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최재건 박사(하버드대학교 Ph. D. 연세대학교 교수 역임)의 논문 '삼일(3.1)정신과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을 매주 한 차례 연재합니다.

3.1운동 이방인
ⓒ한민족평화나눔재단
1. 서론

3.1운동은 한국 역사에서 지도층과 일반 백성이 함께 일으킨 처음 혁명적 사건이었다. 수천 년 왕국으로 이어오던 한국 역사에서 처음 세워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건국도 혁명적 사건이었다. 이처럼 비록 일각에서 혁명이라고 부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의 건국의 과정에 대해 살펴보고 나아가서 3.1정신은 무엇이고 대한민국건국 정신은 무엇인가? 삼일운동의 정신과 대한민국의 건국 정신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삼일정신과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이란 주어진 과제의 서술 과정이다.

3.1운동에서 다른 종교의 역할도 컸지만 "기독교신앙 없이는 3.1운동이 없다"는 함석헌의 입장을 비롯하여 기독교회가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3.1운동은 일어날 수도 없었다. 이 항일 시위의 핵심과 다이내믹스는 기독교였다. 당시에 한국기독교회는 그 역사가 35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3.1독립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민족대표 33인 중 16인과 비서명자 48인중에도 24인이 기독교인이었다. 이 운동의 전국적인 확산도 교회들과 교회가 세운학교들 중심이었다. 교회가 당한 피해도 컸다. 그런 점에서 3.1운동은 한국기독교 역사상의 대표적 민족독립운동이요, 신앙운동이었다고 평가된다.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거족적 독립운동은 자주 독립, 민주 평화를 내세우며 지속적 항일운동으로 이어졌다. 나아가 3.1정신으로 승화되어 1919년 4월 13일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탄생의 정신적 기초가 되었다. 나아가서 해방되어 1948년에 건국된 대한민국도 3.1정신 위에 건국되었다.
 
해방 후 한국교회는 미군정과 대한민국의 건국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해방정국의 3거두들을 비롯하여 이윤영, 장덕수, 최순주, 김도연, 윤치영, 윤보선 등 많은 기독교인들이 개인적으로 직접 정치 일선에 참여도 하였고 사회단체를 구성하여 활동도 하였다. 목회자들은 설교 등을 통해 노력하였다. 한국교회는 대개 3월 1일에 가까운 날에 기념예배를 통해  3.1 운동 기념과 삼일정신 고양에도 앞장섰다.  

최재건
▲최재건 박사
본고는 먼저 3.1운동의 전개과정과 그 피해상황 및 교회의 역할을 개략적으로 살펴보고 삼일정신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려고 한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건국정신과의 관계, 그리고 기독교와의 관계 및 영향을 순차적으로 살필 것이다. 취급하는 범위는 시기적으로는 3.1운동 전후와 대한민국 건국 전후가 될 것이다.

3.1운동에 관한 연구는 많이 축적되었다. 한국교회와의 관련성 문제도 상당하게 연구되었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학계와 기독교를 비롯하여 관련 기관들이 학술 심포지엄, 세미나, 출판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3.1운동에 대한 해석과 연구경향도 '종교'보다는 '민중'에 무게를 둔 "민중주의 역사관"으로 달라졌다. 기독교계의 3.1운동에 대한 견해도 진보와 보수의 입장으로 나누어졌다. 대한민국의 건국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척되고 있다. 삼일정신은 대한민국 건국정신으로 이어져 민족혼이 되었다. 삼일운동과 대한민국의 건국은 한국 근현대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한국교회사에서도 가장 중대한 사건이 되었다. 따라서 한국의 기독교가 3.1정신과 대한민국 건국정신에 어떠한 역할과 영향을 미쳤는가를 연계하여 살펴보고 나아가서 그때의 정신과 그 정신의 계승하기 위한 한국교회의 진로를 모색하는 것이 본고의 기착지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