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칼럼] 인간을 중심에 두면 과부하로 폭발합니다

입력 : 2018.08.11 17:31

이경섭
▲이경섭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중세 로마교회는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운행한다는 천동설(geocentricism)을 고집하여,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한다는 지동설(heliocentricism)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를 종교재판에 회부했습니다.

이는 중세 교회가 정치는 물론 과학까지 지배하려는 ‘제세일치주의(祭世一致主義)’ 혹은 ‘왜곡된 하나님 주권주의’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인간이 사는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놓으려는 ‘인간중심주의’의 무의식적인 표출입니다.

이러한 ‘인간중심주의’는 확장하여 오늘날 하나님까지도 인간 욕망을 채워주는 수단으로 전락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즐거워하고 그에게 영광 돌리는 것이 그의 삶의 목적이고 기쁨이었던 것이(소요리문답 1문) 반(反) 하나님적인 인간 중심주의로 흘러, 목적인 하나님마저도 그에게 수단화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구속받아 거듭난 자들은 다시 하나님 영광 개념을 회복하고 그것이 그들의 즐거움(롬 5:2)이 됩니다.

그들의 성화가 절정에 이르면,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시 115:1)”가 그들의 간구가 됩니다.

그리고 육신을 벗고 영화(glorification)에로 진입해 하나님 영광을 직면하면, 충성의 대가로 적법하게 받아썼던 면류관까지(고전 9:25, 벧전 5:4, 딤후 4:8, 계 2:10), 하나님 보좌 앞에 내어던지며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계 4:11)”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인간이 영광을 받는 것은 분수 넘는 일일 뿐더러, 벌 받을 죄악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놓으면 인력(引力)의 과부하(過負荷)로 지구가 폭발해 버리듯, 인간을 중심에 놓고 하나님을 주변으로 물리면(throw away) 인력(引力)의 과부화로 인간은 파쇄됩니다.

인간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시 107:10)”은 자신을 우주의 중심에 두고 지존자를 주변인으로 내몬 결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중심’은 다만 신학적 논쟁 주제가 아니라, 인간이 자기분수를 지켜 스스로를 보존하는 생존 방책입니다.

오늘 교회가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 행복을 지상 목표로 삼게 하고, 자신들을 만물의 중심에 두도록 부추기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아 충에 먹혀 죽은 헤롯(행 12:23) 짝 나게 만드는, ‘천지를 모르고 깨춤을 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주변으로 물리고(throw away) 하나님을 만물의 중심에 존치시키는 것은 뭔가를 추가적으로 더 하는 것이 아닌, 자기보존을 위해 근본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계 4:11)”,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는 인간 생존을 위한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하나님 영광을 즐거움으로 삼음

구원받아 성화된 성도의 삶은 언제나 “하나님 영광”을 지향합니다. 그것만이 그에겐 지고의 가치입니다. 이는 한두 가지 사안에 국한되지 않고 그의 삶 전반으로까지 확장됩니다. 그는 자기 삶 속에서 하나님 영광이 구현될 때 진심으로 행복을 느낍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언제나 일관성 있고 시종여일하게 하나님 영광을 지향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때때로 육신의 생각에 붙들릴 때는, 그 지향점을 놓치고 탕자처럼 방황하기도 하지만 곧 자신을 추스리고 방향타(方向舵, rudder)를 고쳐 잡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의 핵심 가치인 믿음도 구원론적 관점에서만 보지 않고 하나님 영광을 위한 도구로 인식합니다. 흔히 ‘믿음’ 하면 사람들은 ‘구원’과 연결지우기를 좋아하나, 사실 ‘하나님 영광’과 맞닿아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히 11:6)”,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롬 4:20)”라는 말씀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믿음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 전체의 ‘믿음’ 개념은 ‘인간 구원’과 ‘하나님 영광’ 모두와 맞물립니다. 전자는 “예수 믿고 구원 얻는 도리로서의 믿음”을, 후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는 믿음 안에 ‘인간 중심’과 ‘하나님 중심’이라는 배타적 두 요소가 서로 상극(相剋)하고 있다거나, ‘인간 구원’이 ‘하나님 영광’을 상쇄시킨다는 뜻이 아닙니다. 누가 예수를 믿어 구원 얻으면, 영원 전의 하나님 작정이 이루어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믿어 구원 얻는”것이나 “믿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압니다. 따라서 그들이 믿음을 강조하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됩니다. 예수님은 믿음과 하나님영광을 결부지우며, 유대인들이 자신을 믿지 않은 이유를 하나님 영광을 배척한 때문이라고 했습니다(요 5:44).

믿음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삶의 동기나 순종의 원동력이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명령에 의거토록 하셨습니다. 신앙의 기본기인 기도 역시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명령에 의거토록 했습니다.

쉽게 말해, 기도를 왜 하느냐 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에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7-18)”.

사람들은 흔히 가장 강력한 기도의 동인(動因)을 자기 결핍을 채우려는 욕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설교자들이 성도들로 하여금 기도를 독려하려 인간 안에 내재된 구복(求福), 성공(成功)의 욕구를 부채질합니다. “복을 받으려면 기도하라. 성공하려면 기도하라”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기 결핍과 그것을 채우려는 동기에서 시작된 기도는 지속성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욕구가 채워져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 자연히 기도도 중단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기독 지성 자크 엘륄(Jacques Ellul)은 “끈기 있고 지속적으로 기도를 이어가도록 하는 것은 기도를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 때이다”라고 한 것은 성경적 기도 개념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구속받아 거듭난 인간의 가장 강력한 동인(動因)이 ‘하나님 영광’임을 보여줍니다. 물론 거듭나지 않은 가라지 신자들에게는 자기의 욕망이 모든 동인(動因)의 일(一) 순위이고, 하나님 영광은 끝 순위에 자리합니다.

‘하나님 영광’은 성자 예수님께도 당연히 최고의 가치였고, 만족과 기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양식(糧食)을 아버지 뜻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한 것은(요 4:34), 자신의 모든 만족의 근원이 성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세상에 오셨을 때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셨다는 것은(요 5:43), 오직 성부 하나님의 뜻만을 이루기 위해 오셨다는 뜻입니다(요 8:54). 예수님이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이유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요 14:13).

◈자기 영광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오직 자신이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하실 뿐더러, 자신이 영광 받으시는 방법으로 모든 것을 경영하십니다. 인간을 구원하시는 방식을 값없이 은혜로 하신 것도 자신이 영광을 받도록 하기 위함 입니다.

곧 그들을 영원히 하나님께 채무자로 만들어 그의 영광만을 위해 살게 하려는 고도의 전략(?)이었습니다. 인간이 값없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지 않고 그들의 공로가 구원에 기여하게 한다면, 인간은 결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안 믿으면 저주를 받는 것 역시, 율법의 정죄 이전에 예수를 믿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롬 14:23)”라는 말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다 죄”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요 11:40)”고 하신 말씀은, ‘믿음’과 ‘하나님의 영광’은 서로 결속돼 있다는 것과, ‘믿음이 있는 곳에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송영(頌榮)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은혜의 감읍함”에만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순전한 송영을 우리에게 기대하십니다.

당신의 신앙은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믿음’ 위에 건설돼 있습니까? 당신이 영광을 받는 당신의 ‘행위’ 위에 건설돼 있습니까?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대표, byterian@hanmail.net)
저·역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근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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