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천투데이는 본지 칼럼니스트인 허정윤 박사가 지난 8월 25일 제25회 지적설계연구회 심포지움에서 발표한 '지적설계론과 창조론의 동질성과 이질성-미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총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허정윤
▲지난 8월 25일 제25회 지적설계연구회 심포지움에서 발표하고 있는 허정윤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Ⅳ. 창조자 또는 지적 설계자

창조론에서는 창조 사건의 행위자인 창조자가 전제되고 있다. 그리고 지적 설계론에서는 DNA 암호를 설계한 지적 설계자의 존재가 전제되어 있다. 창조자나 지적 설계자는 서로 다른 말이지만, 두 가지 모두 기원 사건의 행위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는 '거의' 같다. '전적으로' 같다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그 정체성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창조론에서는 창조자의 속성을 반드시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지적 설계론에서는 지적 설계자의 속성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창조론과 지적 설계론은 생명의 기원에 개입한 어떤 행위자를 건제한다는 점에서는 동질성을 가지고 있지만, 창조자와 지적 설계자의 정체성을 논의하게 되면, 그때부터 양쪽은 이질성을 드러낸다. '오직 창조'와 같은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서로 이해하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1. 창조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

기독교는 유대교 경전을 구약성경으로 쓰고 있다. 전통적 창조론은 유대교의 토라에서 나온 것이다. 토라의 전통에서는 창조자 하나님의 이름 앞에 양적(量的), 질적(質的)으로 존재론적 속성을 표현하면서 최고의 수식어(omni-)를 붙인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일하시고, 전지전능하시며, 영원불변하시고, 초월적이고, 편재하시고, 무한하신, --- 등의 절대적 지배자의 속성을 가졌다고 인식되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속성은 고전적 창조론에서부터 창조과학적 창조론까지 전통적으로 주장되었다. 그러나 유대교에 성문서 경전인 토라와 함께 구전으로 전해진 비밀 경전 카발라에는 토라와는 다른 창조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구전되던 카발라는 1세기 무렵부터 문서화가 진행되었다. 종교개혁이 진행되던 시기에 유대교에도 개혁이 일어났다. 이삭 루리아(Isaac ben Solomon Luria, 1534-1572)가 고대 카발라의 창조론이 사회적 현실과 모순된다는 것을 깨닫고 카발라 창조론을 다시 썼다. 루리아는 고대 카발라의 창조 이야기를 '생명의 나무' 교리로 바꾸었다. 루리아의 개혁적 교리는 팔레스타인 밖에서의 가르침이 금지되었지만, 결국에는 1772년 그의 제자들에 의해 유럽에서 책으로 출판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루리아는 카발라의 개혁에 '찜쭘 이론'을 중심으로 삼았다. 찜쭘은 히브리어로 위축 또는 비움을 뜻하는 말이며, 카발라에서는 창조자가 창조의 장소를 마련하기 위하여 '자기의 일부를 비웠다'는 개념으로 쓰인다. 이렇게 되면 창조자는 그의 속성을 제한했다는 의미가 나오게 된다. 토라의 창조자가 절대적 지배권을 가졌다고 서술한 것에 비하여 루리아의 카발라는 창조자가 상대적 지배권을 가졌다고 서술한 것이다.

바울이 그와 같은 취지로 말한 것이 빌립보서 2장에서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스스로 그의 완전성 일부분을 비워내시고, 그것을 인간에게 나눠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을 율법에 묶어 지배하는 절대 권력자가 아니라, 상호 관계에서 소통하는 존재로 자기를 낮추셨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교를 개혁한 것이다. 예수는 그때까지의 토라 해석을 개혁했다. 바울의 기록에 의하여 기독교는 인간 각자가 창조자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피조물이라는 지위를 비로소 되찾게 되었다. 그러나 초기 교회는 예수의 '임박한' 재림에 열광했던 까닭에 이런 사실을 간과하고 지나갔다. 하나님의 지상 대리인을 자처하던 로마가톨릭 교황은 인간의 지위 상승에 도움이 되는 해석을 결코 하지 않았다. 16세기에 이르러 르네상스에 의한 계몽운동이 사회 전반에 개혁을 축발했다. 종교개혁은 로마가톨릭 교황의 독점적 성경 해석권에 대한 도전에서 시작되었고, 과학혁명은 고대 신화적 천동설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로 인하여 로마가톨릭에는 물론 유대교에도 일대 변혁이 일어나게 되었다. 종교개혁 후 루터파 신학자들이 빌립보서 2장의 의미를 발견했으나, 기독론에서 머물고 창조론에까지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2. 현대 창조론에서의 창조자

기독교에서 창조자는 죄에 빠진 인간들을 구원하려고 그의 아들을 지상에 내려 보낸 것도 모자라 십자가 처형까지 당하게 하실 정도로 인간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다. 그런데 기독교 신학에서 가장 큰 난제는 하나님의 도덕적 완전성과 그가 창조한 이 세상이 도덕적 불완전성을 나타내고 있다는 현실적 모순에 대한 해석이다. 그것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과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을 거치는 동안 분명하게 드러났다. 양대 세계대전을 겪는 동안 절대적 지배자이시고, 전지전능한 도덕적 심판자이시고 지극하게 인간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인간들을 벌레처럼 죽이는 악인들을 방치하는 현실에 대해 의문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 안에서조차 악이 번성하고 있었다. 더욱이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 사건을 설명하는 창조론은 무신론적 진화론에 오히려 밀리고 있었다. 전통 신학에 한계를 느낀 서구의 현대 신학자들은 전통철학을 비판하는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의 과정철학을 기독교에 도입하여 과정신학으로 발전시켰다. 이들은 전통신학을 비판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각도로 통합적 연구의 길을 마련하였다. 그 결과 각 신학 계열이 공동으로 연구한 자료들을 출판하고 있다. 이것들을 종합해보면, 결국 신학적 지향점은 같은 것으로 드러난다. 그들은 토라와 카발라에 대한 연구는 물론 철학과 신학까지 통섭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이들이 공동연구를 위해 마련한 빅 텐트에 과학신학자들까지 대거 합류함으로써 이들이 현대신학의 중심에 자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주도하는 현대신학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현대 창조론자들이 해결해야 할 몇 가지 질문들을 여기에서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1) 신이 굳이 그의 완전성을 훼손하면서까지 왜 창조를 해야 했는가?

토라의 창조자인 고전적 신의 가장 중요한 속성의 하나는 완전성(完全性)이다. 그러나 타자의 존재를 허용하는 창조는 그의 완전성 일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현대신학은 창조자와 인간의 관계에서 불완전한 상대성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창조의 이유는 무엇이며, 상대적 관계를 어느 수준으로 설정해야 할 것인가?.

(2) 우주의 질서는 물리적으로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진화론은?

물질적 결합체인 우주와 그것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물리법칙은 거의 완벽하게 밝혀졌고,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물질 일원론에 토대를 두고 있는 무신론적 진화론은 물질에서 생명이 발생되는 인과관계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물리법칙과 생명법칙이 따로 있다는 사실과 창조자 또는 지적 설계자의 존재를 함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과학은 그런 사실을 '무지의 오류' 또는 '틈새의 신' 논리에 의한 것이라고 부정한다.    

(3) 완전한 신이 창조자이고 동시에 도덕적 심판자라면, 어떻게 악의 공존이 가능한 것인가?

악의 현존이 도덕적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증거로 이용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제기된 신정론(神正論)의 문제는 생명체의 역사와 현실에서 수없이 나타난 고통과 멸절, 그리고 인간들끼리의 살상과 악행에 신의 개입이 없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신과 인간의 관계성과 도덕적 기준은 어떻게 설정되어야 할 것인가?

(4) 창조된 세계에 종말은 있어야 하는 것인가?

전지전능한 신이 세계의 창조자라면 그는 세계에 종말이 오도록 창조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의문이 제기된다. 세계의 종말은 신이 세계를 더 이상 유지할 능력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신에게 세계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서인가? 현재의 세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신이 임시적 창조를 계속하기 때문인가?

3. 지적 설계자

지적 설계론에서는 지적 설계자가 존재한다고 전제할 뿐 구체적으로 그의 정체성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적 설계의 행위자라는 측면에서 그 정체성을 파악해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미 앞에서 논의한 것들을 간략하게 다시 살펴보는 방법으로 정리해보겠다. 『다윈의 블랙박스』의 저자 마이클 비히에 의하면 지적 설계자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으로 생물의 각 구조들을 설계한 존재이다. 『설계추론』의 저자 윌리암 뎀스키는 지적 설계자는 '특정화된 복잡성'을 가진 생명체의 정보를 만들어낸 존재라고 보았다. 뎀스키에 의하면 우리가 사물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인지, 또는 의도적 설계에 의해 발생한 것인지를 추론할 때 사용하는 확률과 정보 이론의 기준이 생물의 설계 추론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그 기준에 의하면 생명체는 지적 존재의 의도적 설계에 의하여 발생한 것이다. 지적 설계론자는 아니지만 『신의 언어』를 쓴 스티븐 콜린스도 지적 설계자를 암시했다. 콜린스는 생명의 DNA 암호문을 만드신 분을 신으로 보고 있다. 암호문은 그것을 주고받는 관계에서만 이해될 수 있도록 설계된 정보이고, 신은 그 설계자이다. 생물의 생명 기능은 DNA 암호를 이해하는 관계에서만 작동될 수 있다. 『세포속의 시그니처』 저자 스티븐 마이어도 세포속의 DNA는 지적 설계의 증거이고, 지적 설계자의 작품으로 본다. 마이어는 또한 캄브리아기 생물의 폭발적 발생이 지적 설계자의 창조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적 설계론자들의 주장들을 살펴보면 지적 설계자의 존재는 분명하게 감지되지만, 지적 설계론에는 설계의 범위가 지구 생명에 한정되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설계자의 작업이 설계로만 끝난 것인지, 실행까지 한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설계자가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더욱 알 수가 없다. 설계자가 인간적 기준에서 선한 존재인지 또는 악한 존재인지, 심지어는 제2의 피조물인 외계 생명체인지도 알 수 없다. 아니면 지구상에 살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지적 설계론의 입장은 무신론적 진화론을 부정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지적 설계자의 속성과 설계의 목적, 그리고 설계의 실행 방법 등에 대해서는 열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4. '과학적 사실'에 의한 창조자의 존재 증명

역사과학의 추론에 이용되는 검증된 과학적 법칙이나 이론들은 '과학적 사실'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은 열역학 제1법칙이다. 열역학 제1법칙에 의하면 우주 에너지가 영원불변하게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우주 에너지 총량이 존재의 최초원인이라는 '과학적 사실'에서 논의를 시작한다면, 과학적으로 더 이상의 반론이 제기될 수 없다. 에너지는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일을 시작한다. 현대과학에서는 우주 에너지가 우주물질로 전환된 사건을 빅뱅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되었고, 이후 팽창하고 있다는 현대 표준 우주론은 '과학적 사실'로 인정될 수 있다. '과학적 사실'에 의하여 창조를 논의하고 있는 현대 창조론은 빅뱅을 통하여 우주만물을 창조한 존재를 창조의 신으로 본다. 그렇다면 빅뱅은 진화론적 '우연'이 아니라, 우주 에너지 세계에 존재하는 창조의 신이 우주만물을 창조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작위(作爲)한 사건이다. 만약 창조의 신이 창조의 작위를 하지 않았다면, 우주 에너지는 지금까지 그대로 변함이 없었을 것이고, 우리우주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출애굽기 3:13-22에는 신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라고 말씀하셨다. 빅뱅 이전에 최초의 자연에서 창조의 신은 이미 스스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신이 빅뱅 이전의 우주 에너지 세계에서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는 그야말로 신비(神祕)에 속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신비의 생명력을 가진 신이 우주 에너지 세계에서 스스로 존재하게 되었음을 '과학적 사실'에 의하여 설명하는 방법이 있다. 첫째는 양자물리학자들이 표준 우주론에 적용하는 '대칭성의 법칙'으로 설명하는 방법이다. '대칭성의 법칙'에 의하면 신의 존재는 형이상학적 필연성을 가지게 된다. 신이 '대칭성의 법칙'에 의하여 우주 에너지 세계에 존재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을 과학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둘째는 진화론에 의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진화론은 빅뱅에서 시작한다. 빅뱅 이전에 우주 에너지 세계라는 최초의 자연이 있었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로 입증되었다. 그곳에서 신이 진화론적 방법으로 '우연'히 생겨났다고 설명한다면, 진화론자들은 반론할 방법이 없다. 무신론적 진화론자들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근거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화론은 지구, 넓게 잡아도 우리우주에서는 무신론의 근거로 사용될 수 있을지라도, 빅뱅 이전의 우주 에너지 세계까지 시야를 확장하면, 결국 유신론의 근거가 되는 이론이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진화론자들은 무신론을 포기하고 유신론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Ⅵ. 결론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창조론과 지적 설계론은 동질성과 이질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신론적 진화론을 공동의 적으로 하는 동질성이다. 이 동질성을 고리로 창조론과 지적 설계론 진영은 서로 연합하여 진화론을 물리칠 수 있다. 그동안 진화론은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은폐물에 실상을 감추고, 창조론과 지적 설계론의 반격을 피하면서 오히려 공세에 나서고 있었다. 과학주의에 빠진 세상은 실상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무신론적 진화론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진화론의 아킬레스건이 DNA임이 밝혀졌으므로 그곳에 집중적인 공격을 가해야 한다. 최근에 인공세포를 만들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사실은 세포의 핵심인 DNA조차 들어 있지 않은 것이다.

지적 설계자는 열린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어떤 창조론에도 친화적이다. 지적 설계론 그룹은 진화론의 아킬레스건인 DNA 연구에 뛰어난 인재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적 설계론 그룹은 창조의 신을 믿는 유신론 집단을 이끌고 진화론을 공격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지적 설계론은 어떤 반진화론 그룹들과도 손을 잡을 수 있고, 따라서 '오직 창조'운동과 쐐기 전략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가장 열린 이론이다 이제는 '과학적 사실'에 의하여 진화론이 창조자의 존재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쓰일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지적 설계론은 더 이상 창조론에 지원군이 아니라, 본래의 목적대로 진화론의 이킬레스건을 부수고 최종적인 승리의 깃발을 가져올 돌격대의 역할을 감당해주기를 기대한다. (끝)

허정윤(Ph. D. 역사신학, 케리그마신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