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내리는 정통주의 신학
뿌리내리는 정통주의 신학

권경철 | 다함 | 264쪽 | 13,000원

신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 하나는 칼빈이 기독교 교리를 정립하고 개혁주의를 앞장서서 주장한 유일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칼빈의 신학과 <기독교 강요>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것과 경건과 믿음의 부요함에 대하여 큰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칼빈을 연구할 때 지성사적 배경과 역사적 문맥에서 보면, 칼빈은 16-17세기 있는 위대한 신학자들 중 한 사람이며 그의 신학은 이 시기에 있는 많은 믿음의 보물들 중에 하나의 빛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루터와 칼빈만이 개혁주의의 선구자이며 현재 개신교 교리 체계를 정립한 위대한 신학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통주의를 보면 칼빈은 동시대 인물들처럼 그가 처한 상황에서 논쟁적인 사건과 신학의 체계화를 위한 기초 역할을 했을 뿐이지, 개혁주의 전통을 완성한 종결자가 아니다.

오히려 이 개혁파 정통주의 시대에는 칼빈을 뛰어넘는 위대한 신학자들이 있었고, 그들을 통해 종교개혁의 유산들이 잘 다듬어져서 우리에게까지 흘러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동안 17세기 정통주의는 많은 오해를 받아왔다. 17세기 신학은 종교개혁의 순수한 신학을 이어받지 못했고, 스콜라 철학의 영향으로 학문적이고 사변적인 신학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17세기의 역사적 상황과 학문의 방법론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오히려 17세기 신학은 16세기에 타락한 신학과 부패한 교회로부터 빠져 나온 종교개혁 신학을 더 발전시키고 체계화한 결과물들이다. 또한 이것은 인간 이성의 절대 우위를 강조하는 18세기의 계몽주의적 산물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이성을 바르게 활용하여 신학을 논리적이고 다채롭게 정립해 놓은 것이다.

필자는 이 책을 보며 그동안 부분적으로 알았던 정통주의의 흐름과 인물들을 시대와 나라별로 파악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저자는 실제 자신의 발로 땅을 밟고 눈으로 유물들을 보며 역사의 사진들을 글로 풀어 놓는다.

독자들이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가이드의 친절한 안내로 유럽을 신학사적으로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곳이지만 어느새 그 현장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고, 당장이라도 이 책을 들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프랑스 파리에 도착하여 시작한 여행은 파리에서 테오도르 드 베자를 만나고, 스위스 제네바로 이동하여 프랑수아 투레티니를 만난다. 그리고 취리히로 가서 요한 하인리히 하이데거와 만남을 가진다. 이어서 독일 하이델베르크 건너가 올레비아누스와 우르시누스를 만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작성 배경을 듣고, 프란키스쿠스 유니우스를 만나 그의 불우한 성장 배경과 순교자적인 삶의 이야기도 듣게 된다. 그리고 헤르본으로 건너가 요한 하인리히 알스테드를 만나 모든 것을 개혁하려는 그의 의지에 감동도 하지만, 너무 낙관적인 신학이라는 약점도 알게 된다.

도르트 회의
▲도르트 회의 기록화.
이어 드디어 네덜란드 우트레흐트로 이동하여, 젊은 나이에 도르트 총회에 파견된 히스베르투스 푸치우스를 만나고 그의 후계자들이 이론-실천 신학을 작성하고, 조나단 에드워즈가 극찬한 페트루스 판 마스트리히트를 만나게 된다. 그는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었고 연약한 육체와 불우한 환경 속에 있었지만 큰 은혜를 받아 교리가 건조하지 않고 성경을 통해 펼쳐지는 진리라는 것을 입증한다. 그리고 그의 후계자이자 코케이우스를 대항하여 논쟁하고 책을 펴낸 멜키오르 레이데커를 만나게 된다.

우트레흐트에서 레이든으로 옮기면, 언약신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요하네스 코케이우스를 만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레이든에서 영국 런던으로 이동해 청교도들을 만나는데,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스코틀랜드 대표로 참석한 사무엘 러더퍼드를 만나 왕권이 절대적이던 시절, 왕권을 견제하는 그의 급진적 신학을 맛보게 된다. 그리고 청교도의 황태자로 불리는 존 오웬을 끝으로 긴 여행은 마무리된다.

정통주의 시대는 신학이 사변적이고 철학적이라 인간의 본성과 타락한 이성으로 만들어진 신학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대는 거듭 말하지만 종교개혁의 신학을 이어받아, 그 신학을 더 풍성하게 펼쳐 놓은 전시장이다.

계몽주의 시대처럼 인간 이성의 우월성을 가지고 신학을 정교하게 다듬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참된 신학을 세워가는 숨결과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종교개혁 후 지속되는 탄압과 박해 속에서도 고결하고 순결하고 바른 신학을 지켜가는 순교자적인 정신을 볼 수 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지만, 신학의 제일 되는 목적 또한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그 신학의 아름다운 목적과 기능이 상실된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신학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고 인간이 하나님 안에 거하여 하나님을 향유하도록 하셨고, 이어 우리가 그 영광과 기쁨을 피조 세계와 인류 안에 드러내게 하셨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스런 본성과 타락한 이성이 세상의 쾌락과 일시적인 팥죽을 손에 잡아 영원한 영광을 내던져 그 신학의 고유함이 희미해져가는 것 같다.

신학이 무분별하고 약해지고 신학 무용론까지 말해지는 시대에, 이 책은 정통주의의 역사와 흐름을 보여주는 좋은 안내서가 된다. 무너져 있는 하나님에 대한 것과 인간의 존재와 교회와 역사를 바르게 알아가게 해주는 충분한 동기가 된다.

신학 무용론까지 설득력 있게 들리는 시점에, 하나님을 향하는 우리의 신학이 더 정교해지고 거룩해지며 우리의 마음 또한 더 순수해지길 바래본다. 정통주의 시대에는 귀한 믿음의 보물과 신학적 유산이 많이 담겨져 있는데, 그 길을 가는 시작점이고 지도가 되는 이 책이 정통주의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는 불씨가 되길 기대해 본다.

또한 신학에 대한 오해와 실망이 갈수록 심해지는 시대에, 역사를 통해 이어져 온 소중한 믿음의 유산을 우리가 잘 분별하고 계승해 나가는 도전이 되길 소망해본다.

신학의 가치가 갈수록 무의미해져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시대에, 이것을 바탕으로 바른 신학이 세워지고 교회와 사회와 가정에서 부패한 것을 도려내며 성경과 진리에 합당한 개혁의 물결이 일어나길 소망해 본다.

방영민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서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