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어떻게 좁은 길을 그렇게 가세요? “함께 걸으면…”

입력 : 2018.08.23 23:52

[유한승의 러브레터] 성도와의 삶, 그리고…

유한승
▲유한승 목사.
◈성도와의 삶

지난주에 이어 삶에 대해 나누고 있습니다. 먼저 예배자로서의 삶을 점검하면 꼭 필요한 것이 성도와의 삶입니다. 오늘은 성도와의 삶을 나누고, 다음주에는 마지막으로 결단과 다짐을 나누겠습니다.

1. 심방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말라. 그저 방문하고 찾아라. 때로는 가정 앞으로, 때로는 학교로, 때로는 그저 함께 밥을 먹으라. 성도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이야기하는 것이 참된 심방이다.

: 가정 안에 들어가 심방을 필요로 하는 옛 세대 성도님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에게는 그 형태로 하되, 여러 사정으로 가정 심방을 내키지 않아 하는 성도님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억지로 가정 심방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같이 한 끼의 식탁교제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고, 거기서 나온 이야기를 토대로 골방에 들어가 기도해 주는 것. 그것이 심방이어야 합니다.

2. 성도들에게 선물이나 식사 대접을 가급적 받지 않도록 한다. 정 받게 되더라도 카드나 편지, 혹은 정해진 금액 이상은 거절하도록 하라(1만원 이하로).

선물 자체에 담긴 마음의 중요함을 몰라서가 아니라, 가난해서 5천원 선물하기도 부담스러운 성도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함이고, 모든 성도를 동일한 마음으로 사랑의 빚을 진 목회자가 되기 위한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그 사람과 나의 관계에 사랑의 빚 대신 돈의 빚의 색이 짙어져, 성도를 바르게 가르칠 힘이 사라진다.

3. 눈물 흘리는 목사가 되어라. 눈물이 사라지는 순간은 위험한 순간이다.

: 봉사활동을 가면 보는 풍경이 있습니다. 가슴 벅차 하고 웃는 얼굴이 보이는 반면, 정반대로 아무 표정 없이 일하는 경우를 봅니다. 똑같은 장소, 똑같은 일임에도 웃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다른 게 아니었습니다.

처음 이 일을 하는 사람은 힘든 일인데도 오히려 보람 있어하며 웃지만, 반복하는 사람은 그게 말 그대로 일이 돼서 그런지 기쁨이 사라졌습니다. 후자는 위험합니다. 목회는 눈물 흘리는 일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목회가 성도들의 이런 저런 이야기들로 눈물 흘릴 일이 많다면, 그 목회는 살아있는 것입니다.

4. 몸이 아프고 힘든 순간이라도, 성도들 앞에서는 늘 웃고 당당하라. 늘 활짝 핀 꽃이 되어, 험한 세상에서 견디고 있는 성도들에게 위로의 향기가 되어야 한다. 절대로 성도들 앞에서 힘들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라. 주님은 그런 나에게 감당할 힘을 넉넉히 주실 것이다.

: 저는 어린 시절 5살 ‘꼬마 목사’의 사진을 보면서, 항상 도전받습니다. 어쩜 이렇게 힘들텐데도 웃고 있을까요? 성도들은 세상에서 모진 풍파와 도전 앞에 거칠어진 영육을 부여잡고 교회에 옵니다. 그들에게는 목회자가 힘들어하는 표정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또 다른 짐이 됩니다.

목회자는 정말 기뻐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도 활짝 피어 있어야 합니다. 때로 육신이 힘들고 지쳐있다 해도 기뻐하는 나에게, 주님은 정말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5. 성도들 앞에서 잘난 것은 숨기되, 연약한 것을 자랑하라. 사도 바울이 사탄의 가시를 자랑했던 것은 연약함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케 됨을 믿었던 것임을 기억하라.

: 세상은 잘나 보이는 것을 자랑하며 자신을 알립니다. 그러나 복음은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짐을 내가 대신 져서 구부정해진 허리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대신하여 내가 찢기고 피흘리며, 꼼짝 못하게 된 십자가에 달린 나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지하에 있습니다. 세례 교인 성도 30-40명 안팎의 자립한 교회임에도, 여전히 지하 셋방살이를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지하에 물이 새고, 방 하나는 곰팡이가 핀 벽과 천장을 뜯어내고도 여전히 고치지 못한 상태입니다. 담임목사인 저는 흉수 1-2레벨의 하반신 마비 장애인입니다.

우리 교회는 오랜 분쟁도 겪었습니다. 여러 형태의 아픔들을 대부분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 연약함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충만히 함께 하심을 저는 믿습니다.

6. 부족한 성도들을 보더라도 나무라지 말라. 조용히 집에 와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라. 목사가 해결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해결하는 것이다. 내 감정과 지성으로 사람이 바뀌는 곳은 학교이고 강연장이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영으로 사람이 바뀌는 곳이다.

: 부족한 성도들을 만난다기보다, 성도들이 때로 부족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가르치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전에 먼저 위로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돌아가 골방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의 본질적 아픔은 내 말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7. 주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성도들의 주중 시간을 보장하라. (주일을 준비하며 섬기는 토요일을 제외한 평일에는 될 수 있으면 모이지 않도록 하라.)

: 목회자가 성도들을 말씀으로 깨닫게 하며 본을 보여야 하는 자리라면, 성도들은 세상에서 제사장답게 살아야합니다. 세상을 거룩하게 만들어야 할 또 다른 목회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 공예배와 수요·금요 예배처럼 공적 예배의 자리는 장려하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봉사를 위해 모이는 것은 좋지만, 매일같이 교회에 모이는 등의 모습은 오히려 세상과 교회를 분리시키는 분열을 가져오게 됩니다.

8. 목회를 하면서 성도들을 위해 지갑을 아끼지 말라. 성도를 위해 쓴 돈은 하나님이 모두 갚아주심을 믿으라.

: 부모님은 돈을 벌어서 아낌없이 자녀들에게 부어 주십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을 자녀처럼 생각해야 합니다. 한 가족처럼 생각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받는 사례비는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린 헌금 중 일부입니다. 그러므로 그 금액을 사용하는 우선순위 역시 성도들에게 향해야 합니다. 비록 그로 인해 빈털터리가 되더라도, 자녀를 위해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부모님처럼, 성도를 위해 가난해진 목사는 하나님이 사랑하고 성도들의 사랑으로 먹고 살게 됩니다.

9. 모든 성도를 위해 혼자가 될 수 있다면 혼자가 되어라. 괜찮다. 그만큼 주님께서 나와 동행해 주신다.

: 아무리 목사가 성도들과 균형을 맞추어 만나려 해도 그럴 수 없습니다. 주일 식탁을 돌아가며 함께한다 해도, 소외되는 사람이 꼭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차라리 육신적으로 보이기에 홀로 될 수 있어야 합니다.

10. 목사건 전도사건 성도들의 삶을 다 알 수 없다. 성도들의 삶을 먼저 알려 하지 말라. 알지 못하더라도, 먼저 진심으로 기도해 주는 목회자가 되어라. 그때 성령이 역사하심을 잊지 말라.

: 마치 호구조사하듯 가정 형편을 다 알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가정에 또 다른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또 성도 가운데 가정 형편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시지 않습니까? 만약 성도 가운데 고민이 있고 기도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면, 아니 그 표정만 보더라도 그의 아픔을 눈치채고 기도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11. 누군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사람을 버리는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는 가룟 유다와 마주한 최후의 순간까지도 “한 사람도 잃을 수 없다”고 선언하셨음을 잊지 말라.

: 목회를 하면 말 안 듣는 사람이 꼭 생깁니다. 목회를 하면 ‘이 사람은 정말 차라리 없었으면’ 하는 경우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버리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예정된 일이었음에도 가룟 유다를 사랑했었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말 안 듣고 상처를 주는 성도를 만났을 때는 애타는 마음으로 오히려 ‘하나님이 아직도 사랑이 부족한 나를 위해 예비하신 귀한 도구’임을 깨닫고 기도해야 합니다.

12. 성도들에게만큼은 언제나 한가해야한다. 누구라도 연락이 오면 만날 수 있도록, 성도들을 만날 시간을 늘 비워두라. 목회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는 성도를 위한 삶의 여백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다고, 자기 시간으로 늘 채워놓지 말아라. 바쁜 척 하지 말라. 성도들이 목사가 바빠서 꼭 그날 해야 할 말을 못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 가끔 성도들이나 청년들이 “목사님 언제 시간 되세요?” 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항상 이렇게 대답합니다. “언제든 되지요. 저는 정말 한가해요.” 시간을 비워두는 이유는 다급한 상황에서 성도들 가운데 누구라도 만날 수 있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성도와의 약속은 모든 일에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13. 자신이 성도들에게 잘해준 것을 기억하게 하지 말라. 하나를 베풀 때마다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음을 늘 각인시키라. 그래서 성도들에게 개인적인 은혜는 남지 않도록 하라.

: 성도에게 목사는 의지하고 싶은 존재이고 감사한 존재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반복되면, 성도에게는 예수가 사라지고 목사라는 직분과 위치만 남습니다.

성도에게 선물을 주거나 식사를 대접할 수도 있습니다.혹은 그 외에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이것이 얼마나 변변찮은 것이고, 누구라도 쉽게 하는 일임을 상기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개인적 은혜가 남지 않도록 철저히 지워가야 합니다.

14. 떠나려는 성도가 있으면 먼저 최선을 다해 기도하라. 그러나 붙잡지 말라. 내 부족함 때문임을 인정하고 사랑하라.

그리고 더욱 더 목사답게 살아라. 집 떠난 아들이 아버지 집이 떠올라 돌아올 수 있도록, 언제든 아버지 집답게 가꾸며 목사답게 살아라. 그러면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된다.

: 저와 관련된 일이 아니었지만, 교회 자체에 대한 판단, 그리고 가정의 이유 등으로 떠났던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그 판단이 목회자로서 보기에 바른 이유는 아니었지만,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같은 목사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목사의 직분을 내려놓고 섬겼습니다.

작년, 성도 분은 이렇게 이야기하며 떠났었습니다. “목사님 왜 다른 교회 목사님을 여기 모셔서 설교를 듣습니까? 목사님 보러 왔는데요.” “목사님. 우리 교회 형편도 어려운데 왜 자꾸 남한테 퍼줍니까? 우리 교회 먼저 고치고 살아야죠.”

작은 교회 입장에서 한 성도를 놓치면 참 아픕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허리띠를 졸라매고 더욱 더 목사답게 살려고 합니다. 다시 지치고 지쳐 돌아올 때 가장 먼저 멀리서 알아보고 달려가 안아줄 수 있도록 살고 싶습니다.

결국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사람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올바른 목회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먼 발치에서 집 떠난 아들이 돌아올 것을 기다리며 바로 알아채고 달려가 안아주던 아버지처럼, 늘 떠난 이를 위해 기다리고 기도하며 무엇보다 그 아들에게 필요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15. 성도들이 평신도가 아님을 강조하라. 성도는 만인제사장이다. 그들이 그 직분을 회복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 그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자신의 직위를 걸 수 있어야 한다. 평등하고 동등한 관계로 돌아가도록 노력하라.

: 평신도가 아닌 ‘성도’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성도로 하여금 만인제사장으로서의 권위와 책임성을 회복시키는 것이 목회자의 역할입니다. 그것을 위해 목회자가 교회내의 권위가 떨어진다 해도, 성도와 평등함과 동등한 관계로 돌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 아래 모두 동등한 관계. 그것을 일굴 수 있는 유일한 곳이 교회여야 합니다.

16. 성도에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임을 인식시켜야 한다. 주 안에서 하나된 가족이 되지 못한 성도가 모인 교회는,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 하나님이라는 아버지 안에서, 우리는 ‘우리 아버지’라고 주기도문을 하듯 하나님의 아들딸이고 형제 자매가 됩니다. 성도와 한 가족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 목사부터 자기 가족 중심의 신앙 공동체 생활을 탈피해야 합니다. 반대로 공동체 중심의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던 이유,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명하셨던 하나님이 왜 ‘여호와 이레’의 복을 말하셨는지, 왜 예수님께서 마른 손을 고칠 때 그를 찾아온 부모와 동생들이 왔다는 소식에 ‘도대체 누가 내 가족이냐?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가 내 부모고 가족이다’고 하셨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독신목회를 선언하였습니다. 저를 돕는 사람은 부모님이나 누님들, 가족이지요. 담임이 되면서 가장 먼저 부모님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무조건 교회 위해서 하나되고 헌신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감당하기 힘듭니다.”

“그래 그렇게 하자” 결단했음에도, 이후 가족들과 치열하게 토론할때가 많았습니다. 그게 참 피곤한 일입니다. 지지받는 일보다 오히려 설명하고 토론해야 될 일이 많았으니까요. 혈육의 가족은 가장 먼저 걱정하는 것이 혈육적인 부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적 부분, 아니 좀 더 정확히 우리 교회 공동체의 건강함을 위해 양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것이 우리 가정에도 복이 됨을 저는 압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 중심의 우리 가정이 되지 못하고, 가족 중심의 공동체로 변질될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17. 때로는 성도들에게 “왜 저렇게까지 작은 것을 지켜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작은 삶의 부분에 있어 철저하라. 큰 것은 누구나 잘 지킨다. 그러므로 사탄은 작은 것으로부터 무너뜨린다. 작은 것에 철저해 믿음이 연약한 자의 믿음을 지켜주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 사탄은 큰 것으로 공격하지 않습니다. 큰 것이야 긴장하고 누구나 다들 잘 지킬 수 있지만, 생각보다 작은 것들에 무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교회 식구들에게 약속한 자잘한 것들이 있습니다. 10년 목회 기간을 정하고, 위임목사를 스스로 거절하며, 3년 재신임 제도를 구태여 둔 부분 등은 얼마든지 노력하여 정할 수 있었지만, 그보다 작은 부분들이 더 지키기 힘이 듭니다.

1만원 이상 선물을 거절한다든지, 11시 예배 후 식사 시간에 주로 혼밥을 한다든지, 심방갔을 때 심방헌금을 받지 않는다든지, 개인적으로 주시는 어떤 돈도 받지 않는다 등은 때로 지키기 힘이 듭니다.

얼마 전 CTS 기독교방송 출연 후 전화가 왔습니다. 부산 해운대에 거주하시는 고신대 신대원 1회에 졸업한 대선배의 사모님이셨습니다. 연세가 87세나 되셨답니다.

그 분께서 제가 나온 ‘땅끝으로’ 방송을 보신 뒤, 수소문하셔서 직접 전화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제게 후원금을 직접 보내주고 싶은데, 계좌번호를 알려달랍니다.

저는 우리 학교의 통장 계좌를 알려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아니 그것 말고 목사님 것이요”라고 하십니다. 제가 개인적으로는 이미 사례비를 받는 교회가 있기 때문에 받을 수 없다고 공손하게 설명을 드리자, 사모님은 사례비가 얼마냐 물으셨습니다. “105만원 받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류 목사님. 바른 모습으로 목회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요. 그런데 내가 잘 알아. 그 돈으로는 턱도 없어요. 목사님 아내분도 없으시다면서요. 그러니 내가 누구보다 목사님 마음 잘 알아. 목사님한테 후원하고 싶어 전화한거예요. 계좌번호 꼭 불러주세요. 많지 않지만 내가 10만원 후원할게.”

87세 되신 할머님이자. 신학교 대선배이신 분께서 너무나 정중하게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미 교회와 달꿈 아이들 밥값등으로 지출된 카드값이 연체된 상황이었으니, 어쩌면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나보다 생각할 수도 있었지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사모님, 제 형편을 이해해 주시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성도들에게, 그리고 하나님께 약속했습니다. 이미 몸담은 교회에서 주시는 사례비로 충분한 사람이 되기로 말입니다. 제가 형편이 어렵다고 받기 시작하면 그 약속을 어기는 것이고, 이로 인해 성도들이 시험에 들까봐 저는 그것이 두렵습니다. 사모님, 그리고 저희 학교 아이들이 배부르면 제가 배부른 것과 같습니다.”

사모님은 그 일을 두고 일주일을 저와 씨름한 뒤 항복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류 목사님, 참 고맙소. 바른 마음으로 이렇게 목회해 줘서 참 고맙소. 내가 늙어서 이제 서울에나 이런 데는 잘 못 가. 하지만 죽을 때까지 학교에 10만원씩 후원할게. 만약 후원금이 끊기면 내가 죽은 줄 아세요. 알았지요?”

사모님이 다시 당부하셨습니다. “목사님, 목사님, 돈 필요하면 꼭 전화 주세요. 아셨지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87세 대선배이신 사모님은 어쩌면 제 믿음을 테스트하기 위해 보내신 하나님의 사자였나 봅니다.

◈맺음말

한 청년 신학도가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좁은 길을 그렇게 가세요?”

그래서 답했습니다. “좁은 길이기는 하지요. 그런데 함께 걸으면 좁지 않아요. 그 길은 함께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넓어지는 길이에요. 걸어보면 압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는 것을.”

여러분, 삶이라는 것은 우리 의지와 노력으로 살아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 그리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살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예수가 걸어가신 길을 뒤따라 가면 됩니다. 그래서 사실 결단하면 어렵지 않습니다. 내 의지와 노력으로 걷는 것이 아니고, 내가 새롭게 창조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지요. 걷다 보면 압니다. 누군가가 이미 걸었던 길, 수없이 많은 예수를 따른 흔적이 있는 길이라는 것을요.

지금 쓰고 전하는 목회 철학과 자기 점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청년 시절, 이재철 목사님의 자기관리 노트 33개 조항이 적힌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설교 가운데 그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청년 시절 저도 노트 하나를 꺼내 적거나 매년 그 조항을 지켜갔는지 점검하고 업데이트 해왔습니다. 제 것이 될 수 있도록 다듬어 왔습니다. 그러니 2018년 현재 A4 40장 가까운 분량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다시 느끼는 것은, 이 모든 것들 중 실상 새롭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누군가가 걸어가셨던 길입니다. 그 분들의 발자국은 이미 예수의 발자취를 좇았던 발자국입니다. 저는 그 발자국이 희미해지지 않도록, 그저 다시 한 번 디뎌줄 뿐입니다. 그래서 저 이후 또 이 길을 걸어가는데 어렵지 않도록 돕는 통로일 뿐입니다.

이 편지를 받는 여러분. 꼭 한 가지 당부드리면, 이 편지를 통해 제가 아닌 예수의 발자취를 생각하고 말씀이 육신 되어 걸어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길 위로 한 걸음씩 살아가는 능력이 충만해지기를 축원합니다.

유한승 목사(서울 정릉 생명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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