회가 세상에 정확한 해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날 교회가 말씀은 넘쳐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실천과 행함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붙잡아왔던 정통 신앙만을 가지고 500년 종교개혁 시대를 버티다 보니까 교회가 힘을 잃어버렸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신앙과 같이 교회가 있으나 마나 한 힘없는 곳이 되었다. 교회가 선한 사마리아 사람과 같이 작동하면서 어려운 자들을 돕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성경을 보고자 하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성경 말씀대로 사는 사람을 보고자 한다. 이제 더 이상 교회가 말만으로는 안된다. 말보다 강한 것이 글이고, 글보다 강한 것이 행함이다. 실천하지 않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 될 수 있다. 교회가 절박한 위기 가운데 놓여져 있다.

-이민교회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있다면.

초대교회에는 공적 영성이 나타났다. 초대교회가 작고 가난했지만 힘이 있었고, 사회적 영향이 있었다. 그리고 사회를 주도해 나갔다. 그 2.6%의 크리스천들이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에 깊숙이 들어가 공적인 책임을 감당해나갔다. 오늘날 교회가 초대교회 성도들이 가졌던 공정 영성을 붙들고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 목회자들이 기독론과 교회론 그리고 칭의론, 성화론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칭의와 성화가 나눠져 있다고 하는데 하나로서 다시 봐야 한다. 그리고 창조론을 다시 들여다 봐야 한다. 오늘날 교회를 보면 교회론이 많이 왜곡되었다. 교회 안에서 비즈니스 마인드가 교회 중심이 되는 모습인데, 목회자들 사이에 교회론이 다시 읽혀지고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날 교회가 불신자, 불교신자, 이슬람 신자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다. 그게 과연 그리스도의 마음인가? 선교라고 한다면 이슬람 마을까지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가 안에서만 축제하는 모습이 많다.

교회가 왜곡된 모습으로 존재하는 모습이 많다. 지역 사회 현장에서 불신자들과 교제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기회를 찾아가야 한다. 교회에 40년간 나온 장로가 주일 예배 이후에 교회 대문 앞에 서서, 지나가는 지역 주민들을 향해, "저 사람은 무슬림, 저 사람은 불교신자, 불신자야!"라고 심판하는 모습을 보면서 씁쓸했다. 잘못 가르친 책임이 현대 기독교에 있다.

-책에 언급한 초기 한국 선교사의 영향력과 공적 영성에 대해 말한다면.

네 분 선교사의 공통점이라면, 그들이 모두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이 서방선교사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했다. 알렌, 언더우드 선교사가 한국에 올 때 선교사로 온 것이 아니고 의사로, 교사로, 때로는 기술자로 건너와서 한국 사회에 필요를 채워주었다. 이들이 한국의 교육과 의료 문화 수준을 높임으로써 한국 사회가 감동하고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또한 언더우드, 알렌, 헐버트 이러한 분들이 총을 가지고 일본 폭도들로부터 고종을 지켜주었다. 현지인들이 아파하고 있는 것을 알고 먼저 도와주었다. 지금의 전도자들도 똑같다고 본다. 선교지에서 필요한 일들을 충실히 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길을 열어주시리라 믿는다.

-칭의론과 성화론을 구분하면 안된다고 말씀하셨는데, 더 자세히 말씀하신다면.

구원의 3단계를 보면 첫 번째는 칭의, 두 번째가 성화, 세 번째가 영화로 나눴다. 그런데 신앙에서 의롭다 함을 받고 죄 사함 이후에 구원을 받으면 끝났다고 하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30년 해도 성장이 없는 것이다. 칭의, 성화는 둘로 나눠져 있는 각각의 단계가 아니라 실제는 하나로써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칭의를 통해서 성화에 이르는 과정을 말한다. 사도바울이 말하는 바울 신학이 그렇고, 이것이 야고보 사도가 말하는 행함이 있는 믿음에 맞닿아 있다. 지금까지 교회의 세속화로 인해서 초대교회와 같은 성장이 없고, 지도자들이 말만 잘하고 삶이 없어서 교회에 열매가 없는 것이다. 성화를 이야기하지 않고 구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구원, 칭의를 경험한 사람은 반드시 성화의 길, 즉 신앙의 성숙한 모습을 보이게 되어있다. 교회에서 칭의와 성화를 구분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목회자도 그 틀 안에서 목회를 하려는 유혹이 있다. 교회가 의롭다 함을 받은 자는 성화의 단계로 자연스럽게 나갈 수 있는 그림을 제시해야 한다.

교인들이 교회 안에서는 잘할지 모르지만, 교회 밖에서는 비기독교인이나 기독교인이나 구분이 안된다. 목회자들이 교회의 본질인 기독론과 교회론을 다시 공부하는 깊은 신학적인 성찰이 필요하고, 교인들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자신 없으면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 왜냐면 오히려 교인들을 죽이게 되기 때문이다.

-책에서 몇몇 교회에서 실천하고 있는 공적 영성 사례를 말하고 있다. 소개를 부탁 드린다.

오아시스 교회는 50개의 커넥트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이 소그룹이 주말마다 만나 지역사회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경찰국에 가서 청소해주고, 홈리스 그리고 가난한 이웃에게 일용품을 전달하는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다. 또 유니온 레스큐 미션 사역이 있는데 사회적 약자가 교회를 찾아 도움을 청할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교회가 그들을 찾아가 봉사를 펼친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책임 수행의 의미가 있다.

리디머장로교회는 50개의 비영리 단체를 끊임없이 도우면서, 작은 교회를 지향한다. 인종, 지역 사회 내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할까 고민하는 교회이다. 대형교회로 가지 않겠다는 비전으로 계속해서 지교회들로 나누어 가고 있다.

-교회와 성도들이 공적신학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나.

교회가 대사회적인 공적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다. 가난의 문제, 마약의 문제, 환경적인 이슈에까지 참여하는 것으로 지향해 가야 한다. 사회에 기독교 영향을 드러내야 한다. 크리스천들이 정치 분야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교회가 대표를 뽑아서 당선시켜야 하고, 직간접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서 교회가 토론하고 방향을 찾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시민단체 이름으로 우리 사회의 공공성을 위해서 교회가 일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의 특권을 가지고 경제, 문화 등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서 공공의 선(common good)을 위해서 크리스천들이 일하는 것을 공공신학의 목표로 한다. 기독교인들이 그 영향력을 포기하지 말고 공적인 책임을 감당해내야 한다.

오직 말씀, 오직 믿음, 오직 은혜로 종교개혁을 하고 그 동안 500년이 지났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칭의의 단계에 머물러있다 보니까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는 것이다. 정통 신학은 정통 실천으로 나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알고 있는 신앙지식을 실천하지 못하면 신앙이 죽는다. 행함이 있는 목사, 장로, 성도가 되어야 교회에 주신 마지막 사명을 감당할 수 있고, 이 땅 위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교회가 쓰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문제의식을 갖고, 깊은 성찰을 통해 작은 자리에서 실천해가는 운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보고 삶을 통해서 사회에 작은 예수를 보여줘야 한다.

-끝으로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 각 지역교회들을 찾아가 교제하며 말씀 사역과 공적신학 세미나를 하려고 한다. 새로 이사한 팜데일(Palmdale)을 중심으로 삶에서 이웃주민들에게 예수의 정신을 실천하고 성육신적 사역이 되도록 할 것이다, 동시에 지역 이슈가 무엇인지 사정을 알고 지역 사회를 도울 것이다. 이를 위해 지역교회와 시민단체(NGO)들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어 감으로 공적 영역에서 기독교적 책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이끌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