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편지
학창시절 수련회에서 천사게임을 했습니다.

수련회 첫날 제비뽑기로 자신만의 천사를 뽑은 후 수련회 기간 내내
그를 위해 천사가 되어주는 게임이었습니다. 게임이 아니라도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에게 천사가 될 수도 악마가 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전화 상담원으로 봉사를 할 때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은데 털어놓을 상대가 없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옵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전화기를 댄 귀가 자주 뜨끈뜨끈해집니다.
온 몸이 비비 꼬이는데도 꾹 참고 듣다 보면 진심으로 좋아합니다.
한 번은 어떤 아주머니가 삶의 애환을 넋두리처럼 늘어놓는데,
네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이제 전화를 끊어야 할 시간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마지막으로 나에게 노래를 한 곡 불러 주겠다면서 '여고시절'이란 노래를 불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불렀던 노래인데 이제 남은 친구가
아무도 없다면서 고맙다는 인사로 통화를 마쳤습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찡했습니다.
천사가 되는 것이 결코 대단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작고 사소하지만 상대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이해해 주기만 해도 충분한 것 같습니다.
전화 한통으로, 혹은 따뜻하게 잡은 손만으로도
우리는 모두 천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은 시간이었습니다.

배경락/서북교회 담임목사

*교통문화선교협의회가 지난 1988년부터 지하철 역 승강장에 걸었던 '사랑의 편지'(발행인 류중현 목사)는, 현대인들의 문화의식을 함양하고 이를 통한 인간다운 사회 구현을 위해 시작됐다. 본지는 이 '사랑의 편지'(출처: www.loveletters.kr)를 매주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