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욥기 3장 강해

요절: 하나님에게 둘러 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23절)?

욥은 엄청난 고통 중에 있습니다. 욥은 고통 중에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였습니다. 그는 고난 중에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하나님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깨달으면서, 앓는 소리를 내며 고통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받는 자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통하여 큰 위로를 얻습니다.

1. 생일을 저주하는 욥

우리는 대부분 생일을 축하합니다. 가족들, 친구들이 모여서 케이크를 사놓고 생일축하의 노래를 부릅니다. 자녀를 위하여 오래 기도하다가 아기를 잉태하면 모두가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1-9절에 보면 욥은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고, 자신이 잉태된 밤을 저주합니다. 욥은 친구들이 온 7일 후에 자신의 생일이 멸망하고, 그 날이 캄캄하였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 날을 돌아보지 않고 빛이 비치지 않고 어둠과 죽음의 그늘이 비치고, 구름이 덮이고, 해와 달이 멈추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어머니가 자신을 임신하지 않고 해산의 기쁨이 없고 그 밤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별이 어둡고, 해가 뜨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차라리 죽어 나왔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태어나 사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자신이 잉태되고 태어난 그 날을 저주합니다.

2. 환난을 보는 욥

10-12절에 보면 욥이 생일을 저주하는 이유는 태어나서 많은 환난을 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재산을 잃을 때 뼈아픈 고통을 느낍니다. 자녀가 아버지보다 먼저 죽으면 부모의 가슴에 무덤을 쓴다고 합니다. 욥은 재산을 다 잃고, 7남 3녀의 모든 자녀를 잃었습니다. 육신의 고통은 시시각각으로 그를 고통스럽게 하였습니다.

그는 태어나 사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우리도 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우면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어요? 왜 내가 죽지 않았어요?’ 라고 말합니다. 사는 것이 힘들어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환난을 보지 않고 죽는 것도 복입니다. 요시야 왕은 유다의 멸망을 보지 않고 죽는 복을 받았습니다. 욥은 죽지 않고 태어남으로 환난을 보는 것을 탄식합니다. 어머니가 낳을 때 자신이 죽지 않은 것을 탄식합니다. 조산모가 자신을 받은 것을 탄식합니다. 어머니의 젖을 빨고 지금까지 자란 것에 태해서 탄식합니다.

그는 사는 것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워, 이제는 태어나 성장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정도 차이가 있지만 우리가 사는 것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석가모니도 생로병사가 고통이요 우리 인간은 백팔번뇌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김소월도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라는 시를 썼습니다.

3. 쉼이 있는 낙원

13-19절을 보면 욥은 현실이 너무 힘들자 저승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 낙원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곳에는 휴식이 있고 삶에 평안이 있습니다. 그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는 허물어진 성터에 궁궐을 세웠던 지상의 왕들과 고관들과 나란히(!)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황금을 자랑하고 은으로 집을 채웠던 성주들과 나란히!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곳은 권세도 물질도 아무 소용이 없는 나라입니다. 그는 낙태된 아이처럼, 세상 빛을 보지 못한 아기처럼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욥에게는 이 세상의 삶이 지옥이고 반대로 태어나지 않은 삶이 낙원이었습니다. 욥은 계속하여 거기 낙원을 소망합니다. 낙원에는 악한 사람들도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못합니다. 삶에 지친 사람들도 쉴 수 있는 곳입니다. 그 곳은 갇힌 사람들도 함께 평화를 누리고, 노예를 부리는 감독관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입니다.

그 곳은 낮은 자와 높은 자의 구별이 없습니다. 평등한 나라입니다. 종들까지도 주인에게서 자유를 얻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휴식이 있고 평화가 있습니다. 그곳은 구속도 불평등도 없습니다.

욥은 현재 매우 피곤하고 지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질병에 구속받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에 얽매어 있습니다. 그는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삶의 너머에 있는 낙원의 평안을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고통이 많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하여 이 땅에서 천국을 맛보지만, 그래도 이 세상의 삶은 고통입니다. 우리는 추위와 더위가 있는 세상에 살아야 합니다. 연약한 육신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죄와 사단의 유혹을 받습니다. 늙고 병들어야 합니다.

이 세상은 생로병사의 고통이 있습니다. 먹고 사는 고통, 인간관계의 불화에서 오는 고통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현실이 어려울수록, 죽음 너머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같은 믿음이 있는 사람도 탄식하며 하나님 나라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4. 낙원을 갈망하는 욥

20-22절에 보면 욥은 고난당하는 자들을 태어나게 하셔서 빛을 보게 하시고, 이렇게 쓰디쓴 인생을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탄식합니다.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들은 죽기를 기다려도, 죽음이 찾아와 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자살하는 죄를 짓지는 못합니다. 고통하는 그들은 보물을 찾기보다는 죽기를 더 바라고 있습니다. 무덤이라도 찾으면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합니다. 무덤을 빙빙 돌면서 춤을 추겠다는 말입니다.

욥이 지금 심히 기뻐하는 것은 죽음입니다. 그는 죽음을 보화보다 더 갈망합니다. 무덤에 가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는 죽음을 심히 기뻐할 만큼 삶이 심히 슬펐습니다. 그는 자살하지 않고 간절히 낙원을 소망합니다.

5. 하나님께 둘러싸인 욥

“하나님에게 둘러 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23절)?”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생명을 둘러싸고 죽지 못하도록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통 하나 하나를 통하여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매우 가까이서 자신을 붙잡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단이 병을 주어도 생명은 해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자신의 생명을 붙잡고 계신 그 하나님을 보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욥을 신뢰하시는 하나님, 욥을 잘 아시는 하나님, 욥을 자랑스러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둘러싸고 계심으로 고통을 참고 인내할 수 있었습니다.

6. 앓는 소리를 내는 욥

“나는 음식 앞에서도 탄식이 나며 내가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 같구나(24절)”.

욥은 밥상을 앞에 놓고도 탄식이 나고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는 끙끙 앓으며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하나도 힘이 없었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아무 죄도 없이 고통을 당하셨습니다(시 22:17). 다윗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물같이 쏟아졌다고 예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물이 쏟아짐과 같이 십자가에서 고통하였습니다. 욥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아무 죄가 없이 물과 같이 쏟아지는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예수님과 욥의 고통이 다른 점은, 예수님은 대속의 고통이고 욥은 순수한 믿음의 예가 되는 고통이요 연단을 위한 고통입니다. 욥의 고통은 고통받는 자에게 위로를 주는 고통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당하는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하는 욥을 볼 때 나의 고통은 별 것 아니라는 위로를 받습니다.

오요한
▲오요한 목사.
7.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찾아옴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25, 26절)!”

욥은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그것이 지금 자신에게 임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는 과거에 두려워하고 무서워한 것이 현재 임하였다고 합니다.

우리의 현재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이 미래에 임합니다. 사단은 우리를 공격하기 전에 먼저 두려움을 심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두려워하지 않고 아름다운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아름다운 소망을 갖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아름답게 될 것입니다.

8. 고통 중에 둘러싸신 하나님

결론적으로 욥은 하나님께 둘러싸여 엄청난 고통을 받습니다. 그의 고통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현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고통을 인내합니다.

욥의 고통은 많은 사람에게 위로를 줍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통해 위로를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셔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로하게 도우십니다.

우리는 고통을 인내함으로 위로의 목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 중에 나를 둘러싸고 계신 하나님을 알고 그 고통을 견뎌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오요한 목사(천안 UBF, <오요한 목자의 로마서 강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