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윤
▲허정윤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1. 태초의 창조: 이전과 이후(2)

창세기는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6일 창조' 이전에는 흑암이 있었다고 서술한다. 흑암 속에는 하나님이 처음으로 빛을 창조하기 전의 역사적 과정이 모두 들어 있다. 그러나 창세기는 흑암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지속되었는지, 그리고 흑암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더욱이 가장 중요한 창조자에 대해서도 존재를 전제하고 있을 뿐, 기원을 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현대인들은 창조 사건의 행위자의 존재에 대해 창조론이 설명해줄 것을 요구한다. 성경에서 말하지 않는 것까지 설명해야 하는 창조론은 부분적으로 추론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추론은 많은 논쟁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추론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사실적인' 근거는 신학적 또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이론을 의미한다. 창세기는 하나님의 영이 아직 흑암 속에서 깊은 물에 잠겨 있는 땅을 살펴본 뒤에, 하나님이 창조를 시작하셨다고 서술한다.

창세기 1:3은 하나님의 창조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서술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וַיֹּ֥אמֶר אֱלֹהִ֖ים יְהִ֣י אֹ֑ור וַֽיְהִי־אֹֽור׃). 이 구절에는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셨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기원을 설명하는 열쇠가 숨겨져 있다. 여기서 창조자의 '있으라'는 명령어는 히브리어 동사 '예히'(יְהִ֣י)이다. '예히'라는 히브리어는 어의적으로 '......이다, 스스로 존재하다'는 자동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던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나 이름을 물었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예흐예 아셰르 예흐예(אֶהְיֶה אֲשֶׁר אֶהְיֶה)라고 대답하셨다(출3:14). 이 구절은 영어로는 'I AM THAT IAM'이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 '나는 나다'라고 대답하셨다.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조상의 이름을 열거하는 히브리 전통에서 이 말은 조상이 없다는 사실을 함의하고 있다. 그것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는 의미이다. '예히'라는 말과 '예흐예'라는 말은 같은 어원을 가진 동사이다. 또한 '예흐예'라는 말에서 '하나님'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יְהוָ֥ה אֱלֹהִ֖ים(예히예 엘로힘)의 '야웨'가 유래되었다. 히브리인들에 의하여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יְהוָה)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이름은 한글 성경에서는 '스스로 있는 자', '여호와' 또는 '하나님'이라고 번역되었다.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실 때에 그의 이름으로 창조를 명령하셨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새롭게 발견된다. 하나님이 자기 기원을 설명하는 말씀이 진화론과 공명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신론의 근거 이론으로 쓰이고 있는 현대 진화론이 유신론의 근거 이론으로 전환되는 고리가 된다. 물론 처음에는 진화론이 지구 생명체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제안되었다. 그러나 현대 진화론은 생명체가 '스스로 발생'하였으므로 창조신은 없다는 무신론적 주장에 더 강조점을 두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무신론적 진화론을 하나님이 자기 기원을 설명하신 말씀에 적용하면, 진화론은 바로 유신론의 근거 이론으로 다시 바뀔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이 창조 이전에 스스로 존재하시게 된 분이시라면, 진화론은 하나님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 생명체와 무신론에 적용되는 진화론은 모두 틀린 것이 된다. 그러므로 지구의 생명체는 진화론이 아니라 창조론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이런 사실을 입증하는 '과학적 사실' 몇 가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생물학적 진화에는 장구한 시간이 필요하다. '과학적 사실에 의하면, 138억 년 전에 빅뱅으로 생겨난 우리우주에서 지구의 나이는 겨우 46억년밖에 되지 않는다. 무신론적 진화론에 의하면 지구에서 최초의 원시생물은 고생대 초기인 약 5억4천만 년 전에 스스로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그 원시생물이 생물적 진화의 각 단계를 거쳐 최고의 지능과 복잡성을 가진 인간으로까지 진화하기에는 그때로부터의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확률이론으로 입증되고 있다. 둘째, 무신론적 진화론자들의 끈질긴 연구에도 불구하고, 무신론과 지구 생명체의 발생에 적용되었던 화학적 진화론은 지구 물질에서 생명체가 발생될 수 있는 화학 방정식이 발견되지 않음으로써 유효성을 잃었다. 셋째, 생물의 기본 단위인 세포와 그 안의 DNA 구조가 상세하게 연구되면서 원자들이 자연적으로 조합되어 DNA를 가진 세포가 만들어지고, 나아가 생명현상의 필수요소인 의식과 생식기능까지 갖춘 생명체로 진화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결과에 의해 밝혀졌다. 이 세 가지 사실만으로도 지구의 생명체에게 적용되는 무신론적 진화론을 반박하는 근거는 충분하다. 그러나 진화론을 하나님의 기원에 적용하면, 진화론은 무신론의 근거에서 유신론의 근거로 사용될 수 있다. 따라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적 진화론은 이제 반박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진화론은 유신론을 입증하는 이론으로 전환되었다. 이제부터 그런 바탕 위에서 전개되는 현대 창조론은 부인할 수 없는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존재는 입증되었지만, 창조자로서 그가 존재하시는 곳을 설명하는 것도 필요하다. 과학적으로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열역학 제1법칙을 끌어와야 한다. 에너지는 영원히 보존된다고 설명하는 열역학 제1법칙은 우리우주 이전부터 영원히 존재하는 에너지 우주가 있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분명하게 입증하고 있다. 태초의 창조 이전에 에너지 우주가 영원불변하게 존재하고 있었다면, 그곳에서 스스로 존재하게 된 생명체가 최고도로 진화할 수 있었다는 추론은 진화론에 의하여 부정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추론은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진화론과 하나님이 자기 기원을 '스스로 있는 자'로 설명하신 말씀에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진화론에 의하면 알 수 없는 긴 시간 동안 영원불변의 에너지 우주에서 생명체가 스스로 진화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고, 그 생명체가 우리우주의 창조자로 진화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따라서 생명체의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 오랜 시간이 필요한 진화론은 사실상 빅뱅 이후의 제한된 시간만을 가진 우리우주보다는 빅뱅 이전에 무한한 시간을 가졌던 에너지 우주에 더 적합한 이론이다. 그렇다면 앞의 추론에 의해서 우리우주와 지구의 생명체를 창조한 신의 존재는 에너지 우주에서 존재한다는 추론이 필연성을 가지게 된다.

그 필연성은 열역학 제1법칙에 의해서 무신론적 진화론이 창조자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는 이론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지시하고 있다. 영원한 에너지 우주에서 스스로 존재하게 되어 진화한 생명체가 초월적 능력을 가지게 되었고, 나아가서 우리우주와 지구의 생명체를 창조하신 분이 되었다면, 기독교는 바로 그분을 창조자 하나님으로 믿을 수밖에 없다. 그 하나님의 창조 명령은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사전에 창조될 것들의 모든 정보가 이미 지적으로 치밀하게 계획된 설계도에 의한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지만, 그를 제외한 우주만물은 그의 창조 명령에 의해 '존재하게 된 것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물질적 우주가 만들어지기 전, 즉 빅뱅 이전에는 열역학 제1법칙이 입증하는 우주 에너지 총량이 하나의 우주를 구성하고 있었다는 것은'과학적 사실'이다. 이것을 에너지 우주 또는 최초의 자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에너지 우주 즉 최초의 자연에서 스스로 존재하게 된 신이 물질적 우주의 창조를 계획하였고, 우주 에너지 일부를 물질들로 전환하기 위하여 빅뱅 사건을 일으켰다고 주장한다면, 무신론적 진화론자들이 이를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이와 같이 현대 창조론은 성경과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무신론적 진화론을 유신론을 입증하는 진화론으로 뒤집어 놓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무신론적 진화론을 반박하고 신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또 하나의 이론은 '대칭성 법칙'을 바탕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지면상 이를 생략하였으니, 이를 설명하는 『과학과 신의 전쟁』을 참고하라). (계속)

허정윤(Ph. D. 역사신학, 케리그마신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