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기독교와 선교 운동
정한욱 원장님의 <세계 기독교와 선교 운동> 서평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세계 기독교와 선교 운동
앤드류 월스 | 방연상 역 | IVP | 524쪽 | 28,000원

크리스채너티투데이에 의해 1997년 신학 분야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세계 기독교와 선교 운동』 은 “세계 기독교”라는 미답지(未踏地)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우리 시대 최고의 선교 역사가이자 선교학자 앤드류 월스의 대표작이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초기 교부학을 공부하고 시에라레온 선교사로 가서 교회사를 가르치던 중, 현재 아프리카 기독교의 모습이야말로 초대교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임을 깨닫고 단순한 교회사가에서 기독교에 주된 관심을 가진 종교사가이자 선교 역사가로 변신했다.

이후 비서구 세계 기독교의 가치와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먼저 인식하고 ‘세계 기독교 연구소’를 창설해 비서구 기독교의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데 전념해 왔다고 한다.

그가 쓴 여러 단편들을 선별해 모아들인 이 책의 1부에는 ‘역사적 전달’이라는 관점에서 기독교 신앙의 특성을 성찰하는 글들이 실려 있으며, 2부와 3부에서는 아프리카와 서구의 선교 운동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이러한 전달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살피는 글들을 만날 수 있다. 탁월한 통찰로 가득한 그의 글을 요약하고 간단한 단상을 덧붙이기로 한다.

토착화 원리와 순례자 원리

복음 전파 및 수용 과정 속 복음과 문화의 관계에는 ‘토착화’ 원리와 ‘순례자’ 원리라는 두 가지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 기독교 역사에는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동시에 자신이 속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려는 ‘토착화’의 욕구가 존재하며, 복음은 듣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배경과 수준에서 복음을 수용하게 하는 친문화적 속성을 가진다.

그러나 일단 수용된 복음은 초문화적 속성을 갖고 있기에, 이 세상의 가치를 뛰어넘어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에 대해서도 변화를 요구하게 되며, 이를 위해 교회는 토착화 원리와 긴장 관계에 있는 ‘순례자’ 원리를 물려받는다. 토착화 원리는 특수성과, 순례자 원리는 보편성과 관계가 있다.

번역을 통한 복음의 전달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번역’이라는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기독교 복음에는 ‘번역 가능성’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 특징은 성육신과 오순절에 토대해 있으며, 성경 번역과 세계 선교의 역사적 신학적 근거가 된다.

신성이 인성, 그것도 특정한 사회적 현실에서 ‘특정한’ 인성으로 번역된 성육신 사건이야말로 이 번역 사건의 시초이자 ‘번역을 통한 복음의 전달’인 선교를 통해 되풀이되는 재번역 행위의 전주곡이다.

이슬람이 경전의 언어인 아랍어를 절대화해 번역된 꾸란을 인정하지 않는 반면, 기독교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절대화하지 않으며, 번역된 성경 또한 온전한 성경으로 인정한다.

‘번역’이라는 신의 행위에 대한 인간의 반응인 ‘회심’이란, 자신들의 문화나 전통을 버리고 선교사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개종과 달리,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던’ 문화와 사상이 그리스도를 향하도록 만드는 '방향전환'에 가깝다.

앤드류 월스
▲앤드류 월스. ⓒYoutube
기독교 역사의 여섯 시기

오순절 성령강림 시기 이후 20세기까지의 기독교 역사는 ①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을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인 유대교의 한 분파로 여겼던 유대시대 ②논증을 거쳐 도달한 일련의 명제들로 표현되는 바른 믿음을 위한 규범들인 ‘정통성’을 중시했던 그리스-로마시대 ③로마 제국을 파괴한 야만인들의 개종으로 시작되었으며 관습법을 통해 집단개종과 기독교 국가로 특징지워지는 야만인 시대,

④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친족과 연관된 정체성에서 독립적인 한 개체로서의 개인에 대한 인식을 발전시킨 서유럽 시대 ⑤기독교 신앙을 버리는 서구인들이 증가했지만 유럽 밖에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독교가 이식되기 시작하는 유럽의 확장과 기독교의 쇠퇴 시대 ⑥2차 세계대전 이후 비서구 지역에서 기독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문화를 넘어선 전달이라는 여섯 시기로 나뉠 수 있다.

문화의 벽을 넘는 복음전파

모든 시대와 문화 속에 존재했던 다양한 기독교에는 본질적인 연속성이 존재하며, 여기에는 이스라엘 역사로의 입양을 포함한 역사적 연속성과 예수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상의 연속성 및 빵과 포도주 물의 사용 면에서의 연속성이 포함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무한한 번역 가능성’을 특징으로 하는 기독교는 지속적으로 문화의 벽을 넘었을 뿐 아니라 새로이 만나는 문화에 맞춰 끊임없이 ‘재번역’되어 왔으며, 고정된 발원지를 중심으로 동심원으로 확장되는 경향이 있는 다른 종교들과 달리 역사 내내 중심이었던 지점이 변방이 되고 변방이었던 부분이 중심이 되는 방식으로 순차적으로 중심점이 이동하며 퍼져 나갔다.

기독교가 파괴나 쇠퇴와 같은 여러 위기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기독교 신앙이 이렇게 문화의 벽을 넘어 한 문화권에서 다른 문화권으로 지속적으로 전파되어 왔기 때문이다.

문화와 그리스도의 새 얼굴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교회와 신학은 구체적인 문화적 맥락과 삶의 정황 속에서 창출되어 왔으며, 문화적 속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교회의 상황은 제약으로 작용하기보다 다른 문화를 통해 그리스도에 대한 총체적 이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모든 시대는 나름의 신학과 문화적 표현을 가진 기독교를 가져야 하며, 그것은 정통으로 규정되는 특정한 기독교의 방식에서의 일탈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 일이자 예수 그리스도를 재번역하는 끊임없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어떤 그리스도인 집단도 다른 시대와 다른 장소에서 정해진 일련의 삶의 전제들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른 그리스도인 집단에게 부과할 권리가 없으며, 이전 문화에 기독교가 침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던 주제가 모든 새로운 문화에서도 중요하게 여겨지리라고 가정해서도 안 된다.

세계 기독교의 출현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식민주의의 종식과 비서구 세계 신생국가들의 독립, 그리고 비서구 세계 교회들의 폭발적인 부흥과 성장으로 인해 진정한 ‘세계 기독교’가 출현했다. 이 시기에 기독교의 무게중심은 남반구 쪽으로 크게 이동해, 이제 라틴아메리카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가 대표적인 기독교 지역이 되었다.

비서구권 그리스도인들의 숫자가 서구권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은 기독교 신앙이 더 이상 서구인의 것이 아닌 지구촌의 신앙의 되었으며, 교회의 예배나 신학이라는 차원에서도 서구 기독교가 기독교를 대표하는 유일한 ‘표준’이나‘ 모범’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폭발적으로 부흥하고 있는 비서구 교회는 더 이상 서구 선교사들이 세운 그 교회가 아니며, 전통적인 서구 선교 운동이나 신학의 패러다임으로 설명되지도 않는다.

박형진 세계 기독교
▲앤드류 월스 박사와 박형진 교수. ⓒ박 교수 제공
위대한 선교의 시대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선교 운동은 몇몇 서구학문 분야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선교활동은 서구의 지식과 비서구 세계가 만나는 최첨단 지점에 위치했다. 그리고 이 때 선교사들은 기독교적인 일들을 하려고 노력하는 대표적 그리스도인들이자, 서구 역사와 상황 가치관 서구의 사회적 연결망과 지적 담론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 서구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대 서구의 선교 운동 자체는 결사의 자유가 허용되고 고도로 발달된 개인의식이 존재하며, 경제적 부로 인한 잉여자금의 자유로운 이동이 허용될 뿐 아니라, 자발적 선교단체들이 교회 외에서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고 피선교지로의 여행에 제약이 없었던 서양의 특정 시기 특정 국가에서만 발전할 수 있었다.

세계 기독교의 시대

그러나 현재는 어떤 곳에서도 이러한 조건이 존재하지 않으며, ‘위대한 선교의 세기’를 이끌었던 전 세대의 선교운동은 이제 노년기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이 대표적 서구인들이거나 서구인들이 대표적 그리스도인이지 않으며, 복음의 전달 역시 더 이상 서구의 지적 담론이 규정한 일방통행적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근대 선교의 전제였던 영토적인 의미의 기독교나 지리적으로 인접한 기독교 국가라는 개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세계 기독교’의 시대에 선교는 인적 구성에 있어 다문화적이고, 표현과 적용에 있어서도 더 다문화적이며 쌍방통행적이 되어가고 있다. 서구 기독교는 이러한 국제적이고 통전적이며 협력적인 ‘세계 기독교’의 안목을 통해 자신의 인식과 역사적 한계를 깨닫고 교정할 필요가 있다.

86학번, 기독교 세계관 세대

86학번인 나는 기독교 세계관 세대라 할 수 있다. 젊은 시절 우연히 펼쳐든 제임스 사이어의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은 굳어진 머리를 강하게 내리친 망치였으며, 그 시절 정말 지적이고 세련돼 보였던 복음주의 변증가 프란시스 쉐퍼는 곧 내 마음 속의 ‘당회장’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렇게 좋아했던 한국과 미국의 많은 기독교 세계관 저자들이 정치적으로 수구에 가까운 보수의 스탠스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기독교 세계관’의 트레이드 마크인 창조-타락-구속이라는 프레임 자체가 철저히 잃어버린 기독교 세계(christendom)를 회복하려는 서구 그리스도인들의 고민을 담은 사고틀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이 운동에 대한 대한 흥미가 급격히 식어들었다.

한 번도 기독교 세계에 속했던 적이 없는 극동의 변방인 대한민국에 태어난 내가, 대체 왜 서구 그리스도인들의 고민까지 짊어져야 한단 말인가?

앤드류 월스
▲10년 전 방한해 연세대에서 강연했던 앤드류 월스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세계 기독교’, 복음주의 운동의 미래

그러던 와중에 만난 마크 놀의 『나는 왜 세계기독교인이 되었는가』는 다시 한 번 강력한 망치가 되어 내 머리를 강타했다.

“기독교의 모든 교회적·신학적·도덕적 범주는 역사적이고 상황적이지만 동시에 참다운 기독교 진리에 온전히 참여하고, 하나님 백성의 역사는 모든 시대의 족속과 민족 그리고 교회를 포함하는 ‘세계 기독교’의 관점에서 서술되어야 하며, 전통적인 서구 기독교 세계(christendom)의 패러다임은 더 이상 기독교의 유일한 ‘표준적’ 혹은 ‘규범적’인 모델로 간주될 수 없다”는 마크 놀의 일갈은 내게 거의 '복음'과도 같았다.

그리고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세계 기독교’야말로 복음주의 운동의 미래여야 한다는 확신을 더 굳히게 되었다. 사실 ‘기독교 세계관’이 실질적으로 썩은 동아줄이 되어버린 현재, 그나마 나를 복음주의 운동과 연결해 주고 있는 끈 중 가장 쓸만하고 기대되는 놈이 바로 ‘세계 기독교’라 할 수 있다. 과연 이 놈은 언제까지 나를 지탱해 줄 수 있을까?

정한욱 원장(비전케어 이사, 고창 우리안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