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님을 바라볼 때, 현재의 고통을 이길 수 있습니다”

입력 : 2018.11.04 17:34

[율법과 은혜의 욥기 14] 욥의 부활신앙

욥 오요한
욥기 14장 강해

요절: 주께서는 나를 부르시겠고 나는 대답하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기다리시겠나이다(15절)

사람들이 질병에 걸리면 죽음을 인식합니다. 질병의 고통이 크고 오래될수록 더욱 죽음을 가까이서 인식합니다. 욥은 그런 죽음을 인식하며, 죽음 너머에 있는 부활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부활신앙으로 현재 열심히 살고자 합니다.

1. 시든 꽃과 같은 인생에 긍휼을 베푸소서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그는 꽃과 같이 자라나서 시들며 그림자 같이 지나가며 머물지 아니하거늘 이와 같은 자를 주께서 눈여겨 보시나이까? 나를 주 앞으로 이끌어서 재판하시나이까(1-3절)?”

욥은 고난에 관한 질문을 해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자, 그 내용을 3인칭으로 바꾸어 간접적인 방식으로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욥은 보편적으로 모든 인간이 죄의 결과로 죽게 되고, 이 세상 가운데 사는 동안에도 죄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합니다. 인간이 꽃과 같이 피었다가 쉽게 지고 마는 존재입니다. 욥은 이런 일시적인 인간을 왜 재판하여 죄를 들추어 내시냐고 질문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욥에게서 죄악과 허물을 찾으시어 징계하신다고 말합니다.

욥은 욥 자신과 같이 헛되고 무상한 존재를 그토록 심각한 눈으로 주시하시며 살피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하소연합니다. “나를 법적 선고를 위해 당신 앞으로 이끄나이까” 호소합니다. 인간의 체질을 아시는 하나님이 일시적인 존재인 인간에게 긍휼을 베풀어달라고 기도합니다.

2. 잠시라도 인생을 즐겁게 하소서

4-6절에 보면 더러운 데서 태어난 인간이 어떻게 깨끗할 수 있는가 반문합니다. 모든 인간은 부정하기 때문에, 그에게서 난 자 또한 깨끗할 수 없습니다. 욥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보편적 인간의 죄악성과 연약성을 들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하고 있습니다.

일시적이고 죄악될 수밖에 없는 인간을 왜 재판하느냐고 묻습니다. 인생의 날은 정해진 품꾼과 같으니 날이 마칠 때까지라도 편히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는 한계적인 인간에게 긍휼을 베풀어 편히 쉬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욥은 연약한 인간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있습니다. 욥은 품꾼같이 그의 날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일꾼으로 고용된 품꾼이 하루 해가 지나고 일을 마친 후 그 일한 삯을 받고 즐거워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를 감시하시거나 죄악으로 인해 징계치 마시고, 연약한 그를 놓아 자유케 하사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의 짧은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3. 하늘이 없어지면 인간은 소생합니다

“나무는 희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뻗어서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장정이라도 죽으면 소멸되나니 인생이 숨을 거두면 그가 어디 있느냐? 물이 바다에서 줄어들고 강물이 잦아서 마름 같이 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7-12절).”

나무는 찍혀도 싹이 나고 뿌리에서 움이 돋아납니다. 나무를 자를지라도 그 그루터기 밑줄기에서 새로운 싹이 돋아납니다. 그러나 인간은 나무와 달리 죽으면 소멸됩니다.

사람은 숨을 거두면 다시 일어나지 못합니다. 일반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용감하고 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일단 죽으면 소멸돼 버리는 연약하고 가련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나무보다 못한 존재입니다. 욥은 실지로 큰 강(예를 들어 유프라테스 강이나 티그리스강)의 지면이 상류에서 흘러 내려오는 침전물에 의해 점점 얕아지고 경우에 따라 큰 기근에 의해 마른다고 말합니다. 물이 바다에서 줄고 하수가 잦아 말라 그대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같이, 사람이 한번 죽으면 다시 깨어나지 못합니다.

하늘이 결코 없어지지 않는 것과 같이 인간이 한번 죽으면 결코 깨지 못함을 강조합니다. 하늘이 없어지지 않을 때까지는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소생하는 일이 없으나, 하나님께서 하늘을 없어지게 하시는 때에는 하나님을 믿고 그 안에서 죽은 성도들은 다시 소생할 것입니다. 시체가 썩어서 냄새가 나는 곳에서 부활의 새 몸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4. 주님의 부르심에 대답하겠나이다

“주는 나를 스올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실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규례를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모든 고난의 날 동안을 참으면서 풀려나기를 기다리겠나이다. 주께서는 나를 부르시겠고 나는 대답하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기다리시겠나이다(13-15절)”.

욥은 하나님 안에서 부활을 소망합니다. 욥은 잠시 자신을 스올에 숨겼다가, 때가 되면 기억해달라고 합니다. 욥은 현재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하나님의 진노를 지하 세계(음부)에서나마 피할 수 있고, 후에 자신에게 새로운 긍휼이 주어진다면 현재의 불행을 기꺼이 감수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음부를 부활을 잠시 기다리는 대기소로 인식합니다.

욥은 하나님의 부활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욥이 하나님의 진노가 영원한 것이 아닌 지나갈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다시 하나님 앞에 온전히 회복되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장정이라도 살지 못하지만, 자신은 하나님이 자신을 다시 살려줄 것을 기다립니다.

70인역은 “사람이 죽으면 그가 다시 살리리이다”라고 번역하여, 욥의 개인적 부활 소망을 나타낸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욥은 문자적으로 ‘나는 다가오는 나의 해방(소생)의 때까지 나의 싸우는 모든 날 동안을 기다리겠다’고 합니다. 그는 부활의 변화, 구원, 해방을 소망합니다.

욥 자신이 병사나 노예 등이 전쟁이나 고역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처럼, 그의 시련들로부터 해방되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자신을 부르시면, 자신은 대답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잘잘못의 판결을 위해 부르시고, 욥은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자신의 무죄를 변호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활의 때에 욥을 음부에서 부활케 하시기 위해 욥의 이름을 부르실 것이고 욥은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소생할 것라고 합니다.

그 날을 기다리는 것은 욥만이 아닙니다. 주님도 손으로 지으신 것을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주님도 피조물이 부활할 날을 기다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만드신 바 피조물을 갈망하시고 아끼시므로, 그것을 버려 두시지 않고 부르십니다.

욥은 얼굴이 창백한 색으로 변할 정도로 부활을 간절하게 바라거나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피조물을 다시 살릴 날을 아주 간절히 바라십니다.

5. 내 허물을 용서하소서

“그러하온데 이제 주께서 나의 걸음을 세시오니 나의 죄를 감찰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주는 내 허물을 주머니에 봉하시고 내 죄악을 싸매시나이다. 무너지는 산은 반드시 흩어지고 바위는 그 자리에서 옮겨가고 물은 돌을 닳게 하고 넘치는 물은 땅의 티끌을 씻어버리나이다. 이와 같이 주께서는 사람의 희망을 끊으시나이다(16-19절).”

그런데 지금 주님은 욥의 걸음을 세시고 죄를 감찰하십니다. 욥은 부활의 모습과 달리 현재 그렇지 못한 상황을 대조적으로 묘사합니다. 욥은 앞절들에서 고통을 피하기 위해 음부에 숨게 하시고 훗날 부활 소망 가운데서 새롭게 하여 주시기를 바랐지만, 현재에는 하나님이 계속 그의 죄를 살피시며 징계하시고 소망을 잃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허물과 죄악을 없애거나 잊어버리시지 않고 주머니에 봉하시고 싸매셨다가, 심판 때에 그것들을 판결하시려 하십니다. 왜 주님께서 산이나 바위가 옮겨지고 물이 사라지듯이 사람의 희망을 끊으시냐고 반문합니다.

산이 흩어지고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겨지듯, 그토록 견고한 것들도 하나님의 권능 앞에서는 티끌같이 흩어집니다. 욥 자신의 소망이 하나님의 징계하심으로 견디지 못하고 온전히 사라지고 있습니다(19절). 욥은 부활의 날을 소망하며 지금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죄 사함을 받고 부활하기를 소망합니다.

오요한
▲오요한 목사.
6. 조금 이 땅에 더 살게 하소서

“주께서 사람을 영원히 이기셔서 떠나게 하시며 그의 얼굴 빛을 변하게 하시고 쫓아보내시오니 그의 아들들이 존귀하게 되어도 그가 알지 못하며 그들이 비천하게 되어도 그가 깨닫지 못하나이다. 다만 그의 살이 아프고 그의 영혼이 애곡할 뿐이니이다(20-22절).”

주님께서 사람을 끝까지 억누르시면, 사람들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주님 앞에서 쫓겨날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로 말미암아 멸망에 처할 수 밖에 없는 처지를 암시합니다.

사람이 죽을 때 그의 얼굴에 생명의 빛이 없어지고 창백해집니다. 사람이 죽으면 자녀들이 영광을 당하는지 욕을 당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일도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다만 고통 가운데 애곡할 뿐입니다.

사람이 죽은 후에 육체가 썩으며 그 영혼이 광명이 없고 음울한 음부에서 거하는 슬픔을 당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욥을 이기셔서 죽음을 향하여 가게하고 있다고 합니다. 욥은 부활을 소망하면서 현재에서 조금 더 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욥은 부활신앙으로 현재의 고통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바라볼 때 현재의 고통을 이길 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가진 사람은 현재를 더 열심히 살아갑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는 현재를 더 힘 있게 살아갑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예수님이 부르시면 기쁨으로 “예!” 하고 달려나갈 것입니다. 아멘!

오요한 목사(천안 UBF, <오요한 목자의 로마서 강해> 저자)

<저작권자 ⓒ '종교 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