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이승훈
▲남강 이승훈 선생.
1915년 2월, 꽃샘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 남강은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그는 옥중에서도 한시도 잊은 적 없는 오산학교를 찾았다. 모두의 피와 땀이 어려 있는 교정, 형제나 다름없는 교사들, 자식과도 같은 학생들을 본 그는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다. 자기가 없는 동안 고난을 견디며 학교를 지탱해 준 이들이 눈물겹게 고마웠다.

남강은 교사와 학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당부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추운 바닥에서 자면서 학교 꿈을 여러 번 꾸었어요. 선생님과 학생들이 가르치고 배우는 얼굴이 떠올랐지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 영광된 나라로 만드는 것이외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해외로 나가는 것도 필요하고, 세계의 여론을 일으켜 우리에게 유리하게 이끌어 지원을 얻는 것도 필요하고, 군대를 육성하여 공격하는 것도 필요해요.

하지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성하여 밝고 덕 있고 힘 있는 인간이 되는 게 급선무지요. 10년 된 병에는 10년 된 쑥이 약이 되는 법이오. 만약 이 쑥이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모아야지요.

나는 학생 여러분들이 방방곡곡으로 흩어져 국민 속으로 파고 들어가 그들을 깨닫게 하고 그들의 힘을 길러 민족 광복의 진정한 기틀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일본의 횡포는 극에 달한 상태였다. 강제로 남의 땅을 빼앗아 다스리려 하니, 총칼을 앞세워 발악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온 나라 구석구석에 밀정을 풀어 일거수일투족 빈틈없이 감시하고,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즉시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었다.

총독부는 이미 전에 조선감옥령을 공포했었다. 날이 갈수록 법 조항은 더욱 엄하고 살벌해졌다. 경성을 비롯하여 삼천리 방방곡곡에 감옥이 들어섰다. 그리하여 아무 죄 없는 사람까지도 자기들 눈에 거슬리면 쥐새끼 잡듯 붙잡아 감옥 속에 처넣어 버렸다.

식민지는 지옥이었다.

시기에 따라 강온 전략을 번갈아 구사하긴 했지만, 강점기의 모든 기간에 걸쳐 일제는 친일파를 제외한 모든 조선인을 짐승처럼 취급했다.

여기서 잠시 그들의 죄악상 중에서도 천인공노할 만행 몇 가지만 살펴보고 넘어가자.

일본은 안산시 단원구 선감도(仙甘島)에 선감학원을 세웠다. 그것은 조선총독부가 관리하는 8-17세 정도의 부랑 청소년 교화시설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독립투사의 자손이나 부모가 없는 어린 아이들을 잡아와 수감한 뒤 혹독한 노동과 훈련을 시켜 가미가제(神風) 등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쓰거나 또는 군수공장에 보냈던 악명 높은 강제수용소였다.

일본은 또 수많은 조선인을 강제로 징용해 부려먹었다. 처음에는 조선의 값싼 노동력을 모집하여 일본의 토목공사장이나 광산에서 집단노동하게 했으나 차츰 징용령을 실시해 강제동원에 나섰다.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은 식민지 전기간에 걸쳐 5백만 명이 넘었다. 그들은 주로 탄광이나 군수공장에서 가혹하게 혹사당했다.

수많은 조선인이 일본에 의해 땅과 집을 빼앗기곤 북간도나 만주 등으로 떠나야 했다. 괴나리봇짐을 메고 어린 자식을 업은 채 산 설고 물 설은 이국 땅으로 향할 때 이제 다시 못 올 조국을 생각하면 어찌 눈물이 흐르지 않으랴.

뿐만 아니었다. 훗날 일본은 여자정신대 근무령을 공포한 뒤 12세에서 40세까지의 여성 수십만 명을 강제로 끌고 가 군수공장에서 일하게 하거나 군대의 위안부로 보내는 만행을 저질렀다.

들녘에서 쑥을 캐거나 집에서 일하다가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조선 여성들은 각 지역의 여관이나 창고 등에 감금되었다가 목적지로 수송되었다.

조선 여인들은 군병참부의 책임 아래 군용 화물열차나 수송선으로 목적지로 옮겨졌으며 하나의 화물로 취급되었다. 먼 남양군도로 끌려가던 조선 여인들은 수송 도중 미군의 폭격으로 수송선이 격침되어 수중고혼이 된 예가 부지기수였다.

또 일본은 만주에 731부대를 세우고 독립운동가들을 생체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살아 있는 사람의 팔다리를 냉각기에 넣고 얼린 다음 쇠막대로 쳐서 부러뜨려 보기도 하고, 원심분리기에 넣어 급속히 돌리기도 했다. 그러면 사람의 눈알이 튀어나오고 살갗이 터져 피가 분수처럼 뿜어 나왔으며 급기야 내장들이 파열되어 쏟아져 나왔다.

그뿐만 아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을 해부대 위에 꽉 묶어 놓고 반쯤 마취시킨 다음 메스로 배를 갈랐다. 그러곤 심장, 폐, 간, 위장 등을 차례로 들어내면서 인체의 반응을 살폈다. 내장을 다 비웠는데도 인체는 아직 꿈틀거리고 있었다.

동경제국대학 등에서 공부한 일류급 의학자들은 이번엔 인간 마루타의 두뇌가 어떤지 연구하려고 톱으로 갈라 쪼개었다. 그리고 대뇌와 소뇌와 전두엽 따위를 하나씩 꺼내어 반응을 살폈다. 그러면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며 낄낄 웃어대는 것이었다.

마취된 채 누워 있는 속이 텅 빈 인체는 아직 완전히 죽은 건 아니었다. 만약 마취 시간이 끝나 그 인체가 깨어난다면 어떻게 느낄까? 자신의 텅 빈 육체를 보며 그는 울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김영권 남강 이승훈
▲김영권 작가(점묘화).
일제가 식민지의 백성에 대해 하는 짓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인의 민족정신을 빼내어 없애 버리는 것….

김영권 작가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작가와 비평>지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成功狂人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어린이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 <지푸라기 인간>과 청소년 소설 <보리울의 달>, <퀴리부인: 사랑스러운 천재>가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보통 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

*이 작품은 한국고등신학연구원(KIATS)의 새로운 자료 발굴과 연구 성과에 도움 받았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