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에 관한 10가지 철학적 성찰

인간 본성에 관한 10가지 철학적 성찰
로저 트리그 | 최용철 역 | 자작나무 | 296쪽 | 9,500원

“나는 누구인가?”,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라도 이 질문을 피해갈 수는 없다. 이 오래된 물음에 답하기 위해-누군가의 표현처럼-많은 잉크병이 엎질러졌다. 인간 본성을 주제로 한 책을 모아 놓으면 큰 도서관을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사실, 철학이나 문화인류학만 인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 문학을 포함한 예술 전체가 인간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철학의 관점을 통해 인간 본성에 관한 탐구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통찰을 가져다 줄 것이다.

본서는 서양 사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열 명의 사상가들이 ‘인간 본성(human nature)’에 관해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다루고 있다. 열 명의 사상가 중에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퀴나스, 홉스, 흄이 들어있고, 니체, 마르크스, 프로이드, 비트겐슈타인의 이름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성의 몰락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저자는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심지어 칸트조차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그 영향력 때문에 다윈의 이름이 명단 속에 들어 있다. 저자는 여러 사상가들의 주장을 간결하게 그리고 함축적으로 소개하면서 그들에 대한 최근의 비판적 논의까지도 언급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 모두는 “명백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유사성이 있다. 우리는 동일한 충동을 공유하며, 우리 본성의 구조도 동일하다. … 어디에 살든 우리 모두는 같은 세계에 살고 있으며, 동일한 실재와 대면하고 있다. 진리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본서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들을 발견하거나 새롭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저자는 인간과 사회(공동체)에 관한 서로 다른 생각을 소개하고 있다.

플라톤은 좋은 국가는 좋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한 국가의 특성은 개인들로부터 나온다. 국가의 번영은 각 구성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182, 185, 187쪽). 따라서 플라톤은 개인의 도덕적 성품과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본성상 ‘정치적 동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를 가장 먼저 세웠던 사람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공로자”라고 말한다(198쪽). 그에 의하면, 인간은 이성을 따를 때만 행복해질 수 있다. 그리고 공동체는 인간 본성의 실현을 돕는다.

이런 의미에서 규범이나 관습은 우리의 본성에 위배되기보다는 우리의 본성을 완성시킨다. “개개의 국민들은 훈련과 습관을 통해 같은 내용을 학습해야 한다. … 우리는 덕 있는 행위를 하는 데 익숙해질 때에만 덕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에 의하면 국가는 우리의 본성을 실현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국가의 목적은 도덕적이어야 한다(210-211쪽).

한편 <리바이어던>을 쓴 홉스(T. Hobbes)에 의하면, 정치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먼저 인간을 이해해야 한다. “국가의 속성을 알려면 먼저 인간의 경향, 특성, 생활양식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20쪽).”

그의 ‘기계론적 유물론’은 인간을 살아있는 기계로 보았다. 홉스는 사회를 “이기적 인간들의 합리적 계약의 산물”로 생각했다. 자연상태의 고통과 위험을 피하기 위해 사회를 만들고,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게 되었다는 소극적 관점이다. 이러한 사회철학은 인간이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개체에 불과하다는 인간관에서 직접적으로 비롯된다(39쪽).”

둘째, 인간과 언어능력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들이 언제나 도달하는 중요한 사실, 즉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우리만이 언어능력이 있다는 핵심적인 사실에 주목한다”. 이러한 언어능력은 우리로 하여금 도덕에 관하여, 정의와 불의에 관하여, 선악에 관하여 말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이러한 능력은 가족이든 국가이든, 공동체의 종류에 관계없이 중요하다(196-197쪽).

언어능력과 관련하여 이야기할 때,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인간 본성이 언어에 의해 창조된다고 보았다. “언어의 한계는 곧 세계의 한계이다.” 그는 구체적으로 언어가 사용되는 여러 방식을 탐구하였다.

그에 의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유일한 수단은 언어적 수단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아는 언어의 산물로 이해될 수 있다(258쪽).” 그에 따르면, 진정한 의미에서 사회가 인간의 본질을 규정한다. 왜냐하면 언어가 학습되는 곳은 다름 아니 사회이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신의 존재 가능성에 관한 추상적 논증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종교적 언어를 무의미한 것으로 배제하지는 않았다. “그는 다만 종교적 언어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알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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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ron Benson on Unsplash
셋째, 다윈이 끼친 영향이 매우 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니체의 경우를 보자. 그는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를 문제삼은 슈트라우스의 악명 높은 저작들을 읽고서, 유년 시절의 신앙에서 벗어나 맹렬한 무신론자가 되었다. 그는 이 세계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텍스트’로 보려고 했다. 그는 말하기를 “엄밀히 말해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해석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니체는 다윈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인간 기원에 관한 진화론이 자신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음을 알고 있었다. 니체는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였다(101쪽).

칼 마르크스도 다윈의 영향을 받았다. 마르크스는 다윈과 동시대인이었다. 비록 그에게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독일철학이지만, 그는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종의 기원>을 언급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다윈의 저서는 매우 중요하며, 나에게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계급투쟁의 자연과학적 근거를 제공한다”고 했다. 마르크스는 자연도태라는 다윈주의자의 개념을 역사적 변화에 대한 비유로 사용했다. 그러나 그는 다윈이 인간 사회의 변화에 대해 어떤 직접적인 설명을 제시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119쪽).

1883년 마르크스가 사망하자, 엥겔스는 추도사에서 마르크스의 업적을 다윈과 비교했다. 다윈은 생물체의 본성의 발전법칙을 발견했지만, 마르크스는 인간 역사의 발전법칙을 발견했다고 엥겔스는 말했다.

다윈의 저작이 끼친 영향을 볼 때, 우리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로버트 다운즈는 <역사를 움직인 책들> 15권 중에 다윈의 <종의 기원>을 포함시켰다. 그는 ‘머리말’에서 책의 힘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서적이 … 때로는 좋게, 때로는 나쁘게, 흔히 사태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버릴 수 있는 생동적이고 활력찬 것이라는 확증이 전 역사(全歷史)를 통해 많이 쌓여 왔다.” 그는 ‘서적이 지닌 엄청난 힘’을 증거하려고 그 책을 썼다.

끝으로, 본서는 ‘자유의지와 결정론’, ‘정신과 육체의 관계’ 등과 같은 문제들도 폭넓게 다루고 있다. 특히 저자는 이성이 어떻게 영광스러운 위치를 획득했다가 점차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그는 이성 능력의 ‘명백한 오류 가능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본서를 끝맺고 있다.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은 우리가 영위하는 삶의 방식을 지배한다. … 인간 본성에 관한 사상들이야말로 가장 많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상이다.”

한 마디로 본서는 독자로 하여금 인간 본성에 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 줄뿐 아니라, 바른 인간관의 중요성 및 이성 능력의 한계를 확인시켜 준다. 성경적 인간 이해와 견주어 가며 읽는다면 유익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 로저 트리그(Roser Trigg)는 옥스포드 세인트크로스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고통과 정서>(1970) 등 다수의 책을 썼다.

송광택 목사(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