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 기독문학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당신의 말을 잘 듣고 있으면 나의 인생이 얼마나 풍요롭고 명예로운지를 느낍니다. 당신은 나를 생각할 때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나의 이미지가 떠오르기만 하여도 노래 부르고 손뼉 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십니다.

거리에서 집안에서 일터에서 산책길에서 그러하고, 거실의 벽난로 옆이든 해변의 백사장이든 내가 서 있는 모든 곳에서 당신은 나를 경탄합니다. ‘넌 아름다워! 환상적이야! 놀라워!’라고.

그래서 나는 당신을 사랑이라 부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상이라고도 합니다. 시인 노발리스는 명명할 수 없는 그것을 ‘푸른 꽃’이라 하였습니다.

노발리스(Novalis)의 본명은 프리드리히 폰 하르덴베르크(Friedrich Von Hardenberg ,1772-1801)입니다. 독일 낭만주의 대표 작가인 그는 29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으며, <푸른 꽃>은 그가 남긴 마지막 작품으로, 작가의 사후 일 년 후 출간됩니다. 노발리스는 ‘새로운 땅을 개척하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 하인리히는 꿈 속에서 아름답고 신비로운 푸른 꽃을 봅니다. 꿈에서 깨어난 후에도 그 황홀한 감정에 도취됩니다. 그의 아버지도 예전에 비슷한 꿈을 꾸고 푸른 꽃을 본 적이 있지만, 별 거 아니라고 생각을 접었습니다.

얼마 후 하인리히는 어머니를 따라 외가가 있는 시골 마을로 여행을 떠나는데, 그 여정에서 신비로운 시인을 만나고 도착해서 마틸데라는 아름다운 소녀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하인리히는 꿈속에서 본 푸른 꽃의 이미지가 바로 시인이며 마틸데인 것을 압니다.

이런 의미에서 ‘푸른 꽃’ 이란 시나 사랑, 우주의 신비같은 언어의 종합적인 상징입니다. 낭만주의 작가들이 동경한 모든 것을 종합해서 집약한 언어입니다. 하인리히는 마틸데와의 사랑을 통해 집약된 언어를 형상화하고 동경을 실체화시켜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랑이야말로 세계사의 궁극적 목적이며 최고의 실재이며 근본이다. 연인이야말로 신과 나와의 중개자이며, 연인을 통해 신에 접근할 수 있다.”

외국 문학을 공부하던 때에, 나는 ‘푸른 꽃’을 읽었습니다. 이상, 꿈, 희망, 환상과 같은 낱말들은 푸른 꽃을 통해 익숙해졌습니다. 익숙해진 언어들은 무서운 흡인력이 있어서, 내가 푸른 가슴으로 이상의 푸른 별을 향해 나아가도록 자극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푸른 꽃’을 피우는 가슴 속에 머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꽤 오랫동안 푸른 꽃으로부터 삶의 기쁨을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푸른 꽃이 피어나는 공간은 늘 아름다움과 희망과 용기였습니다. 갈채를 받으며 솟아나는 무한의 힘이었습니다. 어쩌면 의지를 가지고 상상력의 높이와 감동의 힘을 믿는 모든 이에게 푸른 꽃은 사랑이며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시간이 깊어지면서, 푸른 꽃이 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은혜는 사랑의 순수성과 비슷하고, 이상이나 진리에의 동경과 같은 것이며, 모든 예술의 원형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은혜는 생명의 깊은 원천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으로 옵니다. 시로, 청춘으로, 새로운 땅을 개척하는 정신으로 옵니다. 두려움을 넘어서는 용기이며 모험심입니다. 그러한 순간에 우리가 느끼는 전율적 기쁨은 푸른 꽃을 닮아있습니다.

사랑은 은혜로 표현됩니다. 우리의 인간적 잠재력에 대한 관심이 깊고 진지한 사랑, 몸과 정신이 잠들어 있는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랑, 진실로 우리가 현재 보이는 것 이상의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랑은 항상 경탄합니다. ‘넌 아름다워! 환상적이야! 놀라워!’라고요.

어쩌면 문학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언어로 형상화하는 작업인지 모르겠습니다. 문학적 상상력으로 통합된 감수성 안에서, 그 깊이와 넓이를 더 크게 알아가는 것…, 이것이 내가 그 분께 바치는 선물입니다.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