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간혹 TV에서 아프리카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참 눈물이 납니다. 어쩜 저렇게 어려울까…. ARS을 눌러 후원을 누릅니다.

우리 학교가 개교하면서 많은 분들이 참 귀한 화분을 주셨습니다. 그 뒤 꽃을 살리는 재주가 없어 그런지, 아무리 신경을 써도 많은 꽃들이 죽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가장 저렴한 화분 하나를 돌담 위에 올려두었고, 그 꽃이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문득 마음으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가장 평범한 네가 혼자였구나. 고맙다. 혼자 버텨줘서.”

2. 달꿈예술학교는 세상의 기준과 방법대로 평가받아 꿈을 잃어버린 학생들에게, 잃어버린 꿈을 찾고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것이 사명인 학교입니다. 뮤지컬 선생님 네 분. 음악 선생님, 미술 선생님, 역사 선생님, 그리고 영성 교육부터 해외 아웃리치와 함께 각종 문화예술 공연을 볼 기회도 열려 있습니다.

학교가 필요하다고 지지하는 사람들 100명이 모였습니다. 지하에 뮤지컬 연습실과 1층 북카페, 2층에 공부방과 쉼터까지 예쁜 공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학교의 학생은 한 명입니다.

유한승
▲달꿈예술학교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유한승 목사.
3. 한 명을 위해 생겨난 학교. 그래서 한 명을 바라봐야 하는 학교. 그것이 달꿈예술학교의 사명입니다.

아이는 예쁘고 평범한 아이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이입니다. 단지 어른들의 잘못으로 꿈을 짓밟았다는 것. 환경이 조금 어렵다는 것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사람들은 오히려 이러한 아이들에게 무관심합니다. 아프리카와, 고아원, 기타 등등 다양한 곳에 시선이 머물지만, 그래서 혼자된 아이가 참 많습니다. 곳곳에 홀로 피어 있습니다.

이러한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학교 역시 홀로서야 합니다. 그래서 학교가 운영되기 위해 여러 가지가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정신입니다. 한 명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셨던 예수님의 정신이 없었다면, 학교의 존재 목적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4. 홍보가 필요하다는 것. 그것이 절실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홍보하기가 힘이 듭니다. 홍보에는 재주가 없습니다.

막상 여기저기 알려줘도 “와 신기하네요”, “대단하네요” 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기업이나 스폰서들도 한명을 위해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마음을 갖기는 힘들어 합니다. 드러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 명도 아니고, 아프리카도 아니고, 고아원이나 불치병처럼 TV에서 흔히 보는 아이도 아닌, 그냥 평범한 아이 한 명의 꿈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려 하는 학교에 관심 가져주는 곳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5. 그래서 카페를 운영합니다. 쿰카페입니다. 쿰카페는 그래서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학생뿐 아니라 청년에게, 지역 주민들에게 학교도 알리고 소통의 도구로 삼고자 봉사자들이 모였습니다.

매일 카페지기들이 모여, 하루에 한명씩 카페를 운영합니다. 월세 없이, 봉사자들의 페이 없이…, 대신 좋은 재료로 맛있는 음료를 제공하고자 만들어진 카페입니다.

외부의 도움이 많지 않다 해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길가 위에 홀로 핀 들꽃처럼 살아남아,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는 카페가 되고자 함입니다.

6. 목사인 저도 카페지기를 담당합니다. 함께 봉사하는 분들에게 혼자만 있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사라 해서 사역을 시키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 함께 그 곳에 서있는 것. 그것이 목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이 많지는 않지만, 아침일찍 카페 오픈은 제 몫입니다. 봉사자들이 편하게 와서 커피를 내릴 수 있게 세팅을 하고 시음을 한 뒤, 봉사자들이 오는 오후가 되면 인계합니다. 좋은 재료를 계속해서 선별하고 테스트 하는 것도 저의 몫입니다.

메뉴가 늘어나고 재료가 올 때마다, 카페지기들이 “또” 라고 할 만큼 계속 재료를 바꾸며 테스트합니다.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이 단 한 잔의 음료를 마셔도 ‘정성과 사랑’을 느끼게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이 공간의 존재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7. 하지만 커피를 아무리 좋은 재료로 쓴다 해도, 도구보다 중요한 것은 장인입니다. 흙이라는 재료로 위대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장인이셨기 때문인 것처럼, 장인은 도구 탓을 하지 않는 것처럼, 더 맛있는 커피를 내리기 위해 직접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목사가 굳이 커피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 6일을 일하신 것처럼, 제가 먼저 더 열심히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배우지도 않고 이곳을 대충 섬긴다면, 함께 섬기는 분들 역시 그와 같은 마음을 갖게 되기 때문에, 먼저 살아내야 합니다.

8. 처음에 이곳저곳 문의를 했습니다. 놀랍게도 문의하는 모든 곳이 다 “휠체어로 배울 수 없습니다”라고 거절당했습니다. 휠체어를 평생 타고 살아왔던 제게도,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이미 한국은 커피가 대중문화의 주류가 되었음에도, 휠체어를 타고 커피를 배울 수 없다니. 단지 앉아있는 것 뿐인데 말입니다.

9. 몇몇 복지관과 큰 커피숍에 ‘장애인 바리스타 교육’이 있다는 것을 알고 연락했습니다. 대부분이 시각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휠체어 장애인도 괜찮겠냐고 했더니 안 된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휠체어로 배운 사람도 없고, 그런 시스템도 전혀 되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너무 소수’ 라는 것입니다.

10.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는 휠체어 높이에 맞는 책상이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학원에서는 보행하는 높이에 맞춘 책상에서 하기 때문에, 휠체어에 맞는 높이의 데스크에 머신을 놓으면 되는 문제입니다.

쿰 카페 달꿈예술학교
▲유한승 목사가 카페에서 메시지를 전하는 모습.
11. 그런데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첫째, 어차피 휠체어를 타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지 않으니 휠체어를 탄 분들이 배우기 전 포기하게 됩니다.

둘째, 그래서 수요가 거의 없으니 셋째, 구태여 휠체어 장애인을 위해 기업이나 협회가 투자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 것입니다.

‘한 명을 위해 구태여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입니다. 휠체어를 탔다는 이유로, 그리고 소수의 사람이라는 이유로 배움의 기회가 그렇게 박탈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소수가 된 자들은 무기력해지고 나니,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기가 생겼습니다. 내가 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12. 여기저기 뒤져서 겨우 알아낸 곳이 하나 있었습니다. 일산에 한 아주 작은 복지단체에서 1년에 한 번, 휠체어를 탄 분들을 위해 바리스타 교육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신청했습니다.

올 3월 시작해서 11월 말에 끝나는 이 강의 커리큘럼을 보니, 기간도 길고 한 번에 꽤 긴 시간을 배웁니다. 여기서 배우면 시험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필기시험을 준비했습니다. 필기시험 직전, 더 큰 충격을 받는 일이 또 생겼습니다. 아무리 배워도, 휠체어를 타고서는 바리스타 시험을 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13. 커피협회에 문의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기가 막힌 답을 듣게 됩니다. 필기시험은 장애인을 위해 자리 등을 배치해 줄 수 있지만, 실기시험은 자리를 특별히 배치하기가 힘들어 휠체어로 실기시험을 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처음 학원들에게서 들었던 대답과 같았습니다. ‘실기 시험 장소에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데스크(높이가 낮은)가 없으며 준비할 계획이 없다’는 것입니다.

14. 한국커피협회에서 필기시험을 보는 날, 그 학교에만 900명이 왔습니다. 다른 학교까지 포함하면 약 1,800명이 보았겠지요. 원서료와 책 비용을 포함하면, 매달 보는 시험에만 어마어마한 금액을 가져가지만, 몇 명 안되는 휠체어 장애인을 위해 투자할 계획은 없던 것입니다.

15. 전화를 끊고 “저는 필기시험을 합격했으니 실기시험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시험을 볼 기회도 박탈당한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요구자의 숫자가 별로 되지 않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6. 기본권의 문제이며, 필기시험에 대한 편의제공이 되면서 실기시험에 대한 편의제공이 없다는 것 자체가 논리적 모순이라는 주장에, 필기시험 합격 유예기간이 2년이니 일단 기다려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물어보셨습니다. ‘혹시 일어나실 수 없나요? 조금 일어나서 보시면 가능할텐데.’ 사실 저는 목발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구태여 그렇게라도 해서 시험을 본다면,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절했습니다. 저는 휠체어로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실제 휠체어로 대부분의 생활을 하는 제가, 시험만 합격하기 위해 일어나 시험을 본다면 바리스타로 일할 때는 휠체어로 해야 하는데, 그것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휠체어를 타고 바리스타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17. 그래서 저는 올해 시험을 보려 합니다. 휠체어를 타고 말이지요. 휠체어에 앉아서 바리스타 시험 데스크에 앉으면, 처음엔 아예 머신 위에 있는 컵을 꺼내기가 힘들지도 모릅니다. 스팀을 할 때 잘 되는지 눈으로 볼 수 없으니, 소리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래서 더 시험을 볼 예정입니다. 합격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실기시험에 불합격한다 해도, 제가 직접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본 시험관들이 앞으로 이렇게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도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도록 하기 위해, 그것을 위해 어떤 부분의 보완이 필요한지 직접 제 몸으로 시연하기 위해, 그것만으로도 앞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통로가 될 수 있기에, 저는 그 자리에 가려 합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하여 감독관들에게 이야기할 생각입니다.

18. 달꿈예술학교는 사람들이 관심 없어 하는 소수의 아이를 위한 학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는 그 아이에게 꿈을 심어주고, 통로가 되어주는 학교입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간혹 말합니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지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으니까. 그런데도 홀로 버텨왔으니까. 오히려 더 감사하지.”

우리 학교의 교장으로 서 있는 동안 저는 삶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이 땅에 혼자가 된 사람, 그래서 힘이 없는 사람,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사람을 위해 먼저 돌무더기 위에 피어있는 들꽃이 되는 것입니다.

꿋꿋이 버텨야 합니다. 누군가 발견하고 자신도 들꽃이 될 때까지…. 그래서 가을 하늘 모두에게 들꽃의 아름다움을 알릴 때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한승 목사(생명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