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나님이 선택한 신앙인

입력 : 2018.09.08 19:33

이효준
▲이효준 장로.
선택(選擇)이란, ‘여럿 가운데서 골라 뽑는다’는 뜻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마 15:16)”.

구약에서도 ‘선택’이라는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 7:6-7)”. 사람의 숫자가 많고 적음, 사람이 잘나고 못나고, 지식이 많고 적음, 많이 가지고 적게 가지는 것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수많은 나병 환자들이 아니라, 수리아 땅 나아만 군대장관을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제2대 왕으로 세우실 때 이새의 집 형제들 중 7명의 큰 형들이 아니라, 막내인 다윗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애굽으로 팔려갔던 요셉을 통해 야곱의 가족을 구하고 민족을 구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예정하신 ‘선택’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갈릴리를 지나가시다 그물 깁는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을 선택해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세관 앞에 앉아 있는 마태 역시 ‘선택’하셨습니다. 이 밖에도 많은 사람들을 필요에 따라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음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실 때 조건을 달아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먼저 죄인들을 ‘선택’하셔서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는 한, 끝까지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성도들의 신실함을 통해 구원 계획을 세우시고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마태복음 15장 25절에는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부르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곧 그 전까지 우리는 ‘종’의 신분이었다는 말씀이 됩니다.

우리의 본질은 원래부터 ‘종’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후부터는 종이 아니라, 친구로 삼아주셔서 동등하게 불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들과 친구들의 차이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종’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의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하더라도,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지위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 세상의 종들의 기준과 달리, 앞으로 다가올 모든 일들을 낱낱이 설명해 주셨습니다.

다만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대해서만 자신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 날과 시간에 관해서는 아무도 모르나니 정녕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며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막 13:32)”.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간혹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는다는 착각입니다.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믿도록 이미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지키지 않는 자를 바로 처벌하지 않으시고, 그 불순종에 대해 세상 끝날에 함께 모아 심판하시는 것뿐입니다.

‘타작 마당의 비유’처럼 알곡은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태워 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당한 신앙인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하더라도, 진실이 없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선으로 인정하시지 않으십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심령 속에 예수님의 생명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있는 자가 알곡이요, 그 생명이 없는 자는 쭉정이며 가짜 신앙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주님이 언제 재림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아까운 이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마시고, 나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야 합니다. 생명이 있는가 아니면 생명이 없는가? 생명이 있는 자가 알곡이요, 생명이 없는 자가 쭉정이입니다. 내가 알곡인지 쭉정이인지를 다시 한 번 점검해서, 예수님께서 나를 ‘선택’하셨다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주님이 주시는 알곡의 선한 믿음으로 돌아와야 하겠습니다.

알곡은 고개를 숙입니다. 쭉정이는 고개를 치켜듭니다. 이는 바로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입니다. 그러나 겸손은 존귀함의 선봉이요 미덕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철저히 자신의 신앙을 관리해야 합니다. 그 첫째는 겸손입니다. 둘째도 겸손입니다. 겸손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들을 즐겨 찾고 좋아하시며, 교만한 자는 내치는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겸손한 신앙인들은 욕심과 명예, 불의가 없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겸손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교회의 지위를 통해,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무관하게 자신의 목적과 욕심을 채우기에 혈안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임을 명심 또 명심합시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당당하게 잘했다 칭찬 듣는 모든 신앙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선택은 자유이지만 부디 좁은 길을 선택하셔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편에서 선택하는 신앙인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이효준 은퇴장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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