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수난곡
신예 작가 심은신의 소설집 『마태수난곡』

심은신 | 도화 | 316쪽 | 13,000원

“아름다워 보여도 실상 인간이란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초라한 존재인지를, 초라해 보여도 실상 인간이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인지를, 게슈탈트 그림처럼 양면성을 그대로 끌어안은 인생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이기도 한 인생. 존재의 초라함을 고백할 수 있는 겸손과 존재의 소중함을 감사할 수 있는 소망이 있다면 어떤 인생인들 아릅답지 않을까요?”

『마태수난곡』은 장편소설 『바람기억』으로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심은신 소설가의 첫 번째 작품집이다. 국문학과 상담심리학을 전공한 심은신은 교사로 일하고 있으며, 2016년 단편 「마태수난곡」으로 공무원문예대전 금상을 수상, 같은 해 「달맞이꽃」으로 월간문학신인작품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이후 장편 『바람기억』을 출간, 2018 신예작가에 선정됐고, 울산문화재단 주관 예술창작발표지원 공모 수혜자로 선정됐다.

『마태수난곡』에 수록된 10편의 이야기는 서로를 반영하고 서로를 상기시킨다. 작품들을 읽다 보면 드러난 이야기 밑에 흐르는 또 다른 이야기가 감지된다. 전혀 동 떨어진 것 같은 이야기를 동시에 듣는다. 마치 다양한 악기들의 협주를 듣는 것 같다. 그것은 이 작품집의 작품들 대부분이 기독교적인 가치관에 연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제작 「마태수난곡」은 ‘한 눈 없는 어머니의 슬픈 자궁으로부터 피어올라 팔십 년을 버거운 운명에 순응해 살아오다가’ 암투병중인 아버지의 이야기가 ‘고독한듯하나 쓸쓸하지 않고, 무거운듯하나 침잠되지 않고, 엄정한듯하나 차갑지 않은’ 바흐의 음악처럼 감정의 과잉 없이 독자들의 영혼과 내면으로 스며든다.

「달맞이꽃」은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을 떠난 스물세 살의 딸, 여성성이 말라버린 쉰 살의 엄마, 그 둘의 내밀한 심리의 시공간 여행 이야기이다. 예수의 제자 야고보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처음 걸어간 고독한 땅 산티아고의 순례 길을 걷는 딸과, 강릉의 허난설헌을 만나러 가서 달과 꽃을 발견하는 엄마의 형상이 따뜻한 위로로 다가온다. ‘산티아고는 개념이 아니라 실체’, ‘너의 길이 어떤 길이든, 네 속에 생명을 품고 있다면 모두 의미가 있는 길’이라는 딸과 엄마의 말이 달빛의 언어로 눈부시게 빛난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의 나는, 능력 있는 대기업 이사의 남편에 명문대 재학 중인 똑똑한 딸, 서초동의 오십 평 아파트에 노후 여윳돈까지 가져 부족함이 없는데도 써지지 않는 시나리오 때문에 우울증에서 허우적거린다.

하지만 교회에서 우연히 만난 순이 씨는 공장에서 몸이 부셔져라 미싱을 돌리는 가난한 과부인데도 늘 웃고 있는데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하다. 감성 짙은 사진사 남편을 간경화로 먼저 보낸 순이 씨는 자신도 폐렴으로 중환자실에 들어가 사경을 헤맨다.

그녀가 가보고 싶어하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배경인 군산 초원사진관을 찾아간 나는 그곳에서 순이 씨의 임종문자를 받는다. 순이 씨 폰 속의 온통 꽃 천지인 톡 사진 사이로 떠오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문자의 잔영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고 눈앞에서 맴도는 작품이다.

「심폐소생술」은 기간제 교사인 찬우의 신산한 삶이 심폐소생술을 강의하는 현장성과 어우러진 긴장감으로 독자를 압도한다. 그래서 ‘심장이 완전히 멈추기 전에’ ‘다시 심장이 쿵쿵 뛸 수 있는 땅’ 안나푸르나로 혼자서 떠나자는 찬우의 마지막 다짐이 묵직한 동감의 여운으로 다가온다.

「세 번 부른 노래」의 세령은 치매로 요양병원에 입원한 어머니에게 혼외자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다섯 살 때 미국에 입양된 어머니의 혼외자는 백인가정에서 시민권 취득 절차를 밟지 않고 무국적자 신분으로 양육된다.

훗날 그 사실이 드러나 고국으로 추방을 당한 후 생모를 찾지만 결국 고단한 삶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죽은 낯선 남자가 오빠라는 사실 앞에서 곤혹스러운 세령은 외숙모할머니로부터 어머니의 사연을 듣고 ‘가면 속에서 엄마가 그 오랜 시간을 울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으로 통증이 전해’진다.

세령이 느끼는 가슴의 통증이 고스란히 전이되어 가슴앓이의 여운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안남국에서 온 편지」의 나는 현지공장 신임주재원으로 베트남에 간 첫 날부터 마음이 무겁다. 고종사촌의 부인 응우옌이 오 년 간 함께 살던 남편과 아이를 두고 고국인 베트남으로 떠나 돌아오지 않았는데 그녀를 찾아보라는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베트남 현지에서 희석되지 않은 베트남인들의 분노를 느끼면서 나는 응우옌의 친정어머니를 찾아가지만 고엽제 피해자인 그녀는 자신의 딸을 ‘그 애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로운 아이’라며 한사코 대화를 거절한다.

그동안 우리소설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던 개성 넘치는 베트남 여인의 형상을 통해 다문화 시대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신데렐라 슈즈」의 연희는 아버지의 여성편력을 보고 자랐지만 구타를 당하면서도 그때마다 매번 구두를 선물하는 남자와의 인연을 쉽게 정리하지 못한다.

그 남자가 가진 슈즈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 때문이다. 이런 연희의 심리가 어머니가 집을 나간 날 아침, 아버지의 여자가 신었던 빨간 구두가 함께 사라지는 장면과 더불어 평행선을 달리다다 두 개의 이야기로 겹쳐서 들리게 만드는 상징의 솜씨가 도드라진다.

「호치민 연가」는 베트남 라이따이한 펑번과 그의 아버지 박정훈 씨의 삶을 미싱 판매 영업자 인수의 시선을 통해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미싱 1대로 시작한 공장에 100대의 미싱을 들여오고, 100명의 직원을 모두 라이따이한으로 고용하는 장면을 통해 라이따이한의 개인사와 사회사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성찰하도록 만든다. 「이마고」는 청소년 상담센터의 상담사인 나의 이야기이다. 나와 두 달째 상담 중이던 희가 목을 매어 자살을 한다. 내가 시도한 치유를 위한 시詩 상담이 연유이며 무엇보다도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으로 시작하는 낙화를 선정한 탓이라는 소문이 걷잡을 없을 정도로 빠르게 퍼지지만 나는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 나는 참고 견디며 상담을 계속한다. 남자 친구에게 베푼 선의가 걸레라는 악의적인 소문으로 변질되어 한사코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 유는 아버지가 자꾸 학교에 보내려고 하면 죽어버리겠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런 유를 상담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되짚어 보던 나는 유에게 자신의 모습을 환히 비춰줄 거울이 되어 줄 사람들을 기다려야 하며, 그 힘은 집단에 숨어있다고 역설한다. 개인과 집단의 문제를 조망하는 심리전문가의 육성, 그 울림이 절박하면서도 융숭 깊다. 「백조의 유영」은 유치원 원장과 선생인 두 여자의 인생 속내의 맨 얼굴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인간이란 얼마나 보잘것없고 초라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역설이 인상적이다.

이처럼 마이너리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있는 그대로를 생생하면서도 차분하게 보여주는 『마테수난곡』은 시종일관 사유의 흐름을 놓치지 않은 완결성을 확보하고 있어 매혹적이다. 그것은 소설 속 존재들의 여러 국면, 가령 비루하기도 하고,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장면에도 감정을 과도하게 집중해서 표현하기보다는 담담하게 거리를 두는 좋은 절제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런 좋은 절제는 『마태수난곡』에 실린 모든 작품에 담겨있는 기독교적 가치관을 근간으로 하는 믿음에서 우러나는 마음이 가난한 감사와, 존재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가능하다. 세상을 보는 따뜻한 마음과 타인을 위한 심장의 기도로 만들어진 『마태수난곡』은 독자들이 가진 상처를 새로운 힘으로 승화시키는 소망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