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교회
▲덕수교회 일관정에서 함께한 김만준 목사와 채모세 목사(오른쪽부터). ⓒ이대웅 기자

갈수록 결혼 연령대가 높아지는 가운데, 교회에서도 30-40대 ‘싱글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가정과 일가친척을 비롯해 사회와 직장 등에서 ‘결혼 안 하냐?’는 소리를 수십 번도 더 들어야 하는 ‘고충’ 속에 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이성교제의 기회는 자연히 더 줄어들고, 자의반 타의반 나간 소개팅도 이제는 스트레스다 보니, 결혼이란 이제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것이 되고 만다.

개중에는 교회 각종 사역에서 ‘젊음을 불태우느라’ 시기를 놓친 이들도 있지만, 자신들을 향한 교회의 무관심에 상처받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교회들이 ‘헌금 적게 내고, 언제 떠날지 모르는’ 청년층을 ‘소모품’처럼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그들이 기독교인일 경우, 되도록이면 같은 기독교인과 결혼하고 싶다는 비전을 품게 된다. 그래서 숫자가 많아 청년들이 일일이 교류하지 못하는 대형교회들을 중심으로 ‘매칭학교’ 같은 만남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크리스천 데이트’처럼 이를 전문적으로 하는 곳도 있다.

여정캠프
▲호젓하고 운치 있는 곳에서 대화하고 있는 청년들. ⓒ교회 제공
이러한 ‘매칭’ 프로그램들은 분명 필요하지만, 한두 번의 만남 또는 첫인상으로 ‘상대’를 찍어야 하다 보니 외모나 스펙이 중시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세상에서의 그것과 별다를 것 없어진다는 애로사항도 있다. 이러한 가운데, ‘청년들을 위해 뭐라도 하고 싶어 고민하는’ 교회와 목회자, 그리고 멘토가 만나 자연스럽고 새로운 만남의 장(場)을 개설했다.

지난 6월 28일부터 2박 3일간 연천 한옥호텔 조선왕가에서 덕수교회(담임 김만준 목사)가 주관한 ‘정신실 작가와 함께하는 여정캠프: 나를 찾는 길 위에서 너를 만나다’가 바로 그것.

‘여정캠프’ 실무를 맡은 채모세 목사(덕수교회)는 “다른 교회들도 그렇겠지만, 담임목사님이 젊은 세대들에 대한 애틋함과 고민이 많으셨다. 부임 후 젊은 부부 모임과 신혼부부 모임, 미혼 여성 모임 등을 시작했는데, 미혼들을 어떻게 하면 결혼으로 이끌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며 “비혼이나 만혼이 늘어나는 사회적 분위기도 있어 지난해 가을부터 준비했다”고 말했다.

◈나를 먼저 찾는다 ‘매칭 없는 매칭’

여정캠프의 가장 큰 특징은 ‘매칭’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매칭 없는 매칭’이 여정캠프의 성공 요인이기도 한데, 캠프 3일간 참가자들은 나이와 이름, 학력과 직업 등 모든 사안들을 철저히 비공개로 했다. 참석 대상은 ‘싱글’, 30대 남녀였다.

취지에 공감하는 청년들 15명이 참석했다. 오히려 덕수교회 밖의 참가자들이 더 많았다. 채 목사는 이들을 모두 미리 한두 차례씩 만나 캠프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각 사람에 대한 사전정보를 미리 취합했다.

덕수교회 여정 캠프
▲‘여정 캠프’ 안내 책자.

채 목사는 “일단 남녀가 만나면 집안이나 학벌 같은 세속적 기준을 먼저 보기 마련이지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한 영혼을 있는 그대로, 예수 안에서 형제-자매로만 바라보고자 했다”며 “어쩌면 이 캠프의 배경과 시작과 추진이 극도로 이상적이었기에 가능했다. 이번 여정캠프는 교회 안에서의 수요 때문이 아니라, 시대적인 고민과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진행했다”고 전했다.

여정캠프에서는 ‘나를 찾는 길 위에서 너를 만나다’라는 슬로건 그대로 매칭 자체보다는 나 자신을 깊이 성찰하고 객관적이고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마련됐다. 캠프를 함께 기획한 정신실 작가(<와우 결혼(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 <오우 연애(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연애를 주옵시고)>, <연애의 태도> 저자)는 3일간 상주하며 주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사람씩 상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참가자들의 마음을 여는 데는 ‘장소’도 한몫 했다. 산과 들판, 그리고 좋은 날씨가 함께한 한옥호텔 조선왕가는 고단한 일상을 뒤로 한 채 참석한 청년들에게 힐링을 선사했다. 덕수교회는 청년들의 경제 형편으로는 쉽사리 갈 수 없는 이곳을 섭외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뿐만 아니라 덕수교회는 작년 가을부터 무려 9개월간 이번 여정캠프를 위해 기도하면서 준비했다고 한다. 수차례 답사를 다녀왔고, 2박 3일간 처음 만난 청년들이 서로를 부담스러워하거나 분위기가 무거워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여정캠프
▲캠프파이어 때 만든 글자 ‘Love’. ⓒ교회 제공

◈30대 청년들 눈높이로 다가간 교회

캠프에서는 네 차례 특강을 통해 자신의 성향을 알고 다른 사람의 성향을 이해하는 법, 연애 실패나 사랑에 대한 왜곡된 관점의 점검 등을 실시했다. 짬짬이 진행된 ‘사이토크’를 통해서는 이성(異性)과 일대 일로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장점과 매력을 보여줄 수 있게 했다.

특히 ‘보석인가 원석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나’, ‘사랑이 두려움을 만날 때’ 등의 강의 후 마지막 날 ‘나라는 보석이 너라는 보석에게’ 프로그램에서는 각 사람과 자신의 매력과 장점을 적고 같이 읽으면서 ‘눈물바다’가 됐다고 한다. 채 목사는 “이런 캠프가 끝나고 나면 허전할 수 있는데, 그런 게 느껴지지 않았다”며 “이후에 들어보니 자신감과 여운이 남아, 실제 삶에서도 힘이 된다고 하더라”고 했다.

또 “캠프는 보통 둘째 날 밤이 하이라이트인데, 마지막 순간까지 좋았다. 남자분들이 더 많이 울더라”며 “주변에서 ‘왜 시집·장가 못 가냐’는 말만 듣다가, (여)왕처럼 대접받고 강의마다 용기를 주니 자존감이 많이 높아졌을 것 같다. 그러다 마지막 날 ‘당신은 이런 매력이 있다’고 해 주니, 다시 태어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듯한 기쁨을 느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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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에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교회 제공

캠프를 함께 준비한 손은실 전도사는 “저도 30대 딸이 있지만, 30대 중후반이 되면 20대 청년들과 달라서 청년부에서 잘 활동하기도 힘들다. 이들은 청년도 아니고 여전도회도 아닌, 손님처럼 왔다 손님처럼 가는 존재”라며 “이들만의 장이 없고 교회도 그러한 장을 열어주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청년들을 그런 시각으로 봐 주고 그들의 눈높이로 다가가준 것 자체에서 큰 위로를 받았을 것 같다. 그래서 저 자신도 참 좋았다”고 전했다.

‘애프터’는 어떻게 될까. 채 목사는 “마지막에 매칭 희망자를 받을 때도 ‘복수 가능’으로 했다. 소개팅을 통해 ‘아닌 것 같은데도 나가야 하는’ 자괴감을 느낀 이들이기에, ‘이 사람과 소개팅하면 좋겠다’ 정도로만 적게 했다”며 “희망자들에게만 연락처를 따로 알려줬다. 현재 두 쌍이 만남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참가자들도 캠프 후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들은 “참 귀한 사람들 곁에 있구나, 주위 사람들을 생각하며 울컥하게 만든 캠프입니다”, “너무 과분한 대접을 받았어요. 솔로이길 잘 했다 싶을 정도네요”, “이 시간들이 앞으로 제 인생과 여정에 커다란 전환점이 될 것 같아요”, “사랑으로 마음이 충만해진 느낌입니다. 각자 마음 속에 애정과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등의 소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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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은 이곳에서 실컷 힐링을 경험했다. ⓒ교회 제공

◈정신실 작가 “비신자들, 하나님께 다가가고 싶다고”

캠프 기획과 특강을 맡은 정신실 작가는 “사실 좀 놀랐다. 매칭을 표방했지만, 실제로 2박 3일에 담고 싶은 것은 결혼 압박과 ‘소개팅 스트레스’에 지친 청년들이 그저 좀 편안히 쉬고, 멈춰 생각해 보는 시간을 주는 것이었다”며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고 자기다움을 찾는 시간”이라고 전했다.

정 작가는 “‘매칭 없는’을 표방했지만 매칭 프로그램이 아닌 것은 아니기에 참가자들 입장에선 당연히 기대가 있을텐데, ‘잿밥에의 관심을 제사로 끌어올 수 있을까’ 싶었다”며 “하지만 기우였다. 프로그램의 취지를 이미 잘 이해하고 찾아든 참가자들이 대부분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단지 ‘내 짝이 될 것인가 말 것인가’로 사람을 품평하면서 소개팅에서는 ‘상처주고 상처받는 경험’이 많은데, 2박 3일 내내 모든 참가자를 같은 고민을 가진 ‘확장된 나’로 받아들이는 모습에 여러 번 감동했다”고 했다.

특히 “캠프 동안 여성은 남성 참가자 각각에게, 남성은 여성 참가자 각각에게 롤링페이퍼를 썼다”며 “마지막 시간에 이를 전하는 순간, 2박 3일간 새롭게 발견한 자신에게 쓴 편지를 읽는 순간, 모두에게, 프로그램을 이끈 저 자신에게도 말 그대로 힐링의 순간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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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곳. ⓒ교회 제공

정 작가는 “에로스 사랑, 자기 사랑, 아가페 사랑이 모두 하나의 사랑임을 확인했다고 할까”라며 “프로그램 내내 대놓고 복음을 얘기한 적이 없는데(아, 목사님의 짧은 설교가 있었다), 초신자, 거의 비신자에 가까운 분들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고 싶다고 해서 놀랐다”고도 했다.

◈“청년들 구체적 필요 고민하고 채워주는 교회들 많아졌으면”

또 “교회가 청년들의 재능과 시간을 무분별하게 요구한다는 의미의 ‘헌신 페이’라는 말이 공감을 얻고 있다. 청년들이 점점 교회를 떠나간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며 “이러한 가운데 청년들의 구체적인 필요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채워주는 기성세대, 교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런 의미에서 덕수교회에서 정말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들여 이번 프로그램을 진행해 주셨는데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한다”며 “참석한 청년들이 교회에 얼마나 진심으로 고마워했는지를 전하고 싶다. 청년사역을 고민하는 교회들이 하나의 대안으로 참고하시면 좋겠다”고 했다.