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슈테판 볼만 | 조이한·김정근 역 | 웅진지식하우스 | 264쪽 | 16,000원

1.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는 13세기 그려진 성경을 든 성녀 마리아에서 21세기에 제작된 『율리시즈』를 읽고 있는 마릴린 먼로에 이르기까지, ‘책 읽는 여자'를 그린 그림들을 시대별로 모아 간략한 설명을 덧붙인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책 읽는 여자를 주제로 한 명화들을 한데 모아놓은 화보집만은 아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특정 시대마다 어떤 여성들이 무슨 목적으로 책을 읽어 왔는지, 그리고 ‘여성의 독서 행위’와 그 의미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각 시대를 대표하는 그림들을 통해 흥미롭게 보여준다. 따라서 이 책은 ‘독서하는 여성을 주제로 한 미술사’인 동시에, ‘미술을 통해 본 여성 독서의 문화사’이기도 하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중세의 경건한 책 읽기.
2. 저자에 따르면 16세기 이전까지 신의 은총과 정신적 권위를 담은 그릇이었던 책, 그 중에서도 책 중의 책인 성서는 전통적으로 남성의 손에만 들려 있었을 뿐 여성이 독서한다는 것은 극히 드물고, 심지어 위험한 일이었다(1장 진리가 담긴 그릇- 은총을 받은 독서가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공동체의 통제에서 벗어나 오직 자신만의 세계 안에서 조용히 책을 읽기 시작한 여성들은 전통적 관점이나 남자의 세계상과 일치하지 않는 자기 나름의 세계상을 만들기 시작했다(2장 내밀한 순간- 책에 매혹된 여자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근대의 내밀한 책 읽기.
로코코와 계몽주의 시대에 가볍게 손 안에 놓일 정도로 작아진 책은 사적 생활을 제공하는 새로운 소일거리 중 하나로 등장했으며, 남성과 여성이 즐거움과 개인적 자유를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다(3장 즐거움이 머무는 곳- 책 속에서 꿈을 꾸는 여자들).

낭만주의 시대에 독서는 개인의 감정을 고양하거나 정서적 삶의 지평을 넓히고 탐구하는 행위가 되었으며, 종이에 옮겨진 다른 사람의 감정 속으로 자신의 감정을 옮겨놓는 것을 의미했다(4장 열락의 시간- 책을 읽는 감수성이 예민한 여자들).

이때, 열정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은 보바리 부인처럼 독서와 삶을 동일시하는 유혹에 쉽게 굴복하며, 이는 책에서 치유력을 빼앗고 열정에서 고통의 원인을 만들어내게 된다(5장 자신을 찾아서- 열광적으로 책을 읽는 여자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현대의 고독한 (책) 읽기.
20세기에 들어와 책은 대량 생산품이 되었고 여성은 책을 더 많이 다른 방식으로 읽게 되었으며, 고독한 여자는 책에서 삶의 중요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거나 그 안으로 짧은 도피를 행하기도 한다(6장 짧은 도피 - 책을 읽는 고독한 여자들).

3. 저자는 여성의 독서란 가족이나 교회, 사회와 같은 공동체의 통제에서 벗어나 세상에 대한 생각을 스스로 만듦으로서 도덕과 질서의 몰락을 조장하는 행위로 여겨졌기에, 언제나 보수적인 도덕론자들의 격분을 유발해 왔다고 말한다. 그들은 여성의 본분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질서를 유지하는 일이라고 믿으며, 여자를 통해 ‘두뇌가 아닌 전혀 다른 곳’이 자극받기를 원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읽고 쓸 줄 알고 무엇인가를 아는 여성은 ‘실제로’ 위험하다. 여성이 독서를 통해 어떤 사람도 들어올 수 없는 자신만의 자유 공간을 획득함으로서, 독립적인 인격으로서의 자존감과 스스로의 생각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는 상상력과 용기를 얻게 되며, 그 결과 그들을 지배해 왔던 여러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도 '잘 지낼'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책 읽기야말로 본회퍼가 말한 ‘성인된 세계’로 여성들을 이끈 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4. 이 책의 마지막에 붙은 추천의 말에서 독일 68세대의 대표적 여성작가인 엘케 하이덴라이히는 ‘통제될 수 없는 모든 것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권력을 가진 사람(신, 남편, 행정부, 교회!)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신은 어쩌면 독서에 대해서만큼은 한 눈을 감고 못 본체 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나는 가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오직 자신이 속한 신학 전통 안에서만 ‘신실하고 경건하게’ 독서했던 분들은 주인을 ‘완고한’ 분으로 알고 달란트를 땅에 묻어놓았던 종처럼 질책을 받고, 그분들의 눈으로 볼 때 ‘시간 낭비’ 내지 ‘불경’이라고 느껴질 만한 잡다스런 책 읽기를 했던 나 같은 사람은 ‘못 본체’를 넘어, 받은 달란트를 ‘증식시켜’ 상급을 받은 종처럼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는 놀라운 반전이 있을 것이라는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과연 그 상상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정한욱 원장(고창 우리안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