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욥기 10장 강해

요절: 주께서 자주자주 증거하는 자를 바꾸어 나를 치시며 나를 향하여 진노를 더하시니 군대가 번갈아서 치는 것 같으니이다 (17절)

빌닷은 하나님의 공의에서 볼 때 욥이 고난을 받고 있으므로, 욥은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욥이 이런 빌닷의 말을 듣고 공의로운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중재자를 찾습니다. 그러나 중재자가 없는 욥은 하나님에 대해 집단 폭행자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실에 기초하여 하나님을 보지 말고 사랑의 하나님에 기초하여 현실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현실을 바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1. 욥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한다

1-2절에 보면 욥은 살기에 곤비하다고 솔직하게 불평하고 괴로움을 토로합니다. 욥은 하나님께 자신의 암울한 심경을 반복적으로 표현합니다. 욥은 산다는 것이 이렇게 괴로우니, 이제 원통함을 참지 않고 하나님께 다 털어놓고, 내 영혼의 괴로움을 다 말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정죄하지 마시고 무슨 까닭으로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알게 해달라고 합니다.

욥은 하나님이 무슨 일로 나 같은 자와 다투시는지 알려 달라고 합니다. 욥은 왜 하나님이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지 알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우리는 고난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사람에게서 시선을 하나님께 돌려 솔직하게 자신의 고통을 토로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은 학대하시는 분이 아니다

3-6절에 보면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이 몸은 학대하고 멸시하시면서도 악인이 세운 계획은 잘만 되게 하시니, 그것이 주님께 무슨 유익이라도 되느냐고 묻습니다. 욥은 자신을 하나님께서 수고로이 만드신 작품이라고 말함으로서 하나님과 자신의 특별한 관계를 나타냅니다.

욥은 하나님이 특별한 자신을 왜 학대하시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을 학대하지 않았습니다. 욥을 존중히 여기고 높게 보셨습니다. 욥을 사랑하고 자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통받는 것을 학대받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욥은 주님의 눈이 살과 피를 가진 악인의 눈이 되느냐고 묻습니다. 주의 눈이 죄악된 육신의 눈이냐고 묻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왜 자신에게 고통을 주느냐고 묻습니다. 욥은 주께서도 매사를 악인이 보듯 보시느냐고 묻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어찌하여 기어이 내 허물을 찾아내시느냐고 묻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욥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을, 욥의 죄를 찾아내는 것으로 오해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의 죄를 찾고자 하지 않으십니다. 욥이 아무것도 없고 고통하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순수하게 의지하는 지를 보고 계십니다. 율법의 세계가 아닌 은혜의 세계를 가르쳐주고자 합니다. 선을 행한 일이 없이 복을 받는 것도 은혜이지만, 악을 행한 것 없이 고난을 받는 것도 은혜입니다.

3. 욥은 주님의 치료를 기대한다

7-9절에 보면 욥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고백합니다. 그는 주님이 자신의 선을 안다고 고백합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서 누구보다 최선의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기에, 현재 당하고 있는 고통을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욥은 주님이 주신 환난에서 사람이 자신을 벗어나게 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을 환난에서 벗어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환난에서 벗어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만드시고 이제는 마음을 바꾸어 멸하시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자신을 멸하시는 분으로 말합니다. 하나님이 왜 자신을 창조하시고 고통스럽게 하느냐고 질문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기억해 달라고도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흙으로 지으셨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죽이려 하느냐고 묻습니다. 욥은 질그룻처럼 연약한 자신을 고쳐달라고 기도합니다.

4. 현실을 기초로 주님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10-15절에 보면 주님께서 욥의 아버지에게 힘을 주셔서 자신을 낳게 하시고, 어머니가 자신을 품에 안고 젖을 물리게 하셨습니다. 주께서 살과 가죽으로 그를 입히시며, 뼈와 근육을 엮어서, 그의 몸을 만드셨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에게 생명과 사랑을 주시고, 자신을 돌보셔서, 자신의 숨결까지 지켜 주셨습니다.

욥은 자신의 전생애를 인도해 오신 주의 계속적인 배려를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자신에게 고통을 주셨는지 질문합니다. 욥은 자신의 고통을 기초로 하나님에 대해 생각합니다.

욥에게 하나님은 죄악을 사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자신의 죄를 마음에 품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자도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조그마한 죄라도 지켜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매우 세부적이고 사소한 죄까지도 묵과되지 않고 정죄한다고 단언합니다.

욥은 이러한 언급을 통해 자신의 무죄함을 간접적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롭지만 죄를 또한 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욥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욥이 현재 처해 있는 암담한 상황이 자신의 논리로서는 이해할 길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 굴욕을 주시는 분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눈에 보이는 현상을 기초로 하나님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이신 십자가의 사랑과 부활의 영광을 기초로 생각해야 합니다.

5. 하나님은 집단폭행자가 아니다

“내가 머리를 높이 들면 주께서 젊은 사자처럼 나를 사냥하시며 내게 주의 놀라움을 다시 나타내시나이다. 주께서 자주 자주 증거하는 자를 바꾸어 나를 치시며 나를 향하여 진노를 더하시니 군대가 번갈아서 치는 것 같으니이다(16-17절).”

욥에게 하나님은 젊은 사자처럼 인간을 사냥하시는 분이십니다. 욥은 자신에게 닥친 환난을 통해 보여진 하나님의 크고 두려우신 능력을 생각합니다. 주께서는 군대에서 집단으로 폭행하시는 분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욥은 고통을 증거하는 자로 표현하여 욥이 마치 법정에서 고문을 당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악화되는 질병과 그 외의 고통스러운 상황들이 마치 죄를 추궁하는 고문처럼 여겨졌습니다.

정규 부대가 번갈아 치며, 증강 부대가 오고 있습니다. 정규 부대는 지금까지 욥이 받아왔던 고난을 말하고, 증강 부대는 현재 당하고 있는 고난과 앞으로 닥치게 될 예측할 수 없는 역경을 말합니다.

욥은 ‘나쁜 하나님’을 말합니다. 욥은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중보자 없이 하나님을 생각하는 자들의 오해입니다.

우리도 이런 때가 있습니다. 현실에 알 수 없는 고통이 있을 때 하나님이 사랑이 없으시고 괴롭히시는 분처럼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전쟁이나 지진으로 많은 사람이 죽을 때 우리도 이런 오해를 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 질병으로 고통할 때, 이런 생각이 납니다.

오요한
▲오요한 목사.
6. 욥은 잠시나마 평안을 구한다

18-22절에 보면 주께서 저를 이렇게 할 것이라면 왜 나를 모태에서 살아 나오게 하셨느냐고 묻습니다. 욥은 모든 문제의 근원이 자기의 태어난 것 때문이라고 비관합니다.

욥은 자신의 출생, 혹은 수태가 곧 죽음으로 직결되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욥은 차라리 모태에서 죽어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나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사후 세계를 매우 암울한 곳으로 나타난 것은, 욥의 마음 속에 생명에 대한 애착심이 역설적으로 강화됐기 때문입니다.

욥이 살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좀 혼자 있게 내버려 달라고 합니다. 어둡고 캄캄한 저승 땅으로 내려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리로 가기 전에 잠시 쉬게 해달라고 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고통 주시는 일을 멈추시고 음부에 떨어지기 전에 잠시나마 기력을 회복하여 숨 쉬게 해달라고 합니다(시 39:13). 죽음의 땅은 흑암처럼 캄캄하고,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져서 아무런 질서도 없고, 빛이 있다 해도 흑암과 같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버려두사 잠시나마 질병에서 놓여 이 땅에서 평안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극도의 고난 속에서 죽음을 구하면서도, 사후의 세계에 더 큰 두려움을 표현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욥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입니다. 그는 현실의 고난에 기초하여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하나님을 나쁜 분으로 오해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에 기초하여 사랑의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에 기초하여, 현실의 고난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현실의 고난도 모두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요 은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멘.

오요한 목사(천안 UBF, <오요한 목자의 로마서 강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