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이승훈
▲남강 이승훈 선생.
그런데 언제부턴가 “남강이 변했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사실 좀 달라졌다. 그는 외출할 때는 한복 대신 양복을 입었다. 이전엔 하지 않던 관청 출입도 잦아졌다.

양복을 입고 관청에 드나드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남강이 일본에 매수되었다고 수군댔다.

하지만 남강은 주변의 말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오산학교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관청에도 드나들어야 하고 관리들도 만나야 했다.

‘나의 지조가 중요한가, 오산이 중요한가?’

그는 깊은 번민에 빠져 한숨을 내쉬었다. 허연 머리칼이 바람결에 흩날렸다.

‘언젠가 결국 하나님의 진리와 정의는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악한 일본은 망할 것이다. 그러니 학생들이 끝까지 교육을 받고 새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그는 고향 용동에 이상촌(理想村)을 만들려고 했다. 일제와 친일파 탐관오리들의 압제에서 벗어나 우리 백성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그 중심에 오산학교가 있었다. 전국의 총명한 청소년들이 오산에 와서 지혜와 마음을 갈고 닦은 후 저마다 고향땅으로 내려가 이상촌을 세우면 결국 조선 천지가 건강한 유토피아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때면 우리 힘으로 압제자들을 몰아낼 수 있을 터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잠시 오해를 받고 욕을 먹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오산학교를 발전시켜 미래의 동량을 키우는 것은 여생의 소망이었다.

남강은 날마다 교사와 학생들과 함께 의논을 거듭했다. 옥중에서 쇠약해진 몸도 돌보지 못한 채 평안도 각지를 돌아다니며 호소를 했다. 출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강에게 그런 강행군은 무리였다.

결국 결과를 못 본 채 쇠약해진 몸을 요양하기 위해 부산 해운대로 내려갔다.

남강은 가만히 누워 있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는 진주, 마산, 울산 등지에 살고 있는 졸업생들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며 격려하곤 했다. 요양보다는 제자들과의 만남이 더 큰 보람이자 기쁨이었다.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한 남강은 이듬해 초 일본 시찰을 하게 됐다. 의형제를 맺은 월남 이상재와 함께였다.

월남 역시 일본 경찰에 끌려가 감옥에서 고생한 적이 있었다. 일찍이 그는 독립협회 사건으로 구금되었다가 갖은 치욕을 당한 뒤 석방되었다. 그 후 독립협회가 일본의 탄압으로 해산되자 이상재는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며 조정에 뿌리박은 기생충 같은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를 폭로하였다.

그 때문에 대신들의 미움을 받은 그는 혁명을 모의했다는 이른바 개혁당(改革黨) 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구금되었다. 3년에 걸쳐 감옥에서 복역하는 동안 그는 성경을 읽고 느낀 바가 있어 기독교에 입교했다.

월남은 유머를 잘 구사했다. 어느 날 매국노 이완용이 창설한 조선미술협회 발대식에서였다. 이토 히로부미와 송병준이 참석한 가운데 월남은 말했다.

“대감들은 동경에 가서 사시는 게 어떨까 싶소. 대감들은 나라를 망치는 데는 천재이니 동경으로 이사를 가면 일본도 망하게 될테니 말이오.”

낯두꺼운 그들도 아마 속으로는 움찔했을 터였다.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서산마루에는 붉디붉은 노을이 타고 있었다. 일본을 이기려면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오사카에 도착한 뒤 기차로 도쿄로 갔다.

“일본엔 눈이 참 많이 내리는군요.”

남강의 말에 월남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음, 마치 설국 같군.”

“아름다운 백설 속에서 죄악을 저지르는 자들….”

김영권 남강 이승훈
▲김영권 작가(점묘화).
“우리는 일본을 냉철히 객관적으로 연구해 봐야 해.”

“그렇지요.”

남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영권 작가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작가와 비평>지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成功狂人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어린이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 <지푸라기 인간>과 청소년 소설 <보리울의 달>, <퀴리부인: 사랑스러운 천재>가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보통 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

*이 작품은 한국고등신학연구원(KIATS)의 새로운 자료 발굴과 연구 성과에 도움 받았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