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박진호 목사의 신앙문답]을 매주 1회 연재합니다. 미국 남침례교단 목사인 그는 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를 담임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의 글은 박 목사가 운영하는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그가 직접 쓴 것으로, 본지는 박 목사의 허락을 받아 이를 게재합니다. 아울러 필자의 요청에 따라, 글이 그의 웹페이지에 게시된 날짜를 맨 아래 밝혀둡니다.

유인원 원숭이 진화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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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 유신 진화론을 기독교 내에서 지지하는 사람이 왜 있는가요?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아는 성경 상식으로는 지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2. 유신 진화론에 대한 오류와 그 근거들은 무엇인지요?

3. 유신 진화론이 기독교인으로서 지지해선 안 될 이론이라면 동료 학생들에게 어떻게 설득하면 좋을까요? (2번 질문에서 나올 정답이긴 합니다.)

[답변]

최근 기독교 외부와 진보 측 기독교계만 아니라 많은 보수 기독교 지도자들마저 유신진화론에 동조하고 있어 기독 청년들이 그대로 따르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질문자님처럼 소수의 보수적인 신자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과학인가 믿음인가?

이 주제에 관해 기독교인들이 취할 태도는 무조건 상대를 틀렸다고 판단 정죄할 것이 아니라 합리적 중립적 입장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과학적으로는 진화가 완전히 입증된 것이 아닌 가설(假設-theory) 상태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엄연한 사실을 그쪽 진영에선 함구하고 있고 유신 진화론자들도 거론조차 않습니다. 신자는 진화론이든 유신진화론이든 진화가 완전히 입증된 공리(公理-axiom)인양 여겨선 안 됩니다.

또 그 이전에 진화론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는 의견도 받아들여선 안 됩니다. 진화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이뤄진다는 것이 대전제입니다. 그 오랜 기간 동안의 변화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와 증거를 수집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또 "그렇게 오랜 기간에 무슨 일인들 못 일어나겠느냐?"는 비과학적이고도 궁극적인 핑계 변명에도, 무신론자의 거두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은 이런 변명으로만 가득 찼습니다.

물론 창조론도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입증될 성질도 아닙니다. 하나님이라는 존재의 실존 자체조차 인간이 증명하지 못합니다. 태초에 일어난 일에 대한 증거를 지금 와서 찾을 방도는 더더욱 없습니다. 결국 진화론이든 창조론이든 과학의 영역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양쪽에서 다 겸손히 인정해야 합니다.

진화를 몇 가지 증거나 이론으로 풀어나간다고 해서 진화론만이 과학적일 것이라고 오해하는데 이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자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식일뿐입니다. 창조론자이든 진화론자이든 인간의 기원은 과학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시인하는 것이 가장 과학적인 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작금 창조를 과학적으로 입증해보려고 최소한 해명해보려고 시도하는 의도는 선합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특별히 반대 의견을 내기 좋아하는 과학자들 모두가 수긍 합의할만한 완벽한 증거와 이론을 제시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입니다.

절대자 하나님의 주권적 권능과 신비에 속한 일을 인간이 어떻게 증명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럴 수 있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엄격히 말해 교만이자 그분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일일 수 있습니다. 욥에게 던져진 하나님의 질문들(욥38-41장)에 제대로 답을 못하는 모습이 피조물로서의 인간이 영원토록 처할 위치입니다.

자칭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는 진화론도 크게 보아 네 가지 맹점이 아직도 전혀 해명되지 못한 채 남아 있습니다. 이전에 제가 쓴 글에서 밝혀 놓은 대로 1) 종과 종 사이의 진화, 2)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 3) 이종(異種) 간의 교섭으로는 번식이 불가능, 4) 식물의 진화 증거가 그것입니다. (http://whyjesusonly.com/brotherok/26274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를 읽고서 저자 우종학 교수에게 따진다.) 이 넷이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고는 진화론이 옳다고, 그 전에 감히 과학적이라고 주장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바꿔 말해 지금껏 항상 그러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이 주제는 믿음의 문제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어차피 둘 중에 하나는 진리이니까 둘 중에 더 개연성이 있어 보이고 합리적일 것 같은 쪽을 택해서 무조건 믿을 수밖에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특별히 성경 전체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는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말씀 안에서 창조를 묵상하면 인간의 이성적 선택 차원을 넘어서 성령님의 조명도 역사하여서 창조가 절대적 진리라는 확신이 생깁니다.

약육강식이 하나님의 뜻인가?

유신론적 진화란 한마디로 하나님이 진화를 창조의 방법으로 사용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신앙적 표현을 동원하고 심지어 관련 성경구절을 인용해도 과학적으로는 어차피 진화론입니다. 인간이 이 땅에 출현된 경로가 진화로,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자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 창조가 들어설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바꿔 말해 유신 진화론에도 앞에서 열거한 진화론이 갖는 네 가지 맹점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있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과학이론도 과학적으로 더 뛰어난 이론도 아닙니다. 현재 생물학계에서 인정하는 진화론을 성경의 설명과 조화 균형 일치시켜보려는 시도일 뿐입니다.

문제는 언뜻 그럴싸해 보이는 설명들이 자세히 살피면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과 상충되는 점이 많고 자칫 이단적 주장으로 흐를 가능성마저 있습니다. 간단하게 상기에 인용한 글에서 몇 가지 지적했지만 추가로 그 신학적 성경적 하자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진화에는 약육강식의 원리가 작용됩니다. 그럼 그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다른 동물의 무고한 희생 위에 인간이 출현했다는 뜻이 됩니다. 모든 동식물을 종류대로 아름답고도 완전하게 만드시고 그 각각이 생존하기에 합당한 환경을 조성하신 선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위배 됩니다.

먹이 사슬의 원리가 창조 자체에 포함되었는지 성경은 침묵하고 있지만 창조 때보다는 노아 심판 후에 부여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이 문제를 숙제로 남겨둔다 하더라도 인간이 너무나 많은 다른 동물들의 피 흘림 후에 나타났다면 이 땅을 거룩하고 아름답게 다스려야 하는 인간의 청지기적 소명과도 상충됩니다.

진화로는 타락이 없다

무엇보다도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이브의 거역으로 인한 타락은 진화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진화의 마지막 완성 단계에서 다른 종에서 인간 조상인 아담과 이브가 출현했다 쳐도 이미 말씀드린 대로 최초인간의 선조는 다른 종들을 무자비하게 죽인 윤리적으로만 따져도 살생(殺生), 어쩌면 같은 종인 유인원들도 죽인 죄의 덫을 쓰고 출현한 것입니다.

거기다 성경이 말하는 죄의 본질은 이런 윤리적인 죄가 아닙니다. 인간은 완벽하고도 아름답게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최초 인간은 선한 것을, 특별히 하나님의 뜻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순종할 수 있는 의지를 갖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 좋은 의지를 갖고 자발적 의도적으로 사탄을 따름으로써 타락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사탄은 죄의 본질이 아니라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오게 하는 매개체였습니다. 죄의 본질은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신을 그 위치에 둔 것입니다.

진화라는 방식으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을 거역한다는 것은 태생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론적으로도 말이 안 됩니다. 진화라는 법칙에 묶여 있는 인간이 어떻게 자유 의지로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성경은 인간에게만 하나님이 당신의 영을 부어주었다고 말합니다. 다른 동식물은 자연의 섭리와 본능에 충실한 존재로 만들었다는 뜻이며 그들 모두는 그 본능대로 생존 유지 번식합니다. 다른 피조물이 하나님의 그 법칙을 어기는 법은 전혀 없습니다. 인간만 하나님께 순종하거나 거역하는 일이 가능합니다. 진화로는 타락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바꿔 말해 유신론적 진화는 창세기의 기록 전부가 단순히 영적으로 상징적인 의미만 담고 있는 것이지 역사적 사실과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더 정확하게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사실은 성경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아름답고도 완벽하게 창조된 - 진화되지 않은 - 인간이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거역한 데서 인간의 역사가 진행되었고 또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이 유일한 길이자 소망이 된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주제입니다. 유신론적 진화에 따르면 모든 인간의 원죄를 예수 십자가 보혈로 씻는다는 구원이 아무 의미가 없어집니다.

성경해석에서의 자가당착

유신론적 진화를 주장하는 자들은 창세기 1-2장을 더욱 정확하게 풀이한다고 자부합니다. 성경해석학적 관점에서 풀이하면 과학이 입증해낸 지질학적 연대는 물론 진화의 증거와도 일치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대표적 예로 7일 간의 창조에서 하루의 시간적 연대가 24시간이 아님을 히브리 원어의 뜻과 용례를 들어서 설명합니다. 큰 광명과 작은 광명 등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날의 길이나 광명의 창조 순서 등은 성경의 문자적 설명과는 다르다는 점은 보수기독교계에서도 벌써 인정하고 있는 해석일 뿐입니다.

그보다 종류별로 창조했다는 선언에 대해선 그들은 완전히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의 해석에는 아무리 성경해석학을 동원해 세밀히 검토를 해도 다른 이론이 생길 여지가 전혀 없음에도 그러합니다.

정말로 성경해석학적으로 정확히 해석하려면 "종류별로 창조"했다는 성경의 기록부터 틀렸다고 먼저 밝혀야 합니다. 아니 사실상 진화를 주장하니까 이 기록을 깡그리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른 구절을 아무리 정확히 해석해보려 덤벼도 아무 의미가 없는 일 아닙니까? 성경 구절을 인간이 판단해서 이 구절은 완전히 틀렸고, 이 구절은 이렇게 저렇게 고쳐야 하고, 이 구절들만 그것도 영적인 상징과 의미로만 받아들이면 된다고 말하는것입니다.

이는 마치 학생이 교복을 학교 규칙에 어긋나게 입었다고 학생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꼴입니다. 학생이 아니라는 것이 먼저 입증된다면 옷을 거꾸로 입은 것은 구태뎌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유신 진화론자들이 성경을 대하는 자가당착적인 태도입니다.

도덕적으로도 진화했는가?

진화로 인간이 출현했다면 흔히 말하듯이 북경, 자바 원인, 네안데르탈인 등을 거쳐 현생 인류의 조상인 유인원(homo sapience)이 등장해야 합니다. 그럼 최초의 인류가 어느 시점의 누구인지, 또 그의 도덕적 수준이 어떠했는지 여부도 따져야 합니다.

진화론에선 인간의 윤리수준도 진화되었다고 여깁니다. 그럼 하나님에 대한 타락은 단순히 행동윤리학적 차원에서 인간사회가 말하는 외형적 죄의 범주로만 제한됩니다. 또 그 구원 방안도 윤리 수준을 정상 내지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행위 구원으로 변질되어야 합니다.

진화를 주장하면 최초 인간 아담과 이브의 창조 직후의 영적 도덕적 순결성이, 최소한 그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이 말하는 타락은 존재론적인 죄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서 먹은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으로 그 행위가 악한 것으로만 쉽게 이해하고 치웁니다. 그러나 이 최초의 타락은 더 깊이 따져볼 측면이 많습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행위는 하나님이 금하는 행위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하나님을 마음에 지워버렸습니다. 그 위에 인간이 자기를 하나님과 대체해서 높이 세웠습니다. 마음이 타락한 것이 타락의 본질이며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사고의 전환이 된 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이는 하나님이라는 존재와 인간이라는 존재가 인격적인 관계를 갖고 있을 때만 성립되는 죄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하나님이 배제된 상태에서 즉, 하나님이 실존하지 않기에 선악과 금령 자체가 없는 상태라면 아담이 동산의 과일을 따서 아내인 이브와 나눠먹은 것은 아주 칭찬할만한 선행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금했기에 그 선한 행위도 그 이후의 모든 인류가 고통 속에 지나게 될 타락이 됩니다.

즉 하나님이라는 실존을 부인한 것이 인간 죄악의 최고봉이요 시초요 모든 인간 문제의 원인입니다. 불신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믿기에 선악과 금령을 위반했다고 인간이 원죄의 굴레 아래에서 죄의 종이 되었다는 기독교 교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믿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창조의 하나님이 부인되는 상황에선 성경이 말하는 전적타락은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창조와 구원

인간이라는 존재가 자기를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앞으로 사랑으로 통치하실 자신의 주권적 존재인 하나님의 실존을 부인한 것이 원죄라면 그 구원도 존재론적 구원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 값을 대신 감당하시고 죄인인 한 인격체 전부를, 죄악 된 행동을 바로 잡아서 구원한 것이 아니라, 구원해주셨습니다.

인간이 죄의 본성이 그대로 생생히 살아 있고 인간 쪽에서 아무런 선행 공적 자격 없어도 그 사람 전체를 용서하고 당신의 자녀로 받아 주신 것이 구원입니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었다면 죄의 행동을 고쳐야 하지만 이미 타락한 죄인이기에 그 죄인을 받아주어야 구원이 가능해집니다.

진화로 인간이 출현했다면 도덕 수준도 진화되고 있고, 그 영성도 진화되어야 합니다. 유신 진화론은 성경의 기록을 성경해석학 기법을 동원해 정확하게 해석한 것이 아니라 창세기 1-3장을 깡그리 부인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 세 장을 빼어 버리면 예수 그리스도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타락한 직후에 하나님이 먼저 그들을 찾아와서 용서해주시고 가죽옷을 직접 지어 입힙니다.

그리고 여자의 후손이 와서 사탄의 머리를 부수어 구원해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창3:15) 이것이 바로 성경 최초로 기록된 십자가 구원의 예언이라고 해서 원시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진화된 인간에게 이런 약속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또 바울이 갈4:4에서 그 원시 복음이 때가 차매 마리아에게서 동정녀 탄생으로 나신 예수님에 의해 성취되었다는 선언도 아무 의미가 없어집니다.

진화를 통해 어느 시점엔가 아담과 이브 같은 완성된 아름다운 존재가 출현했다고 치고 그 후부터 성경의 기록이 응하는 것이라고 억지 논리를 주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 그 전에 인간의 조상의 구원은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은 그들을 아주 냉정하게 심판으로 내몬 잔인한 분이 됩니다. 약육강식의 진화 원리대로 세상과 인간을 그런대로 인간이라고 부를만한 진화 완성된 최초의 인간이 출현할 때까지 오래 동안 잔혹하게 방치한 하나님이 됩니다.

동성애와 하나님의 창조 경륜

진화는 모든 생물이 극히 예외적인 단성생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암컷 수컷의 교배로만 번식한다는 진리를 애써 외면합니다. 다른 종으로의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동성애에 대한 성경적 인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동성애는 성적으로도 가장 타락한 죄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는, 그분을 부인하는 배역 죄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생물은 생육하고 번성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인간도 하나님께 받은 첫째 축복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동성애자들끼리는 후손의 번식이 안 됩니다. 창조 질서 자체를 거스르는 죽음의 질서입니다. 기독교인들마저 동성애를 단순히 인간의 자유와 권리와 책임의 영역으로 판단하는데 문제의 본질을 못 보는 너무 순진하고도 어리석은 판단입니다.

역으로 따지면 창조가 부인 되면 동성애에 대한 창조적 생명의 단절이라는 원천적 죄성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인간의 성적 모럴에 관한 차원으로 격하되며 그럼 신자들도 간음하는데 왜 꼭 동성애자만 정죄하느냐는 차별의 누명까지 본의 아니게 억울하게 덮어쓰게 됩니다.

그럼 동성애를 일반적인 죄로, 그래서 누구나 쉽게  습관적으로 지어도 용서해주어야 하는 수준으로 인정해줄 수밖에 없습니다. 동성애는 죽음을 전파한다는 차원에서 근본적인 죄가 되며 그래서 기독교계는 동성애라는 죄는 끝까지 정죄하되 동성애자는 사랑으로 용서하고 복음으로 치유케 해야 합니다.

인간은 물론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종류별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곧 바로 자웅 한 쌍씩 만들어졌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 방식으로만 생물이 생육 번성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노아 홍수 때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구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진화에는 이런 양성 분리된 상태로 생물이 출발되었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생명은 유기원소의 화학적 결합이 있고 신비한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생명력이 생겨서 아메바 같은 단세포가 출현했다고 합니다. 양성 분리가 아닙니다.

그럼 양성 분리도 진화에 의해 생긴 것입니다. 그럼 또 동성애가 전혀 죄로 정죄 받을 근거도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진화되기 전의 상태이거나 진화의 흔적을 몸에 지닌 것 즉, 유전자가 동성애인데 어떻게 죄라고 할 수 있습니까? 요컨대 완전하고 아름다운 종별로 창조가 부인 되면 성경기록은 휴지조각입니다.

창조와 진화는 서로 다른 구원론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무엇보다 진화로는 예수 그리스도는 구주가 아닙니다. 창조가 있어야 타락이 있고 타락이 있어야 예수 십자가가 빛을 발휘합니다. 완전한 모습의 창조를 인간이 자유의지를 동원해 전적으로 타락되었기에 예수님의 완전한 구원이 가능해집니다.

창조와 진화가 인간 기원의 과학적 근거를 밝히는 논쟁이 결코 아닙니다. 구원론을 은혜와 행위의 구원, 완전히 상반된 영원토록 일치 조화를 결코 이룰 수 없는 둘로 나누는 결과를 낳습니다. 진화는 살펴본 대로 일반 도덕적 죄만을 문제 삼게 되고, 행위가 선하면 구원 받는 것으로 결론을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유신론적 진화는 절대자 창조주의 실존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으나 신구약 성경의 하나님 즉, 오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로만 구원하고 그 은혜 안에서 인간을 통치하시는 성경의 하나님은 그들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부인하는 꼴이 됩니다.

창조과학의 맹점만 공격하지 막상 진화론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젊은 지구론이 비합리적이라는 점은 저도 인정하지만 유신 진화론에서 진화 자체가 옳다는 과학적 증거를 전혀 발견할 수 없습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대로 진화나 창조를 과학적으로 접근하겠다는 자체가 가장 비과학적인 태도일 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도울 수 없다

기독교 역사상 성경의 애매모호해 보이는 기록들을 계속 발전하여 새로운 이론을 내세우는 세속의 학문들과 예컨대 역사, 고고학, 생물학, 물리학 등에서 주장하는 내용과의 간극을 매워보려는 시도는 꽤 많이 자주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시도는 실패했고 오히려 성경의 진리 됨만 더 확증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유신론적 진화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 의도는 선하고 이해할 만합니다. 과학 맹신주의에 물든 신세대에게 성경도 과학적 진리라고 증명해 보여야 잘 믿을 것이라는 뜻인데 너무나 큰 착각입니다. 과학이 성경을, 특별히 창조를 절대 증명해내지 못합니다. 진화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믿음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 죄에 찌든 인간의 본성을 예수 십자가의 은혜로 덮어서 새롭게 변화시켜야만 즉,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야만 생깁니다. 타락은 인간 자체가 하나님 밖으로 나간 것이기에 그 존재 전체를 변화시켜 하나님 안으로 다시 되돌려야 구원이 가능합니다. 당연히 구원의 방법도 그래야 합니다.

인간의 존재 전체가 완전하고 아름답게 창조되었다가 그 존재 전체가 타락했다는 것이 진리가 되지 않으면 예수님의 성령으로 거듭나야 구원 된다는 말씀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부분 부분들이 진화되는 인간에게는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타락의 죄에 대해 물을 수 없고 그 죄를 심판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 하나님이야말로 독선적 이율배반적인 모순 덩어리 신으로 즉, 인간이 상상하는 신으로 전락합니다.

박진호
▲박진호 목사
이처럼 인간이 하나님의 일을 돕겠다고 나서선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그것도 창조라는 우주와 인간의 기원을 인간이 조금이라도 변명해보겠다고 그렇게라도 해서 하나님의 일을 돕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시도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그분께서 오직 당신의 절대적 주권으로만 행하십니다.

쉽게 말해 오직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을 증명하시는 분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 증명을 도울 수 없습니다. 완전히 거듭나서 그분을 인격적으로 만난 체험만 나눌 수 있을 뿐입니다. 그중에서도 창조는 하나님이 행하신 가장 큰 일로 하나님만이 증명하시는데 지금도 우리 주변에 그 증거는 넘치도록 많습니다. 기독청년들이 창조와 진화에 대할 태도는 바울이 로마서에서 설파한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1:18-20)

2018/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