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기 때문에’ 겪는 절대적 고독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입력 : 2018.10.11 17:23

[5분만 읽는 설교 25] 참된 믿음의 고백 (눅 9:18-21)

모자이크 종교 믿음 타일 아트 교회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베드로 바울 교회 앵무새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 의미심장한 주님의 질문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고 명쾌하게 답변해 칭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질문과 베드로의 답변이 참된 믿음의 고백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는 주님을 따르는 우리가 평생 자문자답하면서 살아가야할 중요한 실존적 질문이자 신앙고백적인 답변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우리는 ‘참된 믿음의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묵상하고자 합니다.

1. 주님은 나의 삶의 기반임을 고백하라

오늘날 기술문명의 발전은 우리에게 생활의 편리함과 번영의 안락함을 누리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기술문명은 개인의 삶을 기술적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인류의 번영과 진보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게 만들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생활은 더 편리해지고 있습니다만, 정신은 더 어려운 지경에 빠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종 살인 사건이 사회를 시끄럽게 하고, 더 끔찍한 사건들이 터지고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개인은 점차 고독한 자리에 홀로 서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불안 때문에 미래의 안전을 담보하러 여러 가지 보험을 들지만, 사람의 마음은 점점 불안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혼자서 자기를 책임져야 하고, 혼자서 결정을 내려야 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위험에 빠뜨릴지로 모를 위험한 지경에 내몰리는 것 같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는 ‘주님이 나의 삶의 기반’임을 고백하기로 합시다. 그러면 놀랍게도 그 진리의 터 위에 굳게 서는 확고함으로 인하여, 마음이 든든해지는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2. 주님은 내 생명의 원천임을 고백하라

우리는 때로 끔찍한 살인사건으로 인해 우리에게는 생명에 대한 불안이 퍼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죽은 자에 대한 애도의 뜻이 들어있지만, 한편으로는 생명에 대한 위험이자 불안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삶이란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모르면서, 덮어놓고 ‘삶은 행복해야 된다’고만 내세우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러니까 삶을 위해, 그리고 행복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으면서, 행복의 중요성만 설파하는 꼴입니다.

삶에 대해, 그리고 행복에 대해 끝내 한 마디로 답변하기는 어려울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생명의 원천이 주님이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나의 생명의 원천입니다.”하고 고백하고 나면 놀라운 해방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이 나의 생명의 원천입니다” 하고 고백하면, 우리를 짓누르는 사회적 의무와 압력, 자신의 인격과 생활, 그리고 미래를 위한 계획 등이 통합되는 신비한 마음의 평강을 체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이 내 삶의 이유임을 고백하라


우리는 살아가면서 삶의 기력을 잃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아마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가 희미해진 때문일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런 경우 그대로 삶의 목표가 되므로, 살아야 하는 목표가 분명해질수록 우리는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울증 환자들이 맥이 빠지는 증상은 삶의 목표가 흐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이런 삶에서 성별의 역할, 노동의 의미, 가족과 인간관계도 넘어서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홀로 서는 외로움을 감당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한 세상을 살면서 어려운 일이 많이 있지만, 가장 큰 어려움을 꼽으라면 무엇을 꼽으시겠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외로움, 즉 고독을 꼽고 싶습니다. 고독이 너무나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고독이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는 절대적 고독이요, 다른 하나는 상대적 고독입니다. 절대적 고독은 존재에 대한 고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고독합니다. 이와 달리 상대적 고독은 관계에 대한 고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사람이 내 옆을 없거나 떠나가서 외로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흔히 절대적 고독인 존재에 대한 고독을 상대적 고독인 관계 고독으로 혼동하곤 합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매우 중요한 사람이 옆에 있어도 인간은 외롭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금슬이 좋은 부부라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고독해집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그러면 이런 고독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있습니다. 관계에 대한 고독은 인간관계를 개선하면 됩니다. 물론 절대적 고독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절대적 고독은 오직 주님을 가까이 하고 의지할 때 해소됩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셔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주님을 더 가까이 하여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모든 것, 내 삶의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나의 사랑이 흐르게 하시고, 주님의 은혜로 나를 가치 있게 만드시며, 주님의 그 무한하신 능력으로 세상과 나를 초월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렇게 고백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가 알고 보면 많이 갖지 못하고, 덜 성공해서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해서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가는 인생의 길에 주님이 나의 삶의 기반임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이 내 생명의 원천임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그 어떤 경우에도 주님을 내 삶의 이유로 고백하는 참된 믿음의 사람에게 반드시 복을 내리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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