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칼럼] 당신은 화평의 사자입니까?

입력 : 2018.11.02 19:50

당신은 화평케 하는 일로 하나님 아들 됨을 나타냅니까?

이경섭
▲이경섭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는 흔히 곡해되는 성경 말씀 중 하나입니다.

이 말씀을 읽는 이들은 대개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이라는 ‘성 프란시스의 기도문’을 떠올리며, 사람 사이의 화평을 도모하라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사람 사이의 화평 이전에, 먼저 구원과 멸망을 가늠하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에 대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화목’이라는 단어가 중시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렸던 무죄한 인간은 그의 죄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롬 510) 그의 진노에 스러졌는데, 그리스도의 속죄가 그의 진노를 풀어드려 둘 사이를 화목시켰습니다.

당신의 ‘진노’에 스러지는 인간들을 차마보지 못하시는 성부의 ‘고통’을 풀어드리려고 성자가 친히 화목제물이 되사 둘 사이를 화목시켰습니다. 그리스도가 여러 직임을 갖고 있지만 핵심 되는 것이 ‘화목제물’입니다(롬 3:25, a propitiation through faith in his blood).

택자에 대한 하나님 사랑의 요지(要旨)도 독생자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보내신 것입니다(요일 4:10, the propitiation for our sins).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려야 ‘화목’할 수 있다는 말은 환언하면, ‘속죄’가 이루어져야 만 화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요한일서 2장 2절에서 ‘화목(the propitiation for our sins, KJV)’과 ‘속죄(the atoning sacrifice for our sins, NIV)’를 교호적(交互的)으로 사용하고 있음은 ‘화목’은 ‘속죄’로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의미 역시, ‘죄’로 하나님과 ‘원수’되어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던 인간이 성자 그리스도의 ‘속죄’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 결과입니다.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 5:9-10).”

◈화평케 하므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음

이는 ‘화평케 하므로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을 획득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갈 3:26)"라는 말씀이 부정돼야 합니다.

그것의 올바른 의미는 성도가 화평케 하는 일을 하므로 하나님의 아들답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가 행한 ‘화목’의 일을 우리가 본받아 행할 때, 하나님의 아들다워지는 것입니다.

비슷한 말씀이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마 5:44-45)”입니다.

이 역시 원수를 사랑해야 하나님아들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그렇게 하므로 하나님 아들 됨직하다(That ye may be the children of your Father- KJV)’ 혹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 된 도리이다(현대인의 성경)’라는 뜻입니다.

성자(聖者) 그리스도는 죄인을 향한 성부(聖父)의 ‘진노’와 ‘긍휼’을 풀어드려 인간과 하나님을 화목시킴으로서, 효성스런 하나님 아들임을 나타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도 참된 효자는 아버지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알며, 그 아버지의 고통을 해소시켜 드리려고 애를 씁니다. 마찬가지로 성자는 죄인에 대한 성부의 진노와 긍휼을 풀어드림으로서 아버지에 대한 효성을 나타냈습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장자(長子)는 묵묵히 아버지의 일을 도와 헌신했지만, 그를 진정한 효자라 할 수 없음은 집나간 동생으로 인해 고통하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고통에 대한 그의 무관심은 귀향한 탕자 아우를 지극 환대(歡待)하는 아버지에 대한 그의 분노와 질투에서 더 분명히 나타납니다(눅 15:28-30). 성자(聖者) 그리스도가 죄인에 대한 성부(聖父)의 ‘분노’와 ‘긍휼’을 알고, 그것을 풀어드리기 위해 자원하여 십자가 죽음을 당하신 것과는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오늘도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성부가 죄인들에게 쏟으시는 ‘진노’와 ‘긍휼’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이 친히 우리에게 화목케 하는 말씀을 부탁하시기까지 하셨는데(고후 5:19), 하나님의 ‘진노’와 ‘긍휼’을 풀어드리는 일을 도외시하는 것은 잔인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화평케 하는 자는 그것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복’을 얻습니다. ‘하나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복’은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복’과는 다른 차원의 복입니다. 후자는 “하나님 아들 됨의 복”이라면, 전자는 “하나님 아들다움의 복”입니다.

‘하나님 아들’이 ‘하나님 아들답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택정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9).”

◈화목케 하는 방편은 복음

성도가 화평케 하는 일은 그리스도께서 완성해 놓으신 구속(롬 5:10)의 복음을 죄인들로 하여금 믿게 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함으로서입니다. 복음을 ‘화평의 복음’이라고 명시한 것도(행 10:36) 이 때문입니다. 이 화평의 복음을 통해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을 그와 화목시킵니다.

죄인이 화평의 복음을 듣고 믿을 때 하나님과의 화목이 이루어집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롬 3:25)”,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죄인들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내 대신 죄 값을 지불했다’는 복음을 믿을 때, 그리스도의 의(義)가 입혀져 하나님과 화목하게 됩니다. 따라서 죄인이 하나님과 화목하는 데는 무엇보다 복음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고(롬 10:17)”,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한다(행 15:7)“고 했습니다.

다음으로 모두(冒頭)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화평케 하는 일은 ‘하나님과 사람’을 위한 일 만이 아닌, ‘사람과 사람’을 위한 일임을 말하고자 합니다. 이는 죄가 하나님과만 원수 되게 한 것이 아니라 사람끼리도 원수되게 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니, 그 둘 사이도 원수가 됐습니다.

상징적인 한 예가 아담이 자기의 죄책을 아내 탓으로 돌린 것입니다(창 3:12). 이는 아내에게 자신의 죄책을 떠넘겨 그녀를 죽음에 넘기려는 적대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가 정녕 아내와 한 몸을 이룬 부부였다면 아내의 죄책을 마땅히 자기에게로 돌렸어야 했습니다.

이로 보건대, 인간이 죄로 하나님과 불화하면 사람끼리도 불화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핏줄을 나눈 가족일지라도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가족 구성원은 믿는 가족에게 원수가 됩니다. 이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이기도 합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 10:34-36).” 따라서 가족끼리 화목하려면 먼저 불신 가족을 하나님과 화목시켜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화목 없인 가족간의 화목도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그랬듯이, 사람 사이의 화평도 그리스도 복음으로만 됩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 2:13).”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의 상종을 피하려고, 예컨대 이방인 동리 사마리아를 통과하지 않으려고 근거리를 멀리 삥 둘러 돌아갔는데,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하나(갈 3:28)”가 됐습니다. 죄로 멀어진 인간들이 복음으로 가까와졌습니다.

이처럼 사람들 간의 화평도 친교나 사해동포주의(四海同胞主義, cosmopolitanism)에서가 아니라, 오직 복음으로 그들을 하나님과 화목시킴으로서입니다. 그리스도 복음 없인 하나님과의 ’화목‘도 사람들 간의 ’화평‘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사람들을 복음으로 화평케 하는 이 일을 하도록 부름 받았으며, 이 일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복‘을 얻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복을 누리고 계십니까?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대표, byterian@hanmail.net)
저·역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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