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편지
8월의 폭염에 쩔은 나에게 심경애 한테서 전화가 왔다.

제주에서 은갈치가 왔는데 내가 생각이 나 전화를 했단다.
경애는 합창단 후배이지만 배울 점도 많고 격이 없어 내게는 존경스러운 친구다.
그런데 경애네 집은 서울 도봉구고 나는 경기도 광주라서 은갈치 먹겠다고
생고생을 시킬 수 없어 망설이는 나에게 대뜸 양재역에서 만나잔다.
그날 오후 늦게 광주역에서 전철을 타고 양재역 약속 장소로 달려갔다.
나를 본 경애는 예쁜 천 가방을 내밀면서 그냥 집으로 가란다.
후일담이지만 심경애 남편 목사님이 얼음 위에 갈치를 넣고
뽁뽁이로 말아 백화점 선물세트보다도 더 아름답게 싸서 보냈단다.
혹시나 은갈치 상할라 빨리 가라는 성화에 차 한잔의 시간도 잊어버렸다.
돌아오면서 전동차 창 너머로 경애를 떠 올리며 생각해 보았다.
'나 같으면 은갈치를 친구에게 주겠다고 이 폭염을 이고 오지는 못할 거야.'
사람을 좋아 하는 것과 상대를 위해 희생한다는 것은 별개 문제가 아닐까?
그러나 한편으로 그런 경애가 한없이 부럽기도 했다.
철저한 개인주의로 달궈진 현대사회에서 남을 배려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맛의 향연인 제주 은갈치로 이웃들과 함께 함박꽃을 피우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 2:26)
오늘따라 이 성경구절이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한다.

신경희/서울사모횃불회

*교통문화선교협의회가 지난 1988년부터 지하철 역 승강장에 걸었던 '사랑의 편지'(발행인 류중현 목사)는, 현대인들의 문화의식을 함양하고 이를 통한 인간다운 사회 구현을 위해 시작됐다. 본지는 이 '사랑의 편지'(출처: www.loveletters.kr)를 매주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