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왕철
▲지왕철 대표회장. ⓒ크리스천투데이 DB
왜 서구기독교가 죽었을까? 소위 역사적 보수가 지니고 있는 치명적인 한계성과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보수라고 내세웠다가 거듭해서 참패를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기독교가 자랑하는 보수를 내세워 대항하였지만 이 싸움에서 기독교는 연전연패였다. 한번도 이긴 적이 없다. 역사적 보수교리가 안고 있는 치명적인 문제점들을 명석하게 제기하는 서구 지성들의 질문 앞에 결정적으로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위임받은 세계적인 기독교 최고의 박사들조차 그들의 질문 앞에 입을 다물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서구 유럽에서의 기독교의 문화의 쇄락과 죽음은 여기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서구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 정통성을 자랑하던 하버드, 예일대, 프린스톤의 자유주의화가 이같은 논쟁에서 보수의 참패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 결과는 비참 그 자체였다. 분명한 사실은 성경이 말하는 원형과는 무관한 일임에도 이것으로 치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이 기독교의 희망이며 그 대답은 성경의 원형찾기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참패의 역사 이면에 기독교의 원형찾기가 있다. 기독교인들의 이러한 역사적 교리의 참패 뒤에는 기독교의 진정한 원형이 무엇이냐라는 시도가 끊임없이 시도되었다. 자유주의나 진보주의, 세속화 신학, 해방신학, 민중신학 등이 있다.

하지만 이같은 시도들은 성경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오히려 역사적 보수가 가지려는 신앙보다 더욱 큰 혼란에 빠트리고 말았다. 정통교리가 노출시키는 약점에 사람들은 진보신앙 계열로 뛰처 나갔는데 나가서 보니 성경과 더욱 멀어지는 현실을 목격하고 무신론자나 무종교주의로 빠지는 사람들이 많았고 일부는 다시 보수성을 말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지만 그것도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원형을 찾아내지 못하였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이다.

즉 역사적 보수의 조건은 성경이 말하는 보수원형의 지지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지니고 있어야 하는 역사적 보수 조건은 성경을 말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지켜내는 보수가 아니면 그것은 보수가 될 수 없다. 보수의 이름을 가졌다고 다 보수가 아니다. 과연 성경의 지지를 받을 수가 있느냐 하는 것이 핵심이다. 성경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면 그것은 성경을 위한 보수라고 할 수 없다.

서구 기독교가 절대적으로 의존하였으나 결국 기독교회를 지켜내지 못한 역사적 보수는 그 어떤 대상이든 검증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

지왕철 대표회장(성경원형(본질)회복운동, 전 사단법인 한국기독교보수교단협의회 대표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